나는 종종 처음 만난 분들께 ‘어떤 와인을 좋아하시냐’고 물어보곤 하는데, “루아르 와인을 좋아한다”라는 말을 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보통은 부르고뉴나 미국, 독일 등이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꼽힌다. 프랑스만을 보면 인기 좋은 산지는 단연 보르도와 부르고뉴, 아니면 샴페인이나 론 정도다. 나조차도 누군가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으면 ‘루아르’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는 않을 것 같다.  

▲ 이번 세미나에는 루아르 와인을 한데 모아 시음해봤다. <사진= 김지선>

그러나 루아르 와인에게도 많은 이들이 최고로 꼽던 순간이 있었다. 중세 시대, 루아르 와인은 영국에서 보르도 와인의 인기가 치솟기 전까지 라 로셸(La Rochelle, 보르도에서 160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항구도시 겸 와인산지) 와인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와인이었다. 프랑스의 다른 산지를 필두로 한 전 세계 신흥 강자들이 떠오르며 다소 뒤안길로 밀려나긴 했으나, 여전히 이곳은 세계 최고로 불리는 소비뇽 블랑이나 슈냉 블랑 와인을 내놓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성 넘치는 와인들이 루아르강을 따라 곳곳에 숨어있다. 서늘한 기후 덕에 앞으로 더욱 주목받을 루아르의 와인 지역을 소개한다.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루아르의 기후

워낙 동서로 넓게 뻗어있는 지역이라 루아르의 기후를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루아르는 대륙성 기후에 속하는 상세르와 푸이-퓌메부터 멕시코 만류(Gulf Stream)가 흘러 따뜻한 해양성 기후를 누리는 뮈스카데까지 넓게 펼쳐져 있다. 위도상 포도 재배가 가능한 한계 지점에 있어 포도가 잘 안 익는 해도 있는데, 서늘한 기후 때문에 레드 와인은 타닌이 꺼끌꺼끌하고 산도가 높은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런 때는 와인이 진한 색을 띠지 않기에 오랜 포도 껍질 접촉이나 온도 조절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따뜻했던 2003년, 2005년, 2009년, 2011년에는 뛰어난 스위트 와인을 만들기도 했다. 따라서 루아르는 빈티지마다 기후도, 그에 따른 와인의 특징도 다양하다.

▲ 루아르 와인 산지는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사진= 김지선, '더월드아틀라스오브와인(휴 존슨 지음)' 110쪽 발췌>

루아르의 와인 산지는 크게 네 곳으로 나뉜다. 바닷가과 맞닿은 곳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순으로 페이 낭테(Pais Nantais), 앙주-소뮈르(Anjou-Saumur), 투렌(Touraine), 상부 루아르(Upper Loire)가 자리잡고 있다. 페이 낭테의 대표 산지는 뮈스카데가, 앙주-소뮈르에는 앙주와 소뮈르가, 투렌에는 투렌, 쉬농, 부르게이, 부브레가, 상부 루아르에는 푸이 퓌메, 상세르가 있다.

페이 낭테- 뮈스카데

절대다수의 화이트 와인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17세기 네덜란드와의 무역에서 들여온 중성적인 청포도 믈롱 드 부르고뉴가 이 지역을 대표하는 품종인데, 이 품종으로 만든 뮈스카데 AOC는 생산량도 적고 품질도 그저 그렇다. 이곳에서 높은 품질로 알려진 AOC는 뮈스카데-세브르 에 멘(Muscadet-Sèvre et Maine)으로, 전체 생산량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이밖에 북쪽에 있는 뮈스카데 코토 드 라 루아르(Muscadet-Coteaux de la Loire), 남쪽의 뮈스카데 코트 드 그랑들리유(Muscadet-Côtes de Grandlieu) AOC도 있다.

뮈스카데 와인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쉬르 리(Sur lie)다. 쉬르 리는 발효 후 효모를 거르지 않고 와인에 일정 시간 놓아두며 풍미를 더하는 역할을 하는데, 믈롱 드 부르고뉴의 중성적인 특징 덕에 생산자들은 겨울에 효모를 걸러내는 작업을 하지 않아도 악취가 나지 않는 와인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효모에 와인을 오래 접촉하다 보니 자연스레 풍미가 살아나는 일거양득의 효과까지 보게 되었다.

맛없는 뮈스카데는 물처럼 밍밍하지만 잘 만든 와인은 가볍고 톡쏘며 해산물과 잘 어울리는 짭짤한 맛을 드러낸다. 자갈과 조약돌이 섞여 배수가 좋은 클리송(Clisson) 지역은 숙성력이 좋은 뮈스카데를 생산한다.

페이 낭테- 그로 플랑트

뮈스카데에 인접한 지역으로, 주된 품종은 폴 블랑슈다. 코냑에 쓰이는 품종인 콜롬바도 소량 사용된다. 매우 산미가 높은 드라이 와인이 생산되는데, 포도가 완전히 익기 전에 썩는 경향이 있어 이르게 수확되기 때문이다. 2011년에 AOC 등급으로 인정되었으며, 수확한 이듬해 3월까지 효모 접촉을 거치면 와인 라벨에 '쉬르 리'라는 단어를 표기할 수 있다. 전체 생산량의 3분의 1은 뮈스카데로 만들어진다.

앙주-소뮈르- 앙주

앙저(Angers) 도시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슈냉 블랑, 카베르네 프랑, 카베르네 소비뇽이 주요 품종이지만, 필록세라 침범 이후에 들어온 하이브리드 품종도 많이 자라고 있다. 이곳에서는 로제 와인이 가장 중요하며, 그다음으로는 레드, 화이트 와인순이다.

앙주의 기후는 대서양과 남서부의 벤데(Vendée) 산림의 영향을 받아 상대적으로 온화하다. 강우량은 연간 500mm 정도로 적은 편이다.

로제 당주는 그롤로 품종으로 만들어지는데, 네고시앙들이 와인을 만드는 비율이 높아지며 평균 품질이 높아지고 있다. 더 품질이 좋은 와인은 카베르네 당주다.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카베르네 프랑이 사용되며, 보통 잔당이 있고 수십 년의 숙성력을 보여준다.

카베르네 프랑은 앙주 지역 생산자들에게 점점 주목받고 있는데, 레드 와인 AOC인 앙주-빌라주 이름이 붙어 생산된다. 우수한 와인 AOC는 앙주-빌라주 브리삭(Brissac)이다. 상대적으로 생산량이 적은 앙주 블랑 AOC는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으로, 슈냉 블랑이 80% 이상 사용되어야 한다.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이 블렌딩에 사용될 수 있다.

앙주-소뮈르- 사브니에르(Savennières)

앙주 내의 우수한 드라이 화이트 와인 산지다. 앙저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남동향의 편암과 모래 암석 언덕이 있는 곳에 포도밭이 자리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드미 섹, 무알레(늦수확 와인), 도 스타일의 달콤한 와인도 많아졌지만 대부분은 드라이하거나 리터당 잔당이 4g에서 7g 사이의 와인(비공식적으로 섹 텡드레(Sec Tendre)라고 불린다)으로 만들어진다. 몇십 년간 장기숙성할 수 있는 뛰어난 와인도 생산된다. 바이오다이내믹 생산자인 니콜라 졸리가 7헥타르 넓이인 사브니에르- 쿨레 드 세랑(Savennières-Coulée de Serrant)이라는 하부 AOC를 단독 운영하고 있다.

앙주-소뮈르- 소뮈르

스파클링 와인과 특유의 석회질 암석 튀포로 유명한 곳이다. 자연적으로 동굴 형태를 갖춘 튀포는 스파클링 와인 저장 공간으로 사용되어 왔다.

앙주와 기르는 품종은 유사하나, 이곳에는 장기 숙성력이 있는 스위트 와인이 생산되지는 않는다. 가장 주목할 만한 와인은 소뮈르 무소(Mousseau)로, 슈냉블랑 등으로 만들어진 스파클링 와인이다. 규모가 큰 하우스로는 그라티엔&메이예(Gratien&Meyer), 랑글로아 샤토(Langlois Chateau), 부베 라뒤베(Bouvet Ladubay) 등이 있다. 처음 소뮈르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한 자는 애커맨-로랑스(Ackerman-Laurance)다. 이 와인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나, 생산 규정이 더 엄격하여 고급 와인 이미지를 획득한 크레망 드 루아르에 밀리고 있다.

소뮈르 루즈는 시농과 부르게이와 유사한 토양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다. 최소 70%의 카베르네 프랑이 들어가야 하며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도니와 블렌딩 될 수 있다. 신선하고 과일향이 많은 스타일로 생산되며 소뮈르 블랑보다 생산량이 많다.

소뮈르 블랑은 앙주 블랑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하다. 둘 다 슈냉 블랑으로 만들며 산도가 높고 장기숙성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단, 소뮈르 블랑은 포도를 선별해서 수확하고 와인의 발효와 숙성을 오크통에서 거치며 차별화를 보이기도 한다.

소뮈르 내에 있는 소뮈르 샹피니(Saumur-Champigny)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유행했던 지역이다. 석회암 성분이 많은 튀포 고원에서 자란 카베르네 프랑으로 만든다. 대부분의 소뮈르 샹피니는 조기 소비용이다. 

투렌

루아르에서 가장 중요한 산지로, 레드 와인 AOC인 부르게이, 시농과 스틸 및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 AOC인 부브레, 몽틀루이(Montlouis)를 포함한다. 이곳의 튀포는 와인 양조 및 숙성용 카브를 위해 깎아 만들었다. 투렌 AOC 지역은 길게 뻗어 있어서 진흙, 모래, 튀포, 자갈 등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기후 또한 다양하다. 동쪽은 대륙성 기후여서 겨울이 몹시 춥지만, 서쪽은 대서양의 영향을 받아 온화하다. 이처럼 다양한 테루아의 특성 때문에 자라는 포도 품종도 가지각색이다. 투렌의 화이트 와인은 소비뇽 블랑으로, 소비뇽 그리 만이 20%까지 포함될 수 있다. 가성비가 좋아 상세르와 푸이 퓌메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 투렌의 레드 와인은 캇(Cot)이라 불리는 말벡과 카베르네 프랑으로 만든다. 이들은 조기 소비용으로 만들어진다.

투렌- 시농(Chinon)

▲ 시농 와인에서는 정말로 연필심 향이 난다. 보르도, 특히 그라브 쪽에서도 연필심 향이 많이 나는데, 이는 카베르네 프랑에서 나온 향이다. <사진= 김지선>

레드 와인이 가장 많지만, 로제와 화이트 와인도 소량 생산되는 지역이다. 카베르네 프랑 와인으로 유명한 동쪽의 소뮈르-샹피니가 인접해 있다.

시농 와인은 두 가지 스타일로 만들어진다. 하나는 부르게이처럼 풀 바디의 장기 숙성용 스타일이다. 이곳의 토양은 진흙과 튀포 석회암이며, 남향 경사면에 포도밭이 산재해 있다. 다른 하나는 가벼운 스타일로, 강가의 모래와 자갈밭에서 만들어진다. 이 와인들은 생 니콜라 드 부르게이와 유사하다.

시농 와인은 중간 바디감에 연필심 향이 두드러지는데, 과일향과 산미가 잘 어우러져 있다. 시농 와인 역시 프랑스 내에서 사랑받는 데일리 와인이다.

투렌- 부르게이(Bourgueil)

숙성력이 좋은 레드 와인의 산지다. 투렌의 서쪽에 있는 지역으로, 강우량은 앙주만큼 낮고 기후는 온화하다. 석회암과 자갈이 있는 남향 언덕에 부르게이 포도밭의 절반 이상이 위치해 있다. 미디엄 바디의 카베르네 프랑이 이 지역의 주 품종이며, 이 와인은 라즈베리나 연필심 같은 강력한 향을 드러낸다. 남쪽에 있는 시농보다 타닌은 약간 많은 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의 블렌딩 비율은 시농과 마찬가지로 25%에서 10%로 줄었다.

기후가 좋은 해에는 5년 이상의 장기 숙성력이 있는 와인이 탄생하며, 생-니콜라-드-부르게이(St-Nicolas-de-Bourgueil)는 가벼운 조기 소비용 와인을 생산한다. 생 니콜라 부르게이는 파리 등지의 프랑스인에게만 사랑받고 해외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밖에 드라이한 로제 와인도 소량 생산되며, 화이트 와인 AOC는 없다.

투렌-부브레(Vouvray)

▲ 슈냉 블랑은 꿀, 복숭아, 마멀레이드 향이 가득해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품종이다. <사진= 김지선>

1936년 AOC가 되며 정체성을 굳힌 곳으로, 이전에는 네덜란드로 수출되며 블렌딩용 와인으로 쓰였다. 부브레에는 다수의 집이나 와인 셀러가 튀포로 지어졌으며, 튀포가 기반암이고 진흙, 자갈이 표토인 토양에 포도나무가 심어졌다. 이곳의 주 품종인 슈냉 블랑으로 만든 무알레(Moelleux, 늦수확) 와인은 세계 최고급 스위트 와인에 속할 정도로 품질이 높다.

슈냉 블랑은 꿀과 복숭아 향기가 가득한 포도다. 생산자들은 이 포도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낡고 큰 오크통이나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서 발효하고 유산발효는 거의 거치지 않는다.

상부 루아르- 상세르(Sancerre)

▲ 말버러나 엉트르 드 메르와는 또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상세르의 소비뇽 블랑. <사진= 김지선>

짜릿하며 톡쏘는 드라이 소비뇽 블랑 와인을 만드는 산지다. 로마 시대부터 와인이 만들어졌으며, 20세기까지는 레드 와인과 샤슬라로 만든 화이트 와인도 생산되었다.

포도밭의 고도는 보통 200m에서 400m 사이에 있다. 대륙성 기후를 띠어서 봄 서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소비뇽 블랑은 이러한 기후에도 잘 적응했다.

상세르는 부싯돌 향이 강하고 향기로운 와인을 만든다. 푸이 퓌메보다 더 많은 AOC 지역이 있지만, 2-3년 내로 마시는 조기 소비용 와인이 주를 이룬다. 오크와 소비뇽 블랑의 조화를 시도하는 일이 늘고 있으며, 피노 누아로 만든 가벼운 레드나 로제 와인도 생산된다. 레드 와인은 전체 생산량의 10%를, 로제 와인은 6%를 차지한다.

상부 루아르- 푸이 퓌메(Pouilly-Fumé)

세계 최고라 불리는 소비뇽 블랑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다. 푸이 퓌메에는 주로 석회암 토양이 많으며 실렉스(silex)라 불리는 부싯돌이 약간 섞여 있다. 그래서 푸이 퓌메 와인에는 스모키한 풍미와 약간의 부싯돌 향이 난다. 푸이 퓌메와 상세르를 구분하는 일은 전문가에게도 어려울 정도로 스타일이 유사한데, 푸이 퓌메에 고급 와인이 더 많은 점이 특징이다. 디디에 다그노(Didier Dagueneau) 등 실력있는 생산자가 만드는 푸이 퓌메 와인은 상세르보다 밀도 있고 장기 숙성력이 좋아 10년 이상 숙성할 수 있다. 이곳 생산자들도 상세르처럼 발효와 숙성 과정에서 오크 사용을 시도하는데, 이런 와인들은 더 복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레드 및 로제 AOC는 없다.

김지선 기자는 국제 와인 전문가 자격증 WSET 어드밴스드 과정을 수료후 WSET 디플로마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와인 강의와 컨텐츠를 통해 전 국민이 와인의 참맛을 느끼도록 힘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김지선 기자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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