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몇 번쯤, 이름만 들어도 두근거리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사람은 가까이 있는 주변인일 수도 있고, 멀리 있는 연예인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문학이나 음악, 그림을 남기고 떠난 이전 시대 사람일 수도 있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한 두번 찾아왔는데, 그 중 한 명은 이탈리아 와인 생산자인 '안젤로 가야'다.

▲ 가야 가이아 앤 레이 <사진= 와인서처>

말그대로 와인을 입에 대기 시작할 무렵, 한 디너에서 꽃향기가 가득한 화이트 와인을 만났다. 화이트 와인이라고는 모스카토 다스티만 마셔본 내게 청포도가 아닌 꽃향기가 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는데, 한 시간 정도 흘러 그 꽃향기가 달콤한 꿀향으로 모습을 바뀌어 크게 충격받았었다. 풀장에서만 놀던 아이가 처음 바다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 이럴까? 멋진 와인은 시간이 흐르며 숨겨둔 모습을 천천히 보여준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 깨달음을 준 꿀향 가득한 와인은 안젤로 가야가 운영하는 와이너리의 샤르도네 와인 '가이아 앤 레이(Gaia&Rey)'였다. 나중에 이 와이너리에 대해 찾아보고 실제로 안젤로 가야를 만나 그의 철학과 아우라를 접하면서, 내게 가야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가야를 동경하다보니 이탈리아 와인, 특히 피에몬테를 포함한 북부 이탈리아는 자연스레 '뛰어난 와인이 나오는 곳'으로 한데 묶여 각인되었다. 때때로 기대를 저버리는 와인들도 나타나지만, 여전히 다수의 북부 이탈리아 와인은 뛰어나다. 모스카토 다스티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와인이나, 북부 이탈리아 와인의 넓고 풍부한 모습을 만나보고 싶다면 다음 지역과 품종의 와인들을 추천한다.

피에몬테

이탈리아 북서부의 주(州)다. 붉은 과실향과 복합적인 풍미를 뽐내서 이탈리아의 피노 누아로 불리는 네비올로가 이곳의 대표 적포도 품종이다. 이외에 바르베라, 돌체토 등도 다량 재배된다. 청포도로는 달콤한 스파클링을 만드는 데 쓰이는 모스카토를 포함하여 토착 품종인 코르테제, 아르네이스가 있다.

1. 바르바레스코&네비올로

▲ 피오체사레 바르바레스코 2012 <사진= 김지선>

바르바레스코: 바롤로 옆에 위치한 고급 네비올로 와인 생산지다. 1960년대 전에는 바롤로가 네비올로의 독보적인 고급 와인 산지였으나, 가야와 브루노 지아코사의 등장으로 바르바레스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불과 바롤로의 3분의 1 넓이에 해당하는 1886 헥타르에서만 포도가 재배되지만, 이 작은 땅은 석회질 진흙 토양과 이회토 두 가지 토양으로 나뉜다. 전자는 바롤로 내의 라 모라(La Morra) 지역과 비슷한데, 여기서 생산된 와인은 향긋하고 과실향이 두드러지는 편이다. 후자는 몽페르토 달바, 세라룽가 달바와 유사한 토양으로, 타닌이 많은 와인을 생산한다.

바르바레스코의 네비올로는 바롤로의 것보다 빠르게 익는데, 이는 바르바레스코의 포도밭들이 타나로(Tanaro) 강과 더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필수 오크 숙성기간도 바롤로보다 짧다. 바르바레스코로 출시되려면 오크통 9개월을 포함해 총 26개월간 숙성해야 하며, 바르바레스코 리제르바는 총 50개월을 숙성해야 한다. 반면 바롤로는 18개월 오크통 숙성을 포함해 기본적으로 38개월을 숙성해야 하며, 리제르바 급은 최소 62개월을 숙성해야 한다. 최적 시음기도 바르바레스코가 더 빠르다. 보통 5년에서 15년 사이가 바르바레스코를 마시기 가장 좋은 숙성 기간이다.

과거에는 장기간 침용을 거쳐 만든 와인을 큰 나무통에서 숙성시켰으나, 현재는 프렌치 바리크통(작은 나무통)에 짧게 숙성하여 타닌이 부드럽고 과실향이 풍부한 스타일로 만든다. 그러나 와인 양조에도 유행이 있는지 요즘은 큰 오크통에 40일까지 껍질 침용을 거치는 생산자들도 있다.

최고의 밭은 산 로렌조, 틸딘, 마르티넨가(martinenga), 산토 스테파노(santo stefano) 등이 있는데, 이런 밭들은 가야나 지아노 브루코사, 알베르토 디 그레시 등이 일군 결과다.

네비올로: 바디감이 무겁고 타닌이 많으며, 산도가 매우 높은 품종이다. 주로 장미, 체리, 가죽, 진흙 향이 난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외에 알바, 랑게, 로에로, 가티나라, 카레마 등에서도 생산되며, 피에몬테가 아닌 롬바르디의 발텔리나에서도 소량 재배된다.

허브- 장미, 히비스커스, 아니스, 시나몬, 홍차, 멘톨
붉은 과일- 크랜베리, 체리 시럽, 딸기, 라즈베리
검은 과일- 무화과, 용과, 프룬
얼디- 타르, 가죽, 스모크, 발사믹
오크- 바닐라
숙성향- 담뱃잎, 태운 나무, 콜라, 정향

2. 아스티&바르베라

▲ 프라텔리 폰테 바르베라 다스티 2014<사진= 김지선>

아스티: 모스카토 다스티로 더 유명하지만, 적포도 바르베라, 돌체토, 프레이사(Freisa)의 산지로도 명성이 있는 곳이다. 생산량은 많지만 4000여 명의 포도 재배자가 9,490헥타르를 나눠 소유하여 포도밭 운영이 파편화되어 있다. 그래서 지역 네고시앙이 여러 지역의 포도를 모아 와인을 생산했는데, 이는 아스티가 세부 지역의 특징을 살리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몇몇 포도밭 소유자들이 직접 소규모의 단일밭 와인을 만들고 있다. 

바르베라: 과실향 많고 바디감도 있으며, 산도와  알코올 도수가 높은 품종이다. 색까지 진하지만, 타닌은 적다. 다양한 허브 향이 나고, 블랙 베리류의 향이 두드러진다. 오크 숙성을 거치지 않으면 붉은 과실향이 많이 나며 오크를 거칠 경우 초콜릿 향과 함께 과실의 향이 한층 무거워진다. 바르베라는 네비올로보다 빨리 익는 조생종이다. 그래서 알바 지역에서는 네비올로가 익기 어려울 만큼 서늘한 포도밭에 바르베라가 재배된다. 반면 아스티에서는 가장 좋은 곳에 바르베라가 재배된다. 내 경험에 비추어봐도 비슷한 가격대라면 바르베라 달바보다 바르베라 다스티를 추천한다.

허브- 아이리스, 라벤더, 검은 후추, 감초, 말린 허브
붉은 과일- 신 체리, 말린 딸기
검은 과일- 프룬, 블랙베리, 플럼
기타- 담배, 훈제, 타르, 모카

3. 로에로&아르네이스

▲ 프라텔리 폰테 로에로 아르네이스 <사진= 김지선>

로에로: 타나로 강 좌안에 있는 모래 토양 언덕이 로에로의 DOCG 지역이다. 남쪽에 인접한 랑게와 같이 네비올로가 주요 포도 품종으로 사용된다. 바르바레스코나 바롤로보다 일찍 숙성하고 부드러운 경향이 있다. 바르베라와 아르네이스도 재배된다.

아르네이스: 배, 살구, 복숭아, 아몬드, 홉 향이 두드러지며 산미는 다소 낮은 풀바디 와인으로 만들어진다. 오크 터치를 거치지 않은 채 빨리 마실 때 가장 좋다. 백악질, 모래 토양에서 자란 아르네이스는 산미와 구조감이 좋고, 모래 진흙 토양에서 자란 아르네이스는 열대과일 풍미를 보여준다. 아르네이스를 생산하는 유명한 와이너리로는 말비라(Malvira), 델테토(Deltetto), 카시나 키코(Cascina Chicco), 브루노 지아코사(Bruno Giacosa)가 있다.

4. 가비&코르테제

가비: 코르테제 품종만 허용하는 DOC 지역이다. 감귤류의 과일향이 많고 향긋하며, 미네랄이 느껴진다. 언덕의 경사진 부분에서만 생산할 수 있으며, 주된 토양은 석회암, 진흙, 또는 이 둘이 합쳐진 이회토다. 최소한 3300그루 이상 심어야 한다. 라 스콜카(La Scolca)가 가비의 발전을 이끈 선구자다. 덕분에 피노 그리지오가 유명해지기 전인 1960~70년대부터 내수 및 해외 수출용으로 크게 사랑받았다.

코르테제: 생선 요리와 어울릴 스타일로 만들어진다. 깨끗하고 신선하며 오크는 거의 쓰지 않는다. 미네랄 질감이 느껴진다.

베네토

서쪽에 피에몬테가 있다면, 북쪽에는 베네토가 있다. 전세계에서 사랑받는 피노 그리지오와 이탈리아의 대표 스파클링 와인 프로세코 덕에 베네토는 이탈리아에서 와인 생산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적포도는 발폴리첼라와 바르돌리노의 코르비나가, 청포도는 소아베의 가르가네가가 이 지역의 대표 품종이다. 햇볕이 따뜻해서 말린 포도로 만든 독특한 와인도 베네토만의 특산품이다. 건포도를 완전히 발효하여 진한 풍미를 내는 아마로네, 일부만 발효하여 달콤한 맛이 나는 레치오토 델라 발폴리첼라, 레치오토 디 소아베가 있다.

1. 소아베&가르가네가

▲ 피에로판 소아베 클라시코 2017 <사진= 김지선>

소아베: 감귤류 향과 신선한 산미가 두드러지는 베네토의 대표 화이트 와인 산지다. 과거에는 저렴한 대량 생산용 와인이 많이 생산되었으나, 점차 프리미엄 화이트 와인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소아베 역시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아 편하게 마시기 좋다.

소아베 외에 소아베 클라시코, 소아베 수페리오레 등급이 있는데, 클라시코와 수페리오레 지역은 언덕에 있고, 고대 화산 토양이 깔려 있다. 화산토는 배수가 좋고 규산염이 많아 영양분이 풍부하다. 모든 토양이 화산토는아닌데, 그래서 소아베의 최고 와이너리 중 한곳인 피에로판도 화산 토양에서 만든 칼바리노(Calvarino)와 화산토양이 아닌 클라시코 밭에서 만든 라 로카(La Rocca)를 따로 생산한다.

이외에 소아베 지역 일부 언덕에는 백악질, 진흙, 또는 충적토가 깔려 있다. 이러한 토양은 열을 잘 보존하여 포도 숙성에 도움을 준다.

가르가네가: 생산량이 많은 만생종 청포도다. 소아베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최소 70%에서 100%의 가르가네가가 들어가야 한다. 나머지는 트레비아노 디 소아베(베르디끼오의 다른 이름) 또는 샤르도네 등 국제품종이 쓰인다.

감귤- 레몬, 라임, 귤, 마멀레이드
핵과- 멜론, 배, 사과
열대 과일- 망고, 파인애플
허브- 릴리, 처빌, 펜넬
기타- 아몬드 가루, 마지판(marzipan), 구운 견과류, 왁스, 미네랄, 소금물

2. 발폴리첼라&코르비나

▲ 마시 코스타세라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2012 <사진= 김지선>

발폴리첼라: 베네토 지역 내에 있는 산지로, 전체 면적은 매우 넓다. 클라시코에 해당하는 지역은 석회질 토양에 평균 온도가 낮다. 반면 평지는 토양의 무게가 무겁고 온도는 높다. 조기 소비용 와인은 붉은 베리향을 풍겨서 좋은 보졸레 와인을 닮았다. 코르비나의 품질이 가장 높고, 몰리나라와 론디넬라는 소량 블렌딩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발폴리첼라 언덕에서 생산된 좋은 포도를 말려서 아마로네나 레치오토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아마로네는 진한 과일 및 건과일 풍미에 무거운 바디감을 보여준다.

코르비나: 발폴리첼라와 바르돌리노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최고급 레드 품종이다. 과실향과 신 체리의 후미를 보여주는데, 한때 바디감이 부족한 품종으로 알려졌으나 1980,90년대 일부 생산들이 바디감 좋은 발폴리첼라를 만들며 이런 의심을 불식시켰다. 그린 아몬드 풍미가 있다.

론디넬라: 꽃향기를 더해주고 타닌이 적다.
몰리나라: 산도가 높다.

허브- 아이리스, 장미, 히비스커스, 시나몬, 홍차
붉은 과일- 신 체리, 크랜베리, 레드 커런트, 익은 딸기
검은 과일- 블랙 체리, 플럼
땅(earthy)- 타르, 가죽, 재, 젖은 자갈
오크 숙성- 정향, 담배, 육두구
병 숙성- 구운 헤이즐넛, 데리야끼, 황설탕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

이탈리아 동북부 국경에 위치하여 독일, 이탈리아, 슬로베니아의 문화가 섞인 곳이다. 이러한 환경 덕에 기존에 있던 다양한 토착 품종에 더하여 주변 국가로부터 여러 품종이 들어와 함께 재배되고 있다. 프리울리의 토착 품종으로는 프리울라노(신선하고 꽃향기가 나며, 숙성시 견과류 향을 드러낸다)를 포함하여 리볼라, 말바지아, 피그놀로가 있다. 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오스트리아에서는 리슬링, 바이스리슬링, 뮐러 투르가우, 블라우프랭키쉬가 수입되었다. 프랑스에서 넘어온 품종도 많이 재배되고 있다. 피노 비앙코, 피노 그리지오, 샤르도네, 소비뇽, 카베르네, 메를로, 피노 네로 등이 프랑스에서 수입된 품종이다. 프리울리 와인은 대부분 100% 단일 품종으로 생산된다.

▲ 리비오 펠루가 피노 그리지오 2016 <사진= 김지선>

프리울리의 포도밭은 언덕과 계곡으로 나뉜다. 언덕 부근의 포도밭은 칼슘 성분이 많은 이회토와 퇴적된 모래암석으로 구성되어 있고, 계곡 부근은 진흙, 모래, 자갈이 섞여 있다. 1960년대에 독일의 와인 양조 방법과 마리오 스키오페토(Mario Schiopetto)를 필두로 한 온도 조절 탱크가 도입되며 신선하고 과일향 넘치는 화이트 와인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프리울리에는 11개의 DOC와 3개의 DOCG, 3개의 IGT가 있는데, 전체 생산량 중 60% 이상이 DOC 등급 와인이다. 현재는 인근한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양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세부 DOC 구역으로는 콜리 오리엔탈리(Colli Orientali), 콜리오(Collio), 그라브 델 프리울리(Grave del Friuli), 이손조 델 프리울리(Isonzo del Friuli), 리손 프라마지오레(Lison-Pramaggiore) 등이 있다.

피노 그리지오: 다른 청포도 품종보다 부드럽고 향긋하며 색이 진한 화이트 또는 로제 와인을 만든다. 포도 껍질의 색은 회색기가 도는 푸른 빛과 갈색끼가 도는 분홍 빛 사이에 있다. 프랑스에서는 피노 그리, 이탈리아를 포함한 신세계에서는 피노 그리지오로 불린다. 피노 그리는 풀 바디에 아로마틱한 편으로, 레몬, 복숭아, 꿀 향을 드러내는 반면, 피노 그리지오는 중성적인 느낌을 주며 감귤류, 소금물 같은 미네랄 질감을 보여준다.

허브- 아카시아, 허니서클, 정향, 후추, 생강
감귤- 라임, 레몬, 감귤 껍질, 귤
교목류- 모과, 노란 사과, 메론, 아시아 배, 복숭아, 살구
열대 과일- 키위, 구아바, 푸른 망고, 푸른 파파야, 파인애플
흙(earthy)- 자갈, 젖은 콘크리트
와인 양조- 바나나, 크림
오크 숙성- 아몬드, 코코넛, 바닐라

김지선 기자는 국제 와인 전문가 자격증 WSET 어드밴스드 과정을 수료후 WSET 디플로마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와인 강의와 컨텐츠를 통해 전 국민이 와인의 참맛을 느끼도록 힘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김지선기자 j.kim@sommeliertimes.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