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영 소믈리에

[칼럼리스트 김도영] "인생이  맥주라면  첫잔은 가장  달콤한 순간이다" 하루를 끝내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맥주한잔의 여유는 모든 직장인들의 소박한 꿈일 것 같습니다. 그 소박한 꿈조차 한숨지을 분들을 위해 오늘은 맥주에 관한 내용입니다. 필립 들레름이라는 작가는 그의 책 “첫맥주 한모금”이란 책에 맥주 첫잔의 의미를 적어 놓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딱 한 잔이다. 
그 다음에 마시는 맥주는 마시는 시간만 점점 더 길어지고, 평범해 질뿐이다.
그 다음 잔들은 미지근하고, 들척지근하고, 지리멸렬하게 흥청댈 뿐이다.
마지막 잔은 어쩌면 끝낸다는 환멸의 감정 덕택에
어떤 힘 같은 것을 되찾을지도 모르지만......
<중략> 
첫 잔은 본능적으로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맥주 첫 잔이 주는 기쁨은 하나의 문장처럼 모두 기록된다.
<중략> 
우리는 맥주 색깔도 음미한다. 우리는 모든 지혜와 기다림을 동원해서 지금 막 이루었다가 또 지금 막 사라져 버린 기적을 손에 놓고 싶어한다. 유리잔 바깥에 씌어 있는 맥주 이름을 만족스럽게 읽어 본다. 컵과 내용물이 서로 질문을 던지고, 텅빈 심연 속에서 서로 무언가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 비밀을 주문으로 만들어 영원히 소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태양이 와서 빛의 방울을 흩뿌려 놓은 하얀색 작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실패한 연금술사는 황금의 외양만을 건져낼수 있을 뿐이다.
이제 맥주를 마실수록 기쁨은 더욱 더 줄어든다. 그것은 쓰라린 행복이다. 우리는 다만 첫 잔을 잊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다.  <필립 들레름 - "첫맥주 한모금"중에서>

술을 마심에 있어서 첫잔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대개의 첫 잔은 건배사와 함께 시작되기도 하며 술을 마시는 이유와 그 자리의 목적을 설명하기도 하며, 일종의 종교의식 행사처럼 집단의 연대감과 공동체적 가치를 확인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잔들은 필립 들레름의 표현처럼 말한 것 처럼 미지근하고, 들척지근하고, 지리멸렬하게 흥청댈 뿐입니다. 그 모습은 우리의 음주문화가 떠올라 지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첫잔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첫잔, 첫번째 요소를 강조하는 것은 1이라는 숫자로 술을 이야기 하려는 것인데요, 와인에서는 퀴베(Cuvee)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표현으로 쓰이는데, 그 중에 하나가 첫번째 짠 포도즙을 뜻합니다. 마찬가지로 맥주에도 첫번째 맥즙으로만 만든 맥주가 있습니다. 오늘 말하고자하는 일본맥주 ‘기린 이치방 시보리’입니다.

일본에는 많은 맥주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익숙하게 잘알려진 맥주를 들라면, 삿포로, 아사히, 기린맥주가 아닐까 합니다. 1876년 일본최초의 맥주회사인 삿뽀로가 생긴 이후 크고 작은 맥주회사들은 탄생하였고, 전역에 흩어진 여러 곳의 공장에서 다양한 맥주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섬나라라는 지형적특성과 ‘일단 맥주부터’라는 일본의 음주습관은 일본맥주의 맛과 제품을 다양하게 만들어 놓게됩니다. 일본 근대 음식문화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면 일본맥주의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술도 음식의 하나이니깐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은 서양을 닮고, 서양처럼 되는 것 그것을 그들은 근대화라 믿게됩니다. 그래서 서양의 문화를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일본은 675년 덴무왕이 내린 <육식금지령>에 의해 소, 말, 닭과 같은 육식을 금지해 왔습니다. 1,200년간의 원칙이 깨진 것은 근대화 과정에서의 서양 따라하기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는데요. 그들은 서구와 비교했을 때, 그들의 작은 체구를 서양에 맞춰 개선시키기 위해 서양의 식문화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일본의 맥주와 위스키의 시작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서구의 문화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들은 근대화를 꾀했지만, 여기서도 하나의 원칙은 있었습니다. 철저히 받아들인 서구의 문물은 그들 특유의 장인정신과 전통을 결합시키는 묘를 보여줍니다. 시작은 이질적인 것이나 그것에 자신의 전통과 장인정신을 살려 파격을 가하고, 결국 자기 것으로 변형시켜 이전과는 다른 영역을 만들어 냅니다.

“일본의 성장은 맥주와 함께였다.” 일본 삿포로 맥주 CF속에서 모델 기무라 타쿠야가 한 말입니다. 일본에서 맥주란 어떤 의미인가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기린 이치방시보리. 이치방(いちばん)이 첫번째 그리고 ‘시보리(しぼり)’는 짜내다를 뜻하고, 이 맥주는 첫번째 맥즙만을 가지고 만든 제품입니다. 기린은 우리가 듣자마자 떠올릴만한 아프리카의 목이긴 동물이 아닌 중국전설에 나오는 행운의 상징인 전설속의 동물입니다. 유럽의 맥주회사들이 여러동물의 형상을 제품의 라벨에 그려넣었듯이, 기린맥주는 전설속 기린 모양을 그들의 제품 상징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재주가 뛰어나 앞날이 촉망받는 사람을 가리키는 “기린아”라는 표현도 이 “기린”에서 나온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맥주를 만들 때, 원료인 맥아를 불린 엿기름(Wort)에서 맥즙이 만들어집니다. 이 때, 맥즙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뜨거운 물을 부어 추가적으로 맥즙을 추출해 냅니다. 기린이치방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첫번째 맥즙 100%를 이용해 만들어 내는데, 바로 이 점이 기린이치방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오로지 첫 번째 맥즙만으로 만들어진 맥주 그것이 바로 기린이치방입니다.

우리가 흔히 녹차를 우려낼 때는 두 번째 우려낸 녹차의 맛을 더욱 높게 칩니다. 말라 있는 녹차잎이 수분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기에 첫 번째 우려냈을 때 진한 성분과 맛이 우러나지 않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두 번째 우려냈을 때가 가장 최상의 상태라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부터는 그 맛과 향이 연해지기 때문입니다.

맥주를 만들때는 맥즙을 추출할 때, 첫번째에서 대부분의 무기질과 주요성분들이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것은 맥주가 가지는 특유의 풍미를 진하게 담게 됩니다. 맥주가 가진 날것 그대로의 특징이 묻어나게 되죠.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기린 이치방의 끝맛은 다소 거친듯 그러나 진한풍미가 느껴집니다. 일본맥주맛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뽑는 것이 쌉싸름함 즉 드라이함입니다. 술에서 드라이하다는 의미는 쉽게 표현하자면 ‘달지않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기린이치방은 이런 드라이함을 강하게 느낄수 있어, 맥주 본연의 맛에 충실하기도 하거니와 첫번째라는 가치와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일본 맥주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면 미국인 W. 코프랜드가 1870년, 요코하마 야마테에 “스프링 배리 브루어리”를 설립하였고, 이후  코프랜드가 맥주사업에서 철수하고, 이 공장을 기반으로 재팬브루어리사가 설립됩니다. 1885년 기린맥주 창립이후 기린맥주는 일본의 최대맥주회사로서 성장해왔고. 설립 3년뒤인 1888년 그들은 ‘기린맥주’라는 브랜드를 내놓고 이듬해 지금의 기린 라벨의 원형을 라벨에 붙이기 시작합니다. 1972년에는 일본맥주시장의 60%를 장악할정도로 판매량이 증가하게 됩니다. 또한 1990년 런칭한 <기린이치방 시보리>는 기린맥주의 가장 성공적인 간판브랜드가 되었습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후 개항과 동시에 국내에 들어온 삿포로맥주이래 아사히, 삿포로, 기린맥주로 대표되는 일본맥주는 국내 수입맥주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삿포로가 1876년 설립된 첫번째 일본맥주회사, 아사히가 일본맥주 판매 1위  그리고 기린맥주는 첫번째 맥즙으로 만든 기린이치방을 중심으로 일본맥주에는 ‘1’이라는 공통의 코드가 존재합니다. 거기에 더해 ‘일단 맥주부터’라는 일본의 맥주문화 그들에겐 맥주는 그들 일상의 가장 우선순위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 그들의 맥주에 관한 문화가 오늘날의 일본 맥주를 만든 하나의 배경이 될 수 있습니다

섬나라 일본. 섬이란 것은 바다에 둘러싸인 고립된 지역일 수 있겠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어디든 뻗어나갈수 있는 개방된 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을 편견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에 맞게 파격을 가해 변형시키고, 이후에는 완전히 독립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 분명 배울만 한 내용입니다. 맥주한잔만 놓고 본다면 맛있는 즐거움을 느낄법도 합니다만, 일본의 역사왜곡과 과거사문제로 비난이 이는 지금 그들의 맥주만큼 열린마음과 첫잔의 의미를 살펴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칼럼관련문의: 김도영 소믈리에 beerstorm@sommeliertimes.com)

사진 : 하이트진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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