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food'(한식) 했을 때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비빔밥이다. 과거 TV 예능 무한도전에서 한식 홍보 영상을 만들 때도 비빔밥을 주제로 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외양이 화려하고 예쁘다. 색색의 야채를 가지런히 올려둔 비빔밥은 소위 말해 '그림이 된다'.

두 번째로 누구나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 조합이 자유롭기 때문에 개인의 취향과 식성에 맞춰 먹을 수 있다. 채식주의자는 계란과 고기를 빼면 되고, 매운 것을 못 먹는 사람은 고추장 대신 간장으로 비벼 먹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웰빙 음식이다. 야채를 많이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라 웰빙 트렌드에도 적합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비빔밥은 한식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고 있다.

실제로 한국 음식 중 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잘 팔리는 음식이기도 하다. 외국 대도시에 가면 비빔밥을 발견하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꼭 한식당이 아니라도 아시아 음식점, 퓨전 음식점에서 Bibimbap (비빔밥)을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솜대리의 한식탐험에서는 이런 비빔밥에 대해 알아볼 예정이다.  

▲ 무한도전의 한식 광고가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상영되고 있는 장면 (사진 출처: 아시아경제)

비빔밥은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굉장히 독특한 음식이다. '비빔'이라는 형식 때문인데, 밥을 다른 음식과 비벼먹는 요리는 한국의 비빔밥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쌀 요리는 대개 쌀을 익혀서 다른 음식과 곁들여 먹거나 (쌀밥), 밥을 다른 재료와 볶아서 먹거나 (볶음밥), 밥 위에 다른 음식을 얹어서 먹는 (덮밥) 형식이다. 겉모습만 보면 덮밥과 비빔밥은 비슷한 경우도 있지만, 반드시 모든 재료를 섞어서 먹어야 하는 비빔밥과 달리 덮밥은 밥과 재료를 따로 먹던 한 입에 먹던 상관이 없다. 그래서 비빔밥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설명이 필요한 음식이다. 비빔밥을 처음 먹는 외국인들은 밥과 나물을 따로 먹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 국적기에서 기내식으로 비빔밥을 제공할 때, 외국인에게는 비빔밥 먹는 방법이 적힌 설명서를 함께 제공한다.

▲ 기내에서 제공되는 비빔밥 먹는 법 설명서 (사진 출처: 아시아나항공)

비빔밥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농사일을 하다가 밥을 먹을 때 제대로 밥상을 차리기 어려워서 한 그릇에 여러 음식을 담아 먹던 관습이 발전한 것이라는 설, 제사를 지내고 나서 음식을 나눠먹을 때 그릇이 부족해 밥 위에 제사 나물 등을 한 번에 올려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 새해가 되기 전 묵은 음식을 처리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설, 궁중음식에서 기인했다는 설 등등이다. 비빔밥의 정확한 유래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유래설을 통해, 비빔밥이 상황과 계급을 막론한 모두의 음식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비빔밥이 모두의 음식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비빔밥의 다양성이다. 모두가 자기 처지에 맞게, 입맛에 맞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먹을 수 있었고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양성이 특징인 덕에 비빔밥의 변천사는 화려하다. 비빔밥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조선시대에 발견된다. 조선시대 문헌에 기록된 이 시기의 비빔밥은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미식가였던 이규경이 이야기한 비빔밥을 보자. ‘비빔밥, 채소 비빔밥은 평양 것을 으뜸으로 친다. 다른 비빔밥으로는 일종의 회덮밥인 갈치·준치·숭어 등에 겨자 장을 넣은 비빔밥, 구운 새끼 전어를 넣은 비빔밥, 큰 새우 말린 것, 작은 새우, 쌀새우를 넣은 비빔밥, 황해도의 작은 새우젓갈 비빔밥, 새우 알 비빔밥, 게장 비빔밥, 달래 비빔밥, 생호과 비빔밥, 기름 발라 구운 김 가루 비빔밥 등이 있다.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진미로 여긴다’ (문화원형백과 조선시대 식문화, 한국콘텐츠진흥원).

지금은 먹지 않는 다양한 비빔밥들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비빔밥이 유명한 지역도 달랐다. 지금은 전주비빔밥이 유명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평양, 해주, 진주비빔밥이 유명했다. 참고로 평양 비빔밥은 볶은 소고기와 약고추장이 들어가고, 해주 비빔밥은 쌀밥을 돼지기름에 볶은 후 고명을 올려 비벼 먹는다. (고명에는 반드시 닭고기가 포함된다.) 진주비빔밥은 육회가 들어가고 선짓국을 함께 먹는다. 

오늘날 대표적인 비빔밥인 전주비빔밥과 돌솥 비빔밥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건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전주비빔밥의 경우 전주 지역에서는 오래 먹어왔지만 평양, 해주, 진주비빔밥만큼 전국적인 명성은 없었다. 1960년대 외식 문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하던 무렵 한 백화점에 전주비빔밥이 입점했고, 이 곳의 비빔밥이 서울에서 인기를 끌면서 전주비빔밥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참고로 전주비빔밥은 밥을 할 때 육수를 사용하며 콩나물을 반드시 넣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돌솥비빔밥은 역사 자체도 오래되지 않았다. 1960년대 한 음식점에서 개발한 것이다.  

▲ 오늘날 가장 유명한 지역 비빔밥, 전주비빔밥

위에 언급했듯 비빔밥은 그 다양성 때문에 시대가 바뀌어도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다. 다른 음식도 시간이나 지역에 따라 바뀌긴 하지만, 비빔밥의 변화는 훨씬 유연하다. '비빔'이라는 틀 안에서 어떠한 변형도 허용한다. 그래서 식문화의 변화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새로운 식재료가 인기를 끌면 곧 그 재료를 활용한 비빔밥들이 등장한다. 아보카도 명란 비빔밥, 낫토 비빔밥이 그 대표적인 예다. 오늘날은 '플랫폼의 시대'라고 한다. 비빔밥은 하나의 음식이라기보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여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색깔을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변화에 유연한 것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비결이다. 다른 한국 전통 식품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되새겨 보아야 할 부분이다. 

※ 지난 1년 간 연재된 솜대리의 한식탐험 시즌2는 이번 편으로 마칩니다. 내년 1월부터는 새로운 모습의 시즌3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소믈리에타임즈 솜대리 somdae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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