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커피, 삶을 디자인하다] <7> 어디서나 피는 장미, 산티아고 가는 길

언젠가는 리아스 바익사스 해안 언덕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며 이 와인을 마셔야겠다는 꿈을 꿉니다.
승인2019.01.15 10:11:58

시음 와인
Santiago Ruiz '
O Rosal' RIAS BAIXAS 2015

품종 Albarino

세스 노터봄은 그의 예술적 기행문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스페인에 오면 시간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시간이 녹는 모습으로 치자면 달팽이처럼 흐느적거리며 문드러지는 시계를 그린 달리만큼 근사하게 그려낸 사람이 또 있을까?"라고 말했습니다.


▲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일부 <사진=Jimmy Baikovicius>

스페인 북동부는 살바도르 달리의 고향입니다. 지중해와 면한 그곳 해안의 절벽을 그린 달리의 그림에는 무엇이든 녹아내리고 시체처럼 축 늘어진 시계들이 발효된 치즈처럼 흐물흐물합니다. 그는 삶의 종말을 상징하는 시대의 풍경을 그렇게 묘사했습니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은 달리의 그림처럼 몽롱하지만, 그 경이로움은 끝을 모릅니다.

스페인 북서쪽에 위치한 리아스 바익사스는 스페인에서 가장 흥미로운 화이트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입니다. 서늘하고 비교적 습한 대서양 연안지역인 이곳은 오로지 화이트 와인 알바리뇨(albarino) 한 품종으로만 와인을 생산합니다.

'어디서나 피는 장미'라는 뜻을 지닌 오 로살(O Rosal)은 이 와인을 만든 와이너리 산티아고 루이즈가 위치한 마을 이름입니다. 마을 이름이 이처럼 아름다워도 되나요?

이 와인은 아들 내외가 이번 여름 휴가로 포루투칼과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을 여행하고 가져온 것인데, 그 여행을 추억하며 오늘 함께 시음해봅니다.

우리에게는 무척 낯선 품종 알바리뇨는 리아스 바익사스 화이트 와인이 스페인에서 왜 최고급 화이트 와인 생산지로 인식되는지를 말해줍니다.

▲ Santiago Ruiz 'O Rosal' RIAS BAIXAS 2015

파삭하면서도 크림 질감의 매우 드라이한 순수하고 깔끔한 풍미가 생동감을 보여줍니다.

레몬, 라임, 감귤 등의 시트러스 계열의 향에 더해 살구향 그리고 키위에다 아몬드의 견과류까지 느끼게 하는 개성이 뚜렷한 와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와인 한 잔으로 생(生)이 경쾌해짐을 느낍니다.

노란 은행잎이 나무에서 떨어져 사라지듯이, 불필요한 것들을 말끔히 털어버리고 가벼운 몸으로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라고 시음자에게 이 와인은 조곤조곤 충고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와인은 순례자들을 위한 와인입니다.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들에게 제격일 듯한데, 특히 이 와인의 에티켓에는 순례자들의 길 찾기 지도처럼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와이너리를 세운 할아버지(현재 3대째 가족경영)가 딸의 결혼식을 위해 청첩장에 그린 것이었다고 전해집니다.

▲ 산티아고 루이즈(Bodegas Santiago Ruiz) 와이너리 모습

사실 이 와이너리 이름도 산티아고 루이즈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연상케 합니다. 리아스 바익사스 지역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위치한 갈리시아 지방에 속합니다.

스페인의 북동부에서 북서부로 유장하게 이어지는 산티아고 순례 여행의 종착지가 바로 이 성당입니다.

"순례는 성스러운 장소를 향해 걷는 여정이다. 순례자는 무턱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을 향해, 하나의 약속을 향해 걷는다" <걷기의 철학>

그러려면 몸에 대한 노동이 필수적이지요. 달리의 시계처럼 축 늘어진 몸을 일으켜 세우고 목적지를 향해 매일매일 길을 재촉해야 합니다.

이때 걸음걸이는 물질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세계에 붙들어 매인 우리의 정신과 육체의 매듭을 풀고 몸을 정화시켜 줍니다. 이처럼 긴 여정의 많은 시간을 견디려면 다시 말해 가슴과 정신을 열기 위해서는 이와같이 순수한 느낌을 주는 와인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니 나라면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 그러면 와인은 순례길을 이끄는 또 하나의 장치가 됩니다.

갈리시아 지방은 가리비가 표상입니다. 가리비는 이 지방의 특산물이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장엄한 성당 돌벽은 조각한 가리비로 덮여 있습니다. 중세시대부터 종교적 순례 길의 여행자들은 외투와 모자에 이 가리비 껍질 모양의 배지를 부적처럼 달고 가리비 그림이 그려진 이정표를 따라서 이 여행길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갈리시아 화이트 와인은 해산물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가리비와는 환상적인 페어링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와인은 바다를 품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리아스 바익사스(리아스식 해안이라는 말은 이 지명에서 유래) 해안 언덕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며 이 와인을 마셔야겠다는 꿈을 꿉니다.

"균형잡힌 시선을 가진 자는 가장 매혹적인 걸음걸이로 자신의 생(生)을 거닌다"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

이 한 잔의 와인을 마시고 매혹적인 걸음걸이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길을 떠나라고 '오 로살'은 자꾸만 나를 재촉합니다.

마숙현 대표는 헤이리 예술마을 건설의 싱크탱크 핵심 멤버로 참여했으며, 지금도 헤이리 마을을 지키면서 `식물감각`을 운영하고 있다. 와인, 커피, 그림, 식물, 오래 달리기는 그의 인문학이 되어 세계와 소통하기를 꿈꾼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마숙현 meehan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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