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지하 식품관은 인기 간식, 디저트들의 각축전이 일어나는 장소다. 일본, 프랑스, 미국 세계 각지에서 왔다는 디저트들이 눈과 코를 자극한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당당하게 세를 넓혀가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어묵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길거리 음식의 대표주자였던 어묵이 이젠 고급 간식으로 백화점 식품관에서 팔리고 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어묵에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이번 솜대리의 한식탐험에서는 우리나라의 어묵에 대해서 알아보려 한다.

어묵은 으깬 생선살을 밀가루 등과 반죽해 익힌 것이다. 조선 시대에도 어묵과 비슷한 음식이 있었다고는 하나 보편화된 것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한국에 어묵 공장을 세우면서부터이니, 우리 어묵은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라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일본은 오랜 기간 육식이 금지되어 자연스레 생선 요리가 발달했으며, 어묵도 그 생선 요리 중 하나다. 번외의 이야기지만 실은 오뎅은 어묵이 아니다. 오뎅은 어묵탕을 뜻하는 일본어다. 어묵을 뜻하는 일본어는 가마보코다. 초기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뎅과 가마보코를 구분해서 지칭했다. 하지만, 어묵을 물에 삶아놓고 파는 길거리 음식이 활성화되면서 오뎅이 어묵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 일본의 한 가마보코(어묵) 전문점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유입된 어묵이지만, 해방 이후에도 어묵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부산에서 일본인이 운영하던 어묵 공장은 한국인 직원이 이어받았다. 우리나라 최초로 한국인이 운영한 어묵 공장, 동진 식품이다. 그 이후 그 주변으로 꾸준히 공장들이 늘어났다. 어시장이 발달한 부산은 어묵의 재료인 생선이 풍부해 재료를 수급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면서 부산의 어묵 수요는 대폭 늘었다. 부산으로 피난민들에게 어묵은 값싼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도 어묵은 집에서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반찬거리로, 길거리 음식으로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 부산은 명실상부 우리나라의 어묵 수도다. 이미지는 부산시 소재 어묵 제조업체들의 공동 상표

어묵은 줄곧 서민의 음식이었다. 업계에서는 어묵을 누구나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들어왔다. 초기에 어묵은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새끼 생선, 어시장에서 손질하고 남은 생선 부위를 맷돌에 갈아 만들었다. 비싼 밀가루 대신 콩비지를 섞고, 귀한 식용유 대신 고래 기름이나 전갱이 기름에 튀겼다. 밀가루와 식용유가 보편화되고 식재료의 가공과 유통이 편리해지면서 어묵 재료에도 변화가 있었다. 오늘날 어묵에는 수입산 냉동 어육(으깬 생선살), 밀가루, 식용유를 쓴다. 하지만 어묵이 대중적인 식재료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최근까지만 해도 어묵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길거리 꼬치 어묵이었다. 실제로 2012년에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어묵의 약 80%가 사각 어묵이었다. (출처: 시사in)

▲ 겨울 길거리 음식의 대표 주자, 어묵

그러던 어묵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어묵 업체들이 어묵의 고급화에 힘을 쓰면서부터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해 봉지에 여러 장씩 담아 팔던 어묵을 하나하나 수제로 만들어 빵처럼 예쁘게 진열해 팔기 시작했다. 생선살의 비율을 높여 건강 간식으로서의 면모도 강조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어묵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부산역에 입점한 어묵 전문점에는 항상 사람들이 길게 줄 섰고, 고급 백화점 식품관에 어묵 전문점들이 입점했다. 어묵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고단백 식품이다. 단백질 섭취를 중시하는 요즘, 생선살이 많이 들어간 고급 어묵은 고단백 식품으로 어필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모양을 내기 용이하다. 반죽을 익혀 만드는 어묵의 특성상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기 쉽다. 음식의 모양이 맛만큼, 어쩌면 맛보다 중요한 요즘, 모양을 내기 쉽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어묵 업체들이 이러한 어묵의 특성을 잘 활용하면서 어묵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 백화점 식품관에 입점한 한 어묵 가게

덕분에 어묵 산업은 대폭 성장했다. 어묵 산업의 일자리, 매출, 수출액 모두 지난 10년간 약 2배씩 성장했다. (출처: 해양수산부) 이러한 기세를 타고 지난달 (18년 12월) 정부에서는 어묵 산업 발전 방안을 내놓았다. 어묵 혁신 클러스터 조성, 외국인 대상 어묵 홍보관 설치, 국제 박람회 출품 지원 등 어묵업계의 성장을 위한 계획들이 담겨있다. 정부의 목표는 2030년까지 어묵 시장의 규모를 지금의 2배, 2조 원 규모로 키우는 것이다. 정부와 어묵 업계가 힘을 합친 만큼 앞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미 어묵 업계에는 괄목할만한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 길거리 음식이었던 어묵을 백화점에서 사 먹기 시작했고, 어묵이 고로케로, 면으로 가공되었다. 어떤 변화가 더 생길지, 기대해볼 만하다.

소믈리에타임즈 솜대리 somdae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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