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음 와인
Rocche Costamagna Bricco Francesco Barolo Riserva 2011

"포도알들은 어떻게
포도송이의 정책을 알게 되었을까?"

▲ 바롤로가 던지는 질문, 고집스럽고 야만적인 바롤로 이해하기, Rocche Costamagna Bricco Francesco Barolo Riserva 2011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질문의 책>을 읽다가 문득 바롤로를 마셔야 할 것 같아서 '로케 코스타마냐 브리코 프란체스코 바롤로 리제르바 2011'를 땄습니다.
(이름이 길지요. 구세계 와인은 이름이 길면 일단 좋은 와인이랍니다)

왜 하필이면 바롤로였을까요?
이 시집의 네루다 시가 모두 질문형태로 문장이 끝나듯이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와인은 언제나 이 시처럼 질문을 남깁니다. 그동안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는 부르고뉴 와인과는 달리 화려하게 나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이 와인들은 언제나 내게 묻곤 했지요. 
맛있니? 
무슨 향이 나니? 
나의 강건함이 마음에 드니? 
아직 더 숙성되어야겠지? 
나의 고전적인 부케가 생소하지? 

그렇습니다. 바롤로를 마실 때마다 나는 이 와인을 만드는 품종 네비올로의 원래 뜻처럼 모호한 '안개(nebulous)' 속을 헤매는 나그네가 됩니다.

"타닌이 강렬하고 단단한 와인이기 때문에 어리고 숙성되지 않았을 때는 굳게 닫혀 있고 야만적이다"(로버트 파커)

"네비올로는 본질적으로 다루기 힘든 품종이다. 그렇게 고집스런 타닌과 산을 갖고 있는 품종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잰시스 로빈슨)

세계적인 두 와인평론가가 단호하게 서술했듯이 이 와인은 제어하기 힘든 늑대를 가축으로 만들어 놓은 듯 마실 때마다 위태로운 묘한 긴장감을 느낍니다.

이탈리아에는 포도의 토착품종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대략 1,000종이 넘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답니다.

"이탈리아 토착 품종을 세는 것은 바다의 파도나 바람에 날리는 사막의 모래알을 세는 것과 같다"

하지만 네비올로는 무수히 많은 그 토착 품종 중에서도 이탈리아의 귀족 품종으로 불릴만큼 중요한 와인을 만듭니다.

이름하여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입니다.

그래서 바롤로는 와인의 왕이요, 바르바레스코는 와인의 여왕으로 불립니다.

두 와인이 모두 네비올로 품종으로 만든 파워풀한 구조감과 강한 탄닌을 지녔지만 바롤로는 좀 더 강건하고 견고하며 남성적인 반면에 바르바레스코는 이에 비해 좀 더 우아한 편입니다. 이는 바르바레스코의 석회질 토양에서 유래한 부드러움으로 인해 여왕의 품격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네비올로는 10월이 되어야 수확하는 늦게 익는 품종입니다. 이 품종은 매우 높은 알코올과 높은 산도 그리고 찌를 듯한 타닌을 보여줍니다. 또한 얇디얇은 껍질에서 추출한 엷은 색소가 인상적이지만 풍부하고 섬세한 결을 지녀 종잡을 수 없는 여인의 마음처럼 어렵기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바롤로를 평가하는 기준이 표준화된 보르도나 부르고뉴의 잣대로는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바롤로는 혀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아니라 네비올로의 날카로우면서도 향기로운 아로마를 섬세하게 잡아내서 말린 체리, 말린 과일향 그리고 장미향과 송로버섯 향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향을 세심하게 만끽해야 비로소 바롤로와 제대로 만난 것입니다.

▲ 장미와 바이올렛의 부케가 복합적으로 길게 여운처럼 감돌다 사라집니다.

오늘 맛본 바롤로는 라 모라 지역의 로케 델 아눈지아타 싱글 빈야드 40년 수령 포도나무에서 생산된 와인입니다.

슬로베니아 산 오크에서 36개월 숙성 후 다시 24개월동안 병입숙성을 거쳐 시중에 나왔습니다. 따스한 햇살의 영향을 받은 크뤼에서 생산된 와인답게 장미와 바이올렛의 부케가 복합적으로 길게 여운처럼 감돌다 사라집니다. 

인상적인 플로럴한 향기와 더불어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관대한 스타일의 바롤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로케 델 아눈지아타의 이 와인은 생동감 넘치는 가성비 최고의 바롤로입니다.

이 와인 또한 세월이 지나면 그 단단함 속에 보물이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 확실합니다. 좀 더 나긋나긋해진 여인을 만나려면 뜸 들이는 시간이 아직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를 포함한 피에몬테 지역은 와인 애호가들의 메카입니다. 토스카나가 훨씬 더 현대화되고 발전된 방식으로 상업화된 지역이라면 이곳은 아직도 농장방식으로 와인이 만들어지는 문화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품질에 대해선 타협하지 않고 철저히 자신의 철학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와인 메이커들이 많이 존재하는 이 지역은 그래서 더욱 특별합니다.

▲ 비에띠(Vietti)의 와인들 <사진=vietti.com>

그런데 최근에 바롤로의 역사적 생산자 비에띠(Vietti) 포도원이 미국의 투자회사인 카일 크라우스에게 매각되었습니다. 와인스펙테이터에 이태리 와인을 이끌어갈 차세대 10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될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은 와이너리였기에 그 충격은 컸습니다. 

자연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한 와인을 만들고 싶어했던 비에띠, 와인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애썼던 그의 노고를 이제는 다시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와인 전문가 안토니오 갈리오니는 이 사태를 '순수의 종말(The End of the Innocence)'이라고 격렬하게 성토했습니다.

▲ 와인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애썼던 비에띠 와인 에티켓 <사진=vietti.com>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의 와인 문화도 서서히 인간적인 요소가 배제되어가는 것 같아 아쉽게 느껴집니다.

마숙현 대표는 헤이리 예술마을 건설의 싱크탱크 핵심 멤버로 참여했으며, 지금도 헤이리 마을을 지키면서 `식물감각`을 운영하고 있다. 와인, 커피, 그림, 식물, 오래 달리기는 그의 인문학이 되어 세계와 소통하기를 꿈꾼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마숙현 meehan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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