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은
Kaesler Old Bastard Shiraz 2006(캐슬러 올드 바스타드 쉬라즈 2006)입니다.

▲ Kaesler Old Bastard Shiraz 2006(캐슬러 올드 바스타드 쉬라즈 2006, 가운데 검은색 바틀) <사진=kaesler.com.au>

그동안 시차를 두고 몇 번의 시음을 했지만 그때마다 어려서 쉬라즈 특유의 달콤한 맛이 이 와인의 저력을 가려버려 다소 실망스러웠던 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나이가 12살이 되니 단맛이 정제되어 완숙한 자태로 반갑게 맞이해줍니다.

114년 된 포도나무에서 수확된 캐슬러의 유일한 싱글 빈야드 와인답게 매우 강렬한 풍모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극히 적은 수확량과 수작업으로 섬세하게 재배되고, 뿌리가 땅속 깊숙이 뻗어가서 길어 올린 미네랄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캐슬러의 역작입니다.

▲ 캐슬러의 늙은 포도나무, 캐슬러의 로고가 생각난다. <사진=kaesler.com>

이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인 바로사의 여름은 덥고 건조하기로 유명합니다. 2006년 빈티지는 40도가 넘는 여름의 고온을 견뎌낸 만큼 진한 컬러와 풍부한 탄닌, 그리고 단단한 과일향으로 오래도록 보관하고 마셔도 좋을 와인입니다.

바로사밸리는 호주 최대의 고급와인 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100년이 넘는 올드 바인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쉬라즈는 와인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런 쉬라즈의 가장 뛰어난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이 바로사밸리입니다. 이 지역의 풍부한 맛을 함축한 아이덴티티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캐슬러의 대표와인 '늙은이들'(old bastard)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 캐슬러의 대표와인 '늙은이들'(old bastard), Kaesler Old Bastard Shiraz 2006

호주의 바로사밸리는 쉬라즈 고목들이 존재하는 덕분에 역사와 전통과 자부심같은 아우라를 지닌 특별한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이 오래된 포도나무가 생산해 낸 생명수 같은 와인이 담긴 투명한 글라스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제 내게도 인생의 전환점이 다가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속절없이 늙어갑니다. 빛나던 인생의 한때는 흐르고, 스쳐 지나가고, 꽃잎처럼 흩날려 사라집니다.

강물의 물줄기처럼 도도히 흘러가는 시간을 누가 되잡을 수 있을까요? 시간은 오로지 모든 존재의 소멸을 향해 나아갈 뿐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과거에 매달리기보다는 '지금'을 이야기하고 현재를 받아들이는 태도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떤 순간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도 '지금'을 감각적인 시간으로 즐겨야 인생이 즐거울 수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에서 클링조어는 그의 친구 루이스에게 말합니다.

"감각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양자는 하나이고, 모두 똑같이 좋은 것이야. 자네가 어떤 여자를 포옹하든, 시 한 편을 쓰든, 그건 똑같은 것이란 말일세. 여기에 중요한 것, 즉 사랑, 불타오름, 사로잡힘 등만 있다면 자네가 아토스 산 위의 수도승이건 파리의 바람둥이건 마찬가지란 말일세"

그러니 누가 인생을 알기나 한답니까. 그냥 삶의 끝까지 나아가면서 늘 새롭게 오늘을 즐겨야지요. 

그래서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샤를 보들레르처럼 지금은 취할 시간입니다.

" 그대 침실의 침울한 고독 속에서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괘종시계에게
달아나는 모든 것에게, 신음하는 모든 것에게,
굴러가는 모든 것에게, 노래하는 모든 것에게,
이야기하는 모든 것에게 물어보라, 지금이 몇 시냐고.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괘종시계가 이렇게 대답하리니.

'지금은 취할 시간!' "

쉬라즈의 오래된 포도나무가 제공해주는 이 와인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음미합니다. 자두와 제비꽃 향, 블랙베리와 블랙커런트 향이 달콤하면서도 스파이시하게 입안을 가득 채워 내 몸의 감각을 깨워줍니다.

그러자 나의 온몸이, 인생이 달콤해졌습니다.

지금이 몇시냐고 묻지마라
지금은 오직 취할 시간.

마숙현 대표는 헤이리 예술마을 건설의 싱크탱크 핵심 멤버로 참여했으며, 지금도 헤이리 마을을 지키면서 `식물감각`을 운영하고 있다. 와인, 커피, 그림, 식물, 오래 달리기는 그의 인문학이 되어 세계와 소통하기를 꿈꾼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마숙현 meehan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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