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와이너리 투어에서 만난 리슬링의 새로운 모습들

깨끗한 과일맛, 휘발유 향, 모젤과 라인가우는 독일 리슬링의 전부가 아니었다
승인2019.04.02 15:23:35

높은 산미, 상큼한 사과와 감귤 향. 청량하고 깨끗한 맛. 미네랄리티. 리슬링에서 쉽게 연상되는 단어들이다. 여기에 리슬링만의 특이함이라고 할 수 있는 휘발유 향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우리에게 익숙한 리슬링 와인의 이미지가 완성된다. 생산되는 곳은 어디일까? 가장 유명한 곳은 단연 독일이고, 그중에서도 모젤과 라인가우가 대표 산지로 언급된다. 내가 리슬링에 대해 아는 것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세계에서도 으뜸가는 스위트 와인 TBA(Trockembeerenauslese, 귀부 곰팡이의 영향을 받아 쪼그라든 포도로 만든 와인), 아우스레제 등을 제외하면 평소에 접하는 리슬링 와인 대부분도 대동소이했다. 그 깨끗하고 상쾌한 맛만 즐기기에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리슬링의 참매력을 모르던 나를 하늘이 가엽게 여기신 걸까? 얼마전 독일 와인 협회(Deutsches Wein Institut, DWI)의 초대로 프로바인(ProWein) 취재를 마친 후 독일의 와이너리를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DWI도 독일 리슬링의 보편적인 이미지를 알고 있어서인지 해외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와인 산지와 리슬링 와인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소개해 주었다. 3일간의 압축된 독일 와이너리 투어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 들었는데, 그중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독일 리슬링의 새로운 모습은 다음의 4가지였다.

리슬링은 무조건 휘발유 향이 난다?

▲ 깨끗한 과일향을 보여준 바인굿 손의 와인들 <사진= 김지선>

특이하게 수많은 와인 중 리슬링 와인에서 유독 휘발유 향이 난다. 가솔린 향이라고도 불리는 이 향은 호불호의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데, 와인을 이제 막 마시기 시작했다면 좋아하기 어려운 향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차마 목으로 넘기지 못할 맛이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없어서 못 마실 정도로 좋아한다. 국내에서 마신 대부분의 리슬링 와인은 독일, 알자스, 호주 할 것 없이 자주 휘발유 향을 보여주었다. '리슬링=휘발유'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생긴 이유다.

그러나 이번 독일 와이너리 여행을 다녀온 후 모든 리슬링에 휘발유향이 있지는 않다는 걸 실감했다. 10군데의 와이너리에서 맛본 와인들에는 한결같이 과일향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생산자 역시 휘발유향보다는 '산도'와 '미네랄리티'에 힘을 주어 말했다.

품종 자체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리슬링의 휘발유향은 특정 조건에서 더 강화된다. 예를 들면 포도가 따뜻한 곳에서 자라거나, 따뜻한 해에 자라거나, 와인이 병에서 숙성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강해진다. 한국에서 마셨던 와인들 대부분이 2016년 이전 빈티지임인데 반해 이곳에서 마신 와인들의 빈티지는 2018, 2017이어서 더 신선한 풍미가 두드러졌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와인 초심자에게는 반가운 정보다. 알자스보다는 모젤 등 서늘한 곳의 와인이나 어린 빈티지 와인을 고르면 새콤달콤한 리슬링을 편하게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리슬링은 오크와 어울리지 않는 와인이다?

"리슬링은 꽃향기부터 미네랄리티까지 드러내는 깨끗한 와인이다." 휴 존슨(Hugh Johnson)

"가장 잘 익은 리슬링은 응축된 순수한 과일 향과 아주 뛰어난 자연 산미가 있다."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

세계의 유명 와인 전문가들은 리슬링의 특징으로 깨끗함, 과일 향, 꽃향기, 미네랄리티를 가장 많이 언급한다. 위의 특징들이 리슬링을 설명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를 리슬링의 전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내 이야기이기도 한데, 리슬링과 오크를 연결하는 일은 독일 와이너리 투어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부분이었다.

▲ 바인굿 손(Weingut Sohns) 대표 파스칼 손(Pascal Sohns) <사진= 김지선>

라인가우에서 바인굿 손(Weingut Sohns)을 운영하는 파스칼(Pascal)씨는 두 가지 스타일의 리슬링 와인을 만들고 있다. 하나는 양조 과정에서 공기를 철저히 차단하여 과일의 풍미를 한껏 끌어올린 스타일이고, 다른 하나는 오크통 발효와 숙성을 통해 공기와 와인을 접촉시켜 부드럽게 다듬은 스타일이다. 전자는 환원 방식, 후자는 산화 방식으로 불린다. 그는 이 와이너리의 최고급 와인인 '가이젠하이머 클라우저벡 에스터 게백스(Geisenheimer Klauserweg Erstes Gewachs)'를 1200L 크기의 거대한 프란코니아산 오크통에서 숙성한다. 오크통을 사용해서 만든 리슬링 와인이 있는 것이다!

와이너리를 몇 군데 더 다녀보니, 예상보다 많은 곳에서 오크통을 거친 리슬링을 만들고 있었다. 특히 에곤 뮬러처럼 역사가 오래된 곳이나 바인굿 퀸슬러(Weingut Künstler), 반 폭셈같은 유명 와이너리도 양조장에 그들만의 오크통을 사용하고 있었다. 독일에서 쓰이는 오크통은 워낙 크기도 하고 몇 년 사용한 나무여서 부르고뉴나 나파 밸리처럼 오크 향이 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서 만들 때보다 와인의 질감을 부드럽게 다듬어 주었다.

독일 리슬링, 모젤과 라인가우가 최고다?

와인을 공부할 때도, 와인을 살 때도 독일 리슬링이라면 모젤과 라인가우, 라인헤센의 와인이 가장 먼저 소개된다. 자칫 독일의 리슬링 산지는 이 두세곳만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독일의 와인 산지 13곳은 모두 리슬링 와인을 생산한다. 이중 수출량이 많고, 세계에서 명성이 높은 와이너리가 위치한 곳이 위의 세 곳이다.

▲ 미텔레인의 가파른 포도밭 <사진= 김지선>

이번 독일 와이너리 투어에서 들른 곳은 이름도 낯선 미텔레인(Mittelrhein)이다. 독일의 숨어있는 보석 미텔레인은 생산량이 워낙 적어 독일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모젤의 포도밭 면적이 8770헥타르인데 비해 미텔레인은 470여 헥타르에 불과하니, 국내에서 보기 힘든 것도 이해가 된다. 이곳은 중세에 지어진 성이 많아 이 마을의 일부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덕에 와인보다 아름다운 경치로 더 유명하지만, 미텔레인의 와인들은 15세기부터 로마로 전해질 정도로 오랫동안 뛰어난 와인을 생산해 왔다.

▲ 토니 조스트의 프리미엄 와인 바흐아라허 한<사진= 김지선>

미텔레인의 중심지이자 최고급 밭이 있는 곳은 바흐아라흐(Bacharach)다. 토니 조스트(Toni Jost) 와이너리의 7대손인 세실리아(Cecilia) 조스트도 이곳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있는데, 최고급 포도밭은 모젤을 떠오르게 할만큼 경사가 몹시 가파르다. 토니 조스트가 소유한 포도밭 바흐아라허 한(Bacharacher Hann)은 VDP가 정식으로 인정한 그로스 라거(Grosse Lage)다.

유기농·바이오다이내믹 재배, 유행을 넘어 당위로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독일의 유기농 재배 비율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유기농이나 바이오다이내믹 재배를 하기 수월한 곳은 건조하고 따뜻하며 비교적 평탄한 곳이다. 독일은 햇빛이 많이 들긴 하지만 가파른 언덕에 포도밭이 자리해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비가 많이 오기도 한다. 따라서 화학 제초제나 살충제 없이 포도밭을 일구려면 다른 곳보다 더 큰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 라인가우의 역사깊은 와이너리 퀸슬러는 1992년부터 유기농 재배를 시작했다. <사진= 김지선>

그럼에도 뛰어난 품질을 추구하는 많은 와이너리들은 유기농 또는 바이오다이내믹 재배로 포도를 기르고 있다. 라인가우에 있는 바인굿 피터 제이콥 퀸(Weingut Peter Jakob Kühn)과 바인굿 카우프만(Weingut Kaufmann)은 데메테르(Demeter) 인증을 받아 바이오다이내믹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퀸슬러 역시 살충제 사용을 최소화하고 식물과 곤충, 미생물이 자라도록 포도밭을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돌보고 있다. 환경에도 좋지만, 이러한 방식은 언덕에 위치한 포도밭이 침식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기도 한다. 이들은 포도나무 사이에 자라는 풀이나 꽃을 그대로 두며, 포도밭에서 발견한 지렁이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의 포도가 건강한 흙에서 나온 것임을 이야기했다. DWI에 따르면 현재 독일에서 유기농 재배 방식으로 운영되는 포도밭 면적은 5000헥타르에 달하며 그 면적은 꾸준히 증가하는 중이다.

모젤의 칼 뢰벤(Carl Loewen)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크리스토퍼 뢰벤(Christopher Loewen)은 "품질을 추구하는 생산자라면 요즘은 거의 모두가 친환경 재배를 택한다"고 말했다. 뛰어난 와인을 만들려면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포도를 길러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독일에서 유행이 아닌 당위의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김지선 기자는 국제 와인 전문가 자격증 WSET 어드밴스드 과정을 수료후 WSET 디플로마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와인 강의와 컨텐츠를 통해 전 국민이 와인의 참맛을 느끼도록 힘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김지선기자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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