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니 특정 지역이나 품종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가격을 통해 그 분야의 규모나 인기도, 또는 주류 와이너리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정된 생산량에서 오는 희소성, 와이너리의 유명세 등이 가격에 더해지긴 하나, 대개 품질에서 최고라 불리는 와인은 가격도 으뜸이다.  

▲ 최고가의 리슬링 와인을 만드는 에곤 뮐러 4세 <사진= 김지선 기자>

리슬링의 매력을 알아가던 무렵에도 1위의 와인을 찾아봤다. 역시나 가장 비싼 와인은 리슬링의 본고장 독일에 있었고, 그중 에곤 뮐러(Egon Müller)라는 와이너리의 스위트 와인 샤츠호프베르거 트로큰베렌아우스레제(Scharzhofberger Riesling Trockenbeerenauslese)가 다른 와인들을 제치고 1천 6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굉장한 고가 와인에 속한다. 가격을 보고 몸이 떨리려는 찰나,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대체 이렇게 비싼 와인을 만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 와이너리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잠깐 떠오른 궁금함은 시간이 흐르며 밑으로 가라앉았는데, 우연히 독일 출장 기회가 생겨 마음 한구석에 있던 궁금증이 되살아났다. 에곤 뮐러를 꼭 만나야겠다는 마음이 강렬해져 무작정 인터뷰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와인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충분하니, 이번 인터뷰에는 에곤 뮐러(와이너리의 이름도, 오너의 이름도 대대로 에곤 뮐러다)씨에 대해 알고 싶다는 내용을 적어서. 

▲ 에곤 뮐러 와이너리가 위치한 독일 모젤의 작은 마을 빌팅겐(Wiltingen) <사진= 김지선 기자>

간절함이 통했는지 에곤 뮐러 씨로부터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세계 최고의 리슬링 생산자를 인터뷰하는 기회가 내게 찾아오다니. 뛸듯한 기쁨과 동시에 걱정이 앞섰다. '잘할 수 있을까?' 와이너리에 방문하는 날 아침까지 울렁거림과 설렘 사이를 날뛰던 감정은 에곤 뮐러 씨를 만나고야 진정됐다. 

내가 상상했던 에곤 뮐러 씨의 모습은 다가가기 어렵고 위엄있는 모습이었다. 와이너리의 무구한 역사와 최고라는 타이틀, 그리고 와인들에 입혀진 가득한 찬사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차역까지 마중나온 그를 처음 보자마자 시골에 계신 삼촌을 만난 듯했다. 편안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에곤 뮐러 씨는 지난 샴페인 여행 때 만난 셀로스 씨나 아그라파 씨를 떠오르게 했다. 

최고의 리슬링은 누구의 손에서 탄생할까? 이번 인터뷰는 인간 에곤 뮐러에 초점을 맞췄다. 

▲ 에곤 뮐러 4세 <사진= 김지선 기자>

에곤 뮐러 씨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어렸을 때의 꿈은 어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항상 어머니나 아버지께 제가 언제 다 자라냐고 묻고는 했지요. 

꿈을 이루셨네요(웃음). 그렇다면 평소에 즐기는 취미는 어떤 건가요? 

자전거 타기, 와인 마시기, 책 읽기를 좋아합니다. 보통 역사책을 읽곤 했는데, 요즘은 시간이 부족합니다. 한 와이너리, 한 가정의 대표로 직원들과 가족을 책임져야 해서 요즘은 하루 하루가 바쁘네요. 

▲ 와인 숙성에 사용되는 커다란 낡은 오크통 <사진= 김지선 기자>

회사의 대표와 아버지라는 역할을 함께 하는 일은 물론 쉽지 않겠지만, 멋지게 잘 해내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에곤 뮐러 씨가 좋아하는 와인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어떤 음식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겠네요. 오늘 먹는 메뉴와 잘 어울리는 와인이라면 그게 어떤 것이든 좋아합니다. 

취향에 따라 말하자면, 나이가 들며 더 섬세하고 우아한 와인을 찾게 됩니다. 무거운 와인보다는요. 

그렇다면, 지금 셀러에 가장 많이 들어있는 와인은 무엇인가요? 

요즘 셀러에 가장 많은 와인은 부르고뉴 와인입니다. PFV(Primum Familiae Vini) 회원사의 와인들도 많습니다. PFV는 안티노리, 바롱 필립 드 로트칠드, 폴 로저 등 유서 깊은 가문이 운영하는 와이너리 연합인데, 현재 에곤 뮐러를 포함해 12개 와이너리가 소속되어 있습니다. 매년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의 와인을 시음하고, 각자의 와인을 선물합니다. 그래서 제 셀러에는 늘 PFV의 와인들이 있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에곤 뮐러는 대대로 가문이 운영해 온 와이너리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일하며 세대차를 겪은 적이 있나요? 

제 아버지는 저보다 마흔 살이 많았습니다. 제가 해외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때, 아버지는 자신을 도울 누군가가 생겨서 매우 좋아하셨죠. 일을 함께 시작했을 때부터 아버지와 저 사이에는 세대 갈등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는 제가 아주 어릴 적부터 많은 책임을 맡겼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네가 (와이너리를) 책임져야 하니 나는 뒤에서 돕겠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지켜보시다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도와주셨어요. 때가 되면 아버지가 하셨던 것처럼 저도 아들에게 와이너리를 맡기고 싶습니다. 

와이너리 일을 시작하면서,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나요? 

포도밭에서 어떤 한 가지가 싫어서 바꾸려고 한다면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하나를 바꾸더라도 모든 게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에곤 뮐러처럼 대대로 잘 운영된 와이너리를 물려받으면 크게 바꿀 게 없습니다. 

이미 정부가 와인 법에서 예외를 둘 정도로 뛰어난 밭을 갖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에곤 뮐러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나요?  

▲ 응접실 한 켠에는 가족 사진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사진= 김지선 기자>

고르기 어려운데, 처음에 아들을 안았을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물론 딸을 안았을 때도 행복했지만 아들이 3년 먼저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골랐습니다. 

혹시 아들 이름도 에곤 뮐러인가요? 

맞습니다(웃음). 우리 가문의 전통이기도 하고, 사업하기에 좋아서 이름을 물려주었습니다. 

좋은 전략이네요. 그렇다면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때가 가장 힘들었는데, 그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제 제가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요. 그래서 저는 아주 빠르게 자라야 했습니다. 그때 제가 42살이었으니 자란다기엔 좀 늦긴 했지만요. 

와인을 만들 때의 철학은? 

▲ 에곤 뮐러씨는 포도밭을 잘 돌보는 일을 최고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 김지선 기자>

철학은 와인을 만들 때 있어서 큰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은 운좋게도 아주 좋은 포도밭을 갖고 있어서 포도밭을 잘 지켜보고 돌보는 일입니다. 이런 일은 포도밭과 셀러 모든 곳에 적용됩니다. 그러니 이건 철학이라기보다는 성실한 행동이라고 해야겠지요. 

드라이 와인의 수요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혹시 드라이 리슬링 와인을 만들 계획도 있나요?

저도 드라이 리슬링을 좋아합니다. 특히 프랑스 알자스의 트림바흐(Trimbach) 클로 생 휜(Clos Sainte Hune)의 다양한 빈티지 와인을 마셔봤는데, 올드 빈티지 와인은 드라이 리슬링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과 같았지요. 그러나 우리 포도밭에서 자란 포도들은 스위트 와인으로 만들어야 완벽한 균형감을 갖게 됩니다. 

뮐러 씨의 마지막 대답에서 유행이 아닌 테루아를 좇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뛰어난 와이너리의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한결같다. 테루아. 너무도 자주 들어 '교과서에 충실한 덕에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우등생의 말처럼 들리지만, 이것만큼 분명한 진실은 없어 보인다. 

에곤 뮐러 씨의 말투와 표정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었다. 인터뷰 전날, 호주 애들레이드 힐스에 운영 중인 와이너리의 수확을 마치고 돌아왔다는데 약간 피곤한 기색은 있었으나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인상 한 번 쓰는 일 없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와이너리 주변의 포도밭과 셀러를 돌며 어떤 작업이 일어나는지 알려주던 모습은 와이너리를 소개한다기보다 와인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체험 학습을 시켜주는 것에 가까웠다. 와인에게도, 사람에게도 진심을 다하는 것. 최고라 불리는 와인 뒤에 서 있던 인간 에곤 뮐러가 보여준 모습이었다.  

* 독일 와인 법에 따르면 모든 와인 병에 마을과 포도밭 이름이 표기되어야 하나, 샤츠호프베르크(Scharzhofberg) 포도밭에서 만든 와인은 품질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아 마을 이름 빌팅거(Wiltinger)를 생략하고 출시된다.

소믈리에타임즈 김지선기자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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