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영 소믈리에

[칼럼리스트 김도영] 영어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The third time is a charm.” 어떤 일을 3번 거듭해서 마지막에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3’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the Holy Trinity)를 나타내는 수로 신성시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삼세번이라는 뜻으로 기회와 완성의 수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완성과 안정감을 주는 숫자 ‘3’ 이것이 이 숫자의 상징이자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마력일 듯 합니다.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숫자로 말씀 드렸는데요 중남미 스페인 문화권에서는 이 ‘3’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지명이 많습니다. 가령 중미지역 쿠바의 <뜨리니다드>나 카리브해의 섬나라인 <뜨리니다드 토바고>등과 같은 곳입니다. 오늘 이야기 할 술의 배경이 되는 곳 바로 쿠바의 뜨리니다드<Trinidad>입니다.

▲ 쿠바 뜨리니다드의<칸찬차라>
그것에는 쿠바 민중의 삶과
역사가 닮겨 있다

쿠바라는 나라는 우리에겐 멀고도 조금은 낯선 곳이기도 합니다. 공간적 거리감과 더불어, 사회주의 국가라는 정치적환경 그 이유는 다양할 듯합니다. 올해부터 담배세가 올라서 흡연자의 입장에서 반갑지 않습니다. 그것이 비록 건강상의 이유라 할지라도 말이죠. 한편으로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다면야 술과 담배의 유익한 면을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쿠바는 그런면에서 술과 흡연자의 천국이 아닐까 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라 하기에는 이미 수도 아바나는 상업화 되었으며, 혁명의 상징인 체게바라는 티셔츠에 새겨져 상업적으로 팔리고 있으니 말이죠. 그래도 쿠바가 아직 순수함으로 다가오는 것은 에머럴드 빛 카리브해를 배경으로 시가 한대에 모히토 한잔 마시는 상상 그것만으로 충분해 보입니다.

  쿠바를 둘러싼 ‘카리브해’라는 이름의 유래는 지극히 서양적 관점에서 말하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그가 1493년 2차 탐험에 나서고 황금을 찾아 쿠바 내륙 깊숙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스페인 침략자와 끝까지 용기있게 맞서 처참하게 운명을 맞은 원주민 부족의 이름 ‘카리브’의 이름을 따서 콜럼버스가 그곳까지 지나온 험난했던 바다를 ‘카리브해’로 이름 붙이게 되죠.

  “흡연자의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쿠바답게 카페에서도 거리에서도 흡연은 자연스럽습니다. 사실 쿠바의 시가와 담배는 단순히 기호품이라기 보다 더 역사성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쿠바의 시가중 대표적인 상품이 <코이바>인데, 카리브해 지역에 있던 ‘아라와크 족’이 담배피우는 의식을 ‘코이바’라고 하는데서 유래했으며, 쿠바의 다양한 시가들은 필터부분에 띠를 두르면서 좀더 고급화되었습니다. 이것이 1840년경 부터인데, 이 담배 띠는 러시아 여제 <예카트리나>가 담배를 피울 때, 손가락이 담배 연기에 찌들지 않도록 띠를 둘렀던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시가는 쿠바의 독립혁명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1895년 2월 스페인 식민정부에 대항한 혁명군과 민중의 일제 행동 개시에 대한 암호를 담배 안에 끼워 전달했기 때문이죠. 늘 시가를 물고 다닌 <체게바라>처럼 시가는 쿠바혁명군의 상징이자 쿠바독립의 상징이 됩니다. “게릴라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안거리는 담배 한 대이다. 휴식 시간의 담배 한 대는 고독한 전사의 둘도 없는 친구다” 라는 체게바라 그의 표현대로 말입니다. 이런 상징적 의미가 있는 시가에 술이 빠진다면 좀 허전 하지 않을까요.

헤밍웨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그의 <다이퀴리>는 <엘 플로리디타>에 있고, 그의 <모히토>는 <라보데기타 델 메디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다이퀴리>는 쿠바의 한 광산이름을 미국의 ‘제닝스 콕스’라는 사람에 의해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고, 모히토(Mojito)는 아프리카의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는 모조(MOJO)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에겐 혹독한 삶을 이겨낼 희망과 용기가 필요 했을테니깐요. 오늘의 술은 <모히토>나 <다이퀴리>보다 더 쿠바스러운 그리고 시가와 제법 어울립니다. 그리고 숫자 3과 연결되는 뜨리니나드 바로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술 <칸찬차라>입니다.

칸찬차라의 배경이되는 뜨리니다드<Trinidad>는 세계문화유산도시로 지정된 곳입니다.  인근에는 사탕수수 농장지대가 있으며, 오랜 역사를 간직한 증기기관차가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남아 그때의 기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곳 뜨리니다드에서 만날 수 있는 <칸찬차라>는 모히토와 같은 일종의 칵테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흙으로 빚은 둥근 찻잔모양의 질그릇에 라임 한 개 분의 즙을 짜고, 거기에 두 스푼 정도의 꿀을 넣고 1.5oz의 럼과 얼음을 넣어 만듭니다. 뜨리니다드는 꿀이 유명하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이곳에서는 럼대신 우리의 막소주개념으로 잘 정제되지 않은 아구아르디엔떼(Aguardiente)를 넣게 되는데, 주로 콜롬비아를 중심으로 중남미에서 많이 마시는 술입니다. 쿠바의 대표적인 럼 <아바나클럽>이 정제된 럼이라면, <아구아르디엔떼>는 덜 정제된 그래서 좀 거친 맛의 럼이라고 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꿀의 단맛이 알코올을 감싸듯 상당히 달콤하면서 부드러운데, 언제나 달콤함은 모든 것을 덮어버리게 되죠. 그렇게 마시다 보면 기분 좋게 살짝 취하게 됩니다. 술 좀 마셔본 저조차도 2잔정도면 적당히 기분 좋은 취기를 느낄 수 있고 중독성이 있습니다. <칸찬차라>는 둥근형태의 질그릇에 담아 나오는데, 마치 빗살무늬토기를 보는듯한 느낌이면서 어딘가 낯익은 모양입니다. 손에 닿는 까칠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은 담겨진 칸찬차라의 맛을 손끝으로 느낄 듯합니다. 익숙함과 낯설음 그것이 함께 느껴지기에 편안함과 새로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술입니다.

▲ 칵테일 <모히또>

대개의 칵테일이라는 것이 세련된 바(Bar)나 격이 있는 파티모임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칸찬차라는 어쩌면 쿠바 민중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쿠바전통 칵테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세대를 거쳐 그 제조법이 이어져 왔으며, 뜨리니다드의 건축박물관의 역사학자들이 도시의 가장 오래된 건물에 ‘라칸찬차라’(La Canchanchara)바를 열었을 때, 행사주로 사용하였는데, ‘라 칸찬차라’(La Canchanchara) 그곳은 아직도 남아 칸찬차라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칸찬차라의 이름의 기원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해변에 부서지는 파도의 소리에서 유래를 말하고, 또는 그 지역의 언어로 여러가지 재료를 섞다는 표현에서 기원을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분명한건 역사적으로 칸찬차라가 만들어진 배경은 1868년부터 1898년 사이 스페인을 상대로 쿠바가 독립을 위해 저항한 수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맘비세스(Mambises) 즉 스페인에 저항한 쿠바의 독립군은 전쟁을 벌이면서 식량부족에 따른 영양결핍과 새벽에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견디기 위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용한 재료를 섞어서 간편히 마실 수 있도록 만들어 냈는데, 그것이 칸찬차라의 탄생입니다. 지금의 레시피는 라임즙, 꿀, 럼, 약간의 소다수와 얼음이지만, 시작은 주변의 사탕수수농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사탕수수 당밀과 잘 정제되지 않은 거친 럼을 섞었습니다.

칸찬차라는 어쩌면 가장 쿠바스러운 칵테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독립전쟁에 기원을 두고 탄생했으며, 이후에는 아프리카노예와 소작농들의 고단한 노동의 삶에서 고통을 견디게하는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쿠바등 서인도제도는 아프리카의 노예들을 이용한 사탕수수산업이 중심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노예를 강제로 데려와 농장의 일을 시키고 생산된 설탕과 럼을 유럽으로 다시 유럽의 식량과 무기를 아프리카로 보내는 삼각무역이 행해지던 시기입니다.

그런점에서 칸찬차라는 음료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하지만, 쿠바의 역사와 민중의 고단한 삶이 담겨진 역사이기도 합니다. 달콤한 인생이라는 표현처럼 그 맛은 달콤하지만, 럼의 거친 쓴맛 또한 담겨져 있습니다. 인생의 쓰디쓴 순간에도 달콤함으로 덮어버리는 그들의 삶. <칸찬차라>한잔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삶을 고스란히 마시는 기분입니다.

▲ Havana Club 3년산 럼

기자인 제가 사람들로 언제나 붐비는 라보데기타 델 메디오의 모히토를 마실 때 느낀 거지만,  잔을 일렬로 세워놓고 민트를 채워넣은 잔위로 선을 긋듯 부어 따르는 아바나 럼. 그러고 보니 그곳에서 아바나클럽 3년산 럼을 쓰고 있습니다. 럼은 3년 정도 숙성하면 서서히 색이 화이트에서 옐로로 변합니다. 5년이 지나면 좀더 진해져 골드로 7년 이상은 좀더 진해져 블랙라벨로 부르게되죠. 주로 화이트나 3년산 옐로는 칵테일제조에 쓰이며, 그 이상의 것은 스트레이트나 언더락으로 마십니다. 그 아바나클럽이라는 럼의 3년산 3이라는 숫자마저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전 3이라 쓰고 삶이라 읽게 됩니다.

(칼럼관련문의 김도영 마스터소믈리에 beerstor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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