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와인을 마시기 위해 음식을 선택하고
서양인들은 음식을 먹기 위해 와인을 선택한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와인은 음식을 곁들여 먹는 것이 원래의 역할입니다.

전문적인 시음회면 모를까 대부분의 경우에 와인 자체가 주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최고의 와인 생산지인 프랑스나 이탈리아가 최고의 음식이 선보이는 나라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지요.

음식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면 와인은 반쪽짜리 음료에 불과합니다. 

러시아식 코스요리가 유럽에 전파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와인들이 식사의 종류와 순서에 따라 서빙되기 시작했지요.

식전주는 샴페인이나 화이트,
식중주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레드나 화이트와인,
식후주는 스위트 와인, 포트 와인 등 주정 강화 와인,
마지막 입가심으로
Cognac, Grappa(이태리 증류주), Marc(프랑스 증류주) 타임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음식을 먹을 때 와인을 곁들여 마실까요?

우리가 많이 먹는 삼겹살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삼겹살을 먹을 때 우리는 구웠으면 쌈장, 
삶았으면 새우젓을 찍어 먹습니다. 

양파, 오이피클, 식초를 넣은 상치 겉절이도 등장합니다. 
불판에 묵은지를 같이 구워서 싸 먹기도 하고,
깻잎에 마늘, 새우젓에 적신 삼겹살을 싸서 먹기도 합니다.

제주도에 가면 멜젓이 나오기도 하지요.
마지막으로 찬 소주 한 잔. 캬~

삼겹살 하나 먹는대도 이렇게 다양하고 섬세한 조연들이 등장합니다.
이 조연들은 공통적으로 신 것들 입니다.

영어에 "acid cuts the fat"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치 지방을 잘라내듯 산이 느끼함을 제거해 준다는 뜻입니다.

와인에 들어 있는 타닌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느끼한 지방을 걷어내 입안을 깔끔하고 개운하게 만들어 줍니다.

화이트와인은 산도, 레드와인은 타닌이 특성입니다.
산도는 입안에서 지방을 녹여 줍니다.

레드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타닌은 땡감처럼 떫고, 혀를 쪼여 들게 만듭니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A사나 J사의 방문판매 아줌마들이 우리 어머니나 누이들의 미모를 책임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동네 아줌마들이 단체로 안방에 누워서 얼굴 마사지를 받고는 했습니다.
그때 화장품 중에 아스트린젠트(astringent) 라는 게 있었습니다.
바르면 얼굴이 당기는 느낌이 들었지요.
이게 타닌의 수렴성, 떫은맛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서양 음식은 한 접시에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섬유질이 함께 합니다.
이 전체의 균형을 와인의 산과 타닌이 잡아줍니다.

와인의 두 번째 역할은 "증폭"입니다.
전문용어로 시너지 효과입니다.

신맛과 타닌이 균형을 잡아주었다면, 그 바탕에 좋은 맛을 극대화 시켜줍니다.
와인이 음식을, 음식이 와인을, 서로의 장점을 살려주게 되지요.

워싱턴 D.C에서는 해마다 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 경연대회가 열리는데 10년 연속(2번 빼고는) 뉴질랜드 말버러 산 소비뇽블랑이 뽑혔습니다.

2번은 프랑스 부르고뉴(샤블리) 샤르도네가 선택되었지요.
두 와인의 산도가 생굴의 느끼함을 잡아주었겠다는 건 알겠는데,
또 하나 공통점은 두 와인의 산지가 과거에 바다였거나 바닷가 근처라는 점, 석회암 지역, 미네랄 향을 품고 있습니다.

바닷가, 석회질 토양, 미네랄 향(굴 껍데기 향)의 조각을 짜 맞추다 보면 결국에는 테루아(terroir)라는 개념에 도달하게 됩니다.

보르도에 유학할 때 자주 들렸던 아르카숑 해변은 유명한 굴 생산지였습니다.
허름한 바닷가 나무 식탁에는 싱싱한 석화 한 판,
그 동네가 생산지인 싸구려 화이트와인,
저녁 낙조,
아름다운 그녀,
이보다 더 좋은 와인은 존재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와인이 최고였습니다.

身土不二!

권기훈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의대를 다녔고, 와인의 매력에 빠져 오스트리아 국가공인 Dip.Sommelier자격을 취득하였다. 이후 영국 WSET, 프랑스 보르도 CAFA등 에서 공부하고 귀국. 마산대학교 교수, 국가인재원객원교수, 국제음료학회이사를 지냈으며, 청와대, 국립외교원, 기업, 방송 등에서 와인강좌를 진행하였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권기훈 a90049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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