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훈의 와인 스토리텔링] 와인에 영혼(靈魂)이 있을까?

승인2019.11.05 12:21:31

3천 년 전에 쓰여진 한 편의 시가

작은 별들이 뜬 언덕에서 풀을 뜯는
말들 사이를 거니는 한 남자에 대한 시가
어느 책의 페이지에서 생명을 얻는다

그리고 그 시를 읽는 한 여성
금속성의 노란 조명이 켜진 그녀의 주방에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고요 속에서

마치 그 순간을 사는 듯한 경험이
너무도 생생히 묘사되어서 그녀는 마침내
누군가가 자신을 아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 시를 읽을 때마다

거의 언제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녀의 상황이 어떠하든 그녀의 나이가 몇이든
제이슨 쉰더 <영원>

프랑스 루시옹 지방의 Domaine BOUDAU

일행들이 한창 설명에 집중하고 있을 때 저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벽면 한쪽에 세워진 와인들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오너인 베로니카의 할아버지, 아버지, 돌아간 남편 그리고 베로니카가 만든 와인들이었습니다.

베로니카에게 청해 하나씩, 아주 조금씩을 시음할 수 있었는데, 제가 마셨던 그 어떤 와인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아주 특별하고 신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난하기 짝이 없는 언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 무엇 이였습니다.

우리 동양에서는 氣(기)를 이야기합니다. 모든 존재에 대해 집중력을 가지고 그것들을 기를 호흡하면 그것들의 존재 체계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테루아의 존재를 먼저 확인한 프랑스의 양조자들은 땅과 햇빛과 물, 바람의 존재들을 포도송이에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Somewhereness' 또는 'Typicity'로 표현되는 지리적인 특성은 와인의 영혼을 느끼기 위한 통로입니다.

그곳의 양조자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와인병의 구석진 곳에 아주 작게 남깁니다. 그들이 자연과 테루아의 존재 뒤에 겸손하게 숨어있는 의미를 알아채야 합니다.

우리는 본질보다는 외형과 형식에 가치를 둡니다. 포화상태의 짙은 칼러, 걸쭉한 농도, 강한 타닌의 골격, 프랑스 오크통에 기대고 쉽게 반응하게 길들여져 있습니다.

RP 100점은 루이비통 명품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졌습니다. 책을 읽기보다는 TV를 보는 것이 휠씬 편합니다. 책이 주는 무한대의 감동과 영속성은 유년 시대의 유물로 밀려나 있습니다. 우리가 테루아를 느끼고 와인의 영혼을 느끼는 일은 TV보다는 책을 읽는 일입니다.

제가 그날 마신 와인의 성분 어디에도 영혼이라는 성분은 없습니다. 와인은 자연의 산물이지만 영혼으로 연결하는 것은 만드는 사람의 영역이었습니다. 와인의 영혼은 그 와인의 생산자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어야 가능 할 것입니다.

베로니카의 와인들은,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편, 베로니카의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와인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 대가 연결되는 것이 영원입니다.

3천 년 전에 쓰인 한 편의 시가 작은 별들이 뜬 언덕에서 풀을 뜯는 말들 사이를 거니는 한 남자에 대한 시가 어느 책의 페이지에서 생명을 얻는다.

와인이 가진 영혼을 느끼려는 시도가 당신의 영혼을 고결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실패하든,
또는 성공하든.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또 어디쯤 서 있는지 살피려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읽는다. 이 불가사의한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아니면 이해의 단서를 발견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밤의 도서관>의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

권기훈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의대를 다녔고, 와인의 매력에 빠져 오스트리아 국가공인 Dip.Sommelier자격을 취득하였다. 이후 영국 WSET, 프랑스 보르도 CAFA등 에서 공부하고 귀국. 마산대학교 교수, 국가인재원객원교수, 국제음료학회이사를 지냈으며, 청와대, 국립외교원, 기업, 방송 등에서 와인강좌를 진행하였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권기훈 a90049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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