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성의 400일간 세계와인기행] 프랑스, 폴 자불레 에네 (Paul Jaboulet Aine, France)

북부론 에르미따주 라 샤펠을 가다 (La Chapelle Hermitage)
승인2019.12.05 11:38:06
▲ 스위스 레만호를 발원지로 구비져 흐르는 론강을 바라보며 외로이 서 있는 에르미따주 라 샤펠

프랑스의 론(Rhone) 지방은 일찍이 로마인들이 들어와 포도농사를 시작하여 와인 역사가 2,400년이나 되었지만,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빛나는 명성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그리나, 약 30여 년 전부터 일부 와인평론가들이 론 와인의 진면목을 재평가하기 시작하면서 인기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와인에 대한 열정이 넘치던 자불레 Jaboulet 가문은 지금부터 거의 2세기 전에 프랑스 론 계곡에 자리를 잡고 메종 폴 자불레 에네(Maison Paul Jaboulet Aine)를 세워 꾸준한 성장을 보여왔고, 지금은 이 기갈(E. Guigal), 엠 샤푸티에(M. Chapoutier)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Rhone 지역의 대표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1834년 앙뚜안 자불레(Antoine Jaboubet)가 에르미따주의 가파른 언덕에 작은 포도밭을 사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고, 점차 포도밭을 확장한 결과 지금은 론 강을 따라 펼쳐진 남부와 북부 론 지역인 에르미타주(Hermitage), 크로즈-에르미타주(Croze-Hermitage), 샤토네프 뒤파프(Chateauneuf-du-pape), 꽁드리유(Condrieu), 코르나스(Cornas) 등에 약 109헥타르(33만 평) 규모의 포도밭을 보유하게 되었다.

▲ 에르미따주 포도밭 끝에 서 있는 폴자불레의 라 샤펠 교회당

창업주의 사망 이후에 아들 앙리와 폴에게 가업이 이어졌고, 아들 폴의 이름에 따서 와이너리의 명칭도 폴 자불레 에네(Paul Jaboulet Aine)로 지었으나, 2006년 샴페인 하우스 빌카르 살몽과 보르도의 샤토 라라귄을 보유하고 있던 와인회사 프레이(Frey) 가문의 손으로 경영권이 넘어가게 되었다.

폴 자불레가 만드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와인은 바로, 에르미타주 라 샤펠(Hermitage La Chapelle)이다. 북부 론을 대표할만한 최고의 명성을 가진 이 와인은 론 지역 와인으로는 가장 많이 언급되는 와인이며, 경매에서도 항상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라 샤펠(La Chapelle)이란 교회라는 뜻이며,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9년 폴 자불레가 에르미타주 언덕꼭대기에 위치한 교회를 구입한 후에 이 근처에서 수확한 Syrah 포도로 만들어 라 샤펠이란 이름을 붙이며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100% Syrah인 이 와인은 교회당 근처 포도밭 'Les Bessards, Le Meal' 그리고 'Les Rockoules'에서 나온 포도를 사용해서 만든다. 또한 화이트 라샤펠(White La Chapelle)도 만드는데, 마르산(Marsanne)과 루산(Roussanne)을 혼합해서 만든다.

▲ 폴 자불레가 만드는 전설의 라 샤펠 와인이 나오는 풍광좋은 포도밭

에르미타주 라 샤펠 1961년 빈티지는 세기의 빈티지로 유명하다. 20세기 최고 와인 12개 중 하나로 선정된 바 있는 이 와인은 지난 2007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12병 한 세트가 123,750파운드(1억 9천만 원)에 낙찰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북부론의 와인이 한병당 무려 1천 6백만 원에 달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에르미타쥬 ‘라 샤펠’이란 이름에는 숨겨진 역사가 담겨 있다. 에르미타쥬(Hermitage)는 불어로 ‘은둔자’를 뜻하는데, 불어 발음에서 H는 묵음이라 '에르미따주'로 발음한다. 론 강이 구비져 흐르는 것을 산꼭대기에서 볼 수 있는데, 가파른 언덕 위에 돌로 만든 오래된 교회당이 하나 있으니, 이를 라 샤펠(La Chapelle)이라 부른다.

▲ 입구의 경계석에 폴 자불레의 라 사펠이라 새겨져있다.

전설에 의하면 약 800년 전, 프랑스 남부 랑그독 지역에서 기독교의 이단 종파였던 카타리 파를 징벌하기 위해 벌였던 종교 십자군전쟁에 참전했던 기사 ‘가스파르 드 슈테랑베르(Gaspard de Sterimberg)’가 전쟁이 끝난 후 1235년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 산꼭대기에 조그만 교회를 짓고 평생을 기도하며 살았다고 한다.

▲ 돌로 포장이된 라 샤펠로 이어진 진입구

저자가 지난번에 올렸던 랑그독의 카르카손(Carcassonne) 성채가 바로 기독교의 한 분파인 알비주아파(일명 카타리파)가 큰 세력을 형성하면서 기존 기독교 세력과 다른 교리를 주장하였던 이단 교파들의 본산인 셈이다.

카타리(Cathari)는 청정파(淸淨派)라는 의미이며 극도의 금욕적 계율을 신봉했다. 일명 알비주아파라 불렸는데, 12세기 중반 라인강변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확산, 남 프랑스를 중심으로 세력을 구축했다. 이들은 세상을 선신과 악신과의 대립구도로 보고, 로마교회를 악마의 교회로서 공격하였으며, 『구약성서를 배격했다. 육식, 살생, 생식, 혼인, 소유 등 세속생활을 부정하고, 단식과 가혹한 고행을 실행하였기에 믿는 자는 소수였으나, 주위에서 흠모 추앙하는 자들이 많았기에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이들을 기독교의 적으로 간주하고 처단하기 위해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랑그독의 카르카손 주민들 대부분이 살육을 당했다. 아마도 가스파르라는 기사는 이 참혹한 전쟁에 참가하면서 자신이 저질렀던 죄를 뉘우치는 의미에서 작은 교회당을 짓고 참회 기도를 드리며 여생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돌로 된 작은 교회가 있는 언덕은 ‘은둔자(에르미타쥬)의  언덕’으로 불리게 되었고 여기서 빚어낸 최고의 와인은 ‘라 샤펠’로 불리게 된 것이다.

▲ 라 샤펠 아래 밴치에 앉아 흐르는 론강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동료들

론강이 내려다 보이는 풍광 좋은 언덕에 서서 은둔자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었고, 마을로 돌아와 폴 자불레의 테이스팅 룸에서 귀하디 귀한 라샤펠도 마셔볼 수 있었다.

당일 시음했던 폴 자불레의 와인은 Saint-Peray Les Sauvageres 2014, Hermitage Le Chavalier de Sterimberg 2012, Saint-Joseph Domaine de la Croix des Vignes 2012, Crozes Hermitages Domaine de Mule Blanche 2014, Crozes Hermitage Domaine de Thalbert 2012, Cornas Domaine de Saint Pierre 2012, Cote-Rotie Domaine des Pierrelles, La Chapelle Hermitage 2012 였다.

▲ 시음했던 폴 자불레의 와인들, 단연 2012 에르미따주 라샤펠이 압권이었다.

단연 최고의 와인은 라 샤펠 에르미따주 2012 였는데, 로버트 파커로부터 97점을 받았다. 짙고 깊은 루비 레드 색을 띄고, 짙은 검은 과일 향과 달콤한 향신료, 섬세한 오크향이 올라왔고 입안에서는 실크처럼 부드러운 질감의 타닌과 잘 익은 플럼, 육포의 구수한 맛, 마른 무화과 같은 향과 블랙 페퍼의 매콤함이 느껴졌다. 목 넘김 이후에도 그윽한 향이 길게 이어져 최고급 와인의 면모를 다 보여주는 듯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 폴 자불레의 와인을 시음했던 직영 와인샵 겸 테이스팅 하우스

척박한 환경에서도 조상 대대로 메마른 땅을 일구고 무거운 돌로 벽담을 쌓아 포도밭을 보호하면서,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화학비료의 사용도 없이 순수한 유기농으로 포도를 키워낸 결과 이렇게 농축되고 화려한 향을 지닌 와인을 만들어낸 이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이 참으로 숭고하게 보였다.

▲ 에르미따주의 석양은 이날 따라 무척 아름답다.

김욱성은 경희대 국제경영학 박사 출신으로, 삼성물산과 호텔신라에서 일하다가 와인의 세계에 심취하여 프랑스 국제와인기구(OIV)와 Montpellier SupAgro에서 와인경영 석사학위를 받았다. 세계 25개국 400개 와이너리를 방문하였으며, 인문학 와인강의 및 ‘김박사의 와인랩’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욱성 kimw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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