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될수록 좋은 와인이라는 믿음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자연과학이 와인에 적용되기 전에는 와인의 양조와 보관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와인은 수확 다음 해 여름을 넘기지 못하였고, 이런 와인은 오래 될수록 값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몇몇 유명한 샤토에서 나오는 와인은 1년, 2년 더 오래 보관을 해도 맛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좋아지니까, 이런 와인은 값이 비싼 것은 물론, 명품으로 찬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즉 와인은 오래될수록 좋은 것이 아니고, 오래 되어도 그 맛이 변하지 않는 와인이 좋다는 것이다. 3년 묵은 간장이라면 변질된 것이 아니고 간장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오히려 깊은 맛과 향을 가진 것이라야 된다.

16-17세기에 프랑스에서 마시는 와인이라고 해야 조악하고 겉보기에도 탁했으며 거칠었고 오래 가지 못했기 때문에, 예외가 있긴 하지만, 다음 해 와인을 담그기 전에 모두 마셔야 했다. 즉 와인의 수명은 수십 년이 아니고 1년을 목표로 담그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보다 투명하고 풍미가 섬세한 와인이 가장 귀한 와인으로 평가받았고, 와인은 다음 해 6월 이전에 모두 소모해야 된다는 믿음이 지배적일 때였다. 이들은 이때를 넘기면 와인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여름이 되면 와인 질이 떨어지기도 했던 때다.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1500년대에는 오래된 보르도 와인이 담긴 오크통 하나가 6리브르밖에 안 됐지만, 갓 담근 와인이 담긴 오크통 하나는 50리브르나 되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근대적 와인의 시대가 열린 1600년대 후반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와인은 다른 작물과 구별되지 않는 농작물에 불과했다. 와인의 생산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며, 와인 가격은 수확한 해가 지나고 햇와인이 나오면 폭락했다. 이렇게 대부분의 와인은 오래될수록 질이 떨어지는 것이었으나, 특정 지역의 것은 3년, 5년, 10년을 두어도 맛이 유지되는 것이 있었으니, 이들이 오늘날 ‘그랑 크뤼(Grand Cru)’가 된 것이다.

▲ 김 준철 원장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준철 winespiri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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