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대리의 한식탐험 3] 왜면에서 대표 국수로, 소면

승인2019.12.17 16:17:37

'그래서 국수는 언제 먹게 해 줄 거야?' 결혼 전 어른들께 자주 들었던 얘기다. 결혼 적령기의 사람들이라면 자주 들었을 말, 결혼은 언제 하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국수는 결혼식과 자주 연관 지어진다. 스테이크가 나오는 호텔 결혼식에서도 국수가 꼭 나오고, 사람들은 고기를 먹고 배가 불러도 '결혼식에 왔으면 국수 한 젓가락은 먹어야지' 하면서 젓가락을 든다. 이때 먹는 국수는 하얗고 얇고 매끈한 밀가루 면, 소면이다. 소면은 결혼식이 아니라도 점심때 간단하게 먹는 잔치 국수나 비빔국수로, 술안주로 자주 먹는 골뱅이 무침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나라 소면의 역사는 짧아 짜장면, 라면 등과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이번 솜대리의 한식탐험에서는 우리 일상의 소면과, 소면이 우리 일상으로 들어오기 까지를 이야기 하려 한다.

▲ 소면을 사용한 재첩 국수

소면은 특징은 얇은 두께와 만드는 방식에 있다. 소면은 1mm가 간신히 넘는 얇은 밀가루 건면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1.3mm가 넘지 않아야 소면이라고 본다. (손으로 만든 면의 경우 1.7mm까지 허용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보다 두꺼운 면은 중면으로, 더 얇은 면은 세면으로 구분한다. 얇은 두께와 중면, 세면의 존재 때문에 소면은 小麵, 작은 면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오해다. 소면의 소자는 작을소(小)가 아닌 흴 소(素)로 흰 국수라는 뜻이다. 소면이 대중화된 후 면의 굵기를 다양한 제품들이 나오고, 이 제품들에 면의 굵기에 따라 중면, 세면과 같은 이름을 붙이면서 이런 오해가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소면은 잡아 늘리는 방식으로 만든다. 밀가루 반죽을 마르지 않도록 기름을 발라가며 늘린 후 국수 가락 모양이 된 반죽의 양 끝을 막대기에 걸고 살살 잡아당긴다. 이렇게 완성된 얇은 면을 건조한 것이 바로 소면이다. 소면은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후 12~13세기 일본으로 전파되었다가,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 한 일본 소면 제조 업체의 소면 제조 모습 (출처: https://www.masugiseimen.com/)

소면 이전에도 우리나라 자체 국수 문화가 있기는 했지만 대중적이지는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밀가루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국수의 주 재료는 밀가루다. 쌀이나 메밀 등 다른 곡식으로 국수를 만들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탄력을 형성하는 글루텐이 밀가루만큼 많지 않아서 면으로 만들기가 어렵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 밀가루가 거의 나지 않는다. 드라마 대장금을 봤던 사람이라면 장금이가 밀가루를 잃어버린 후 얼마나 고생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밀가루 국수가 있긴 했지만 궁궐이나 양반가에서 특별한 날에나 먹는 음식이었다. 잔칫날이나 손님이 오셨을 때 내놓는 귀한 음식이 국수였다. 오늘날 잔치나 결혼식에 면을 대접하는 것도 이때의 영향이다. 참고로 이 당시 국수는 주로 칼국수로 반죽을 늘려 만든 소면과는 달랐다. 메밀가루를 구멍이 송송 난 국수틀에 밀어 만든 메밀국수도 있었지만 밀로 만든 국수에 비해서는 대접 받지 못했다.

▲ 반죽을 칼로 썰어 만든 칼국수

밀가루 음식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건 개화기 때부터다. 외국 식재료와 외국 문화에 대한 유입이 활발해지면서 밀가루가 수입되고 밀가루 음식들도 유입됐다. 소면도 그중 하나다. 개화기 이전에도 소면은 우리나라에 간간히 수입됐지만 '왜면'이라고 불리며 낯선 일본 음식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일제시대에 이르러서는 우리나라에 소면 생산 공장도 생기면서 소면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식문화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음식 속에서 조금씩 발자취를 넓혀가면 소면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해방 이후다. 부족한 쌀 대신 미국에서 원조한 밀가루를 소비하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혼분식 장려운동에 나섰다. 밥 대신 밀가루 음식을 먹으라는 것인데, 분식 먹는 요일(무주일)을 정해서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식당에서 분식만 팔게 하기도 했다. 이때 적극적인 정부의 장려와 저렴해진 밀가루 가격으로 짜장면, 라면 등 여러 밀가루 음식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소면도 본격적으로 대중화되었다. 

▲ 혼분식 장려 운동 (출처: 부산일보)

건조면이라 보관이 쉽고, 가격이 저렴하며, 얇은 두께 덕에 금방 익는 소면은 금세 우리나라 음식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잔치 때 먹는 국수도 소면으로 대체되었고, 각종 국물요리와 볶음요리에 소면이 곁들여졌다. 어느새 '국수'는 곧 '소면'을 뜻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음식문화에 녹아들면서 소면은 일본 소면 요리와 다른 우리나라만의 색깔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에서 소면은 주로 소바처럼 쯔유(일본간장)에 살짝 찍어 먹거나 맑은 국물에 담가 내는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진한 양념과 곁들여 먹는다. 각종 찌개와 탕, 골뱅이 무침 등에 곁들여지면서 진한 국물이나 양념과 함께 먹게 되었고, 잔치국수로 먹을 때조차 갖은양념(간장, 고춧가루, 참기름 등)을 곁들인다.

솜대리의 한식탐험 시즌 3에서는 라면, 치맥, 부대찌개 같이 외국의 영향을 받은 음식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한식이라고 말하기엔 어딘가 어색하지만 우리 음식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음식들이다. 이미 우리 음식문화의 영향을 받아 원래의 모습에서 크게 변화되었고, 우리 일상에 너무 많이 녹아들었다. 외국에서도 이 음식들을 부를 땐 'Korean style (한국식)'이라는 단어를 붙여 구분한다. 따지고 보면 '전통 한식'도 오랜 옛날 어딘가의 영향을 받은 음식들이다. 소면이 왜면에서 국수가 되었듯 그렇게 변해온 것이다. 근래에 한식이 외국에서 조금씩 인지도가 생기면서 우리의 한식에 대한 자부심도 커졌다. 하지만 이 자부심이 잘 못 발현되어 우리 음식을 '전통'의 틀에만 가둬놓게 되어서는 안 된다. 고인 물에서 변화는 일어나지 않으며, 변화가 없으면 발전도 없다. 

※ 올 한 해 솜대리의 한식탐험 3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 새로운 주제의 시즌 4로 돌아오겠습니다.

소믈리에타임즈 솜대리 somdae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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