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숑 바롱 와이너리의 위용, 거대한 정원의 풀장은 지하 와인셀러 위에 자리잡아 셀러의 온도를 낮춰준다

샤토 피숑 롱그빌 바롱이란 와이너리의 긴 이름은 1646년 바론 바나르 피숑 Baron Bernard de Pichon과 안 롱그빌Anne de Longueville 의 결혼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에 아들 자끄 피숑 Jacque Pichon이 결혼할 때, 마고 Margaux 지역의 땅부자였던 장인 피에르 로잔 Pierre Rauzan이 사위와 딸을 위해 포이약에 포도밭을 사주게 되고, 그 샤토의 이름을 피숑 롱그빌 바롱 Pichon-Longueville Baron 이라 짓게 된 것이다.  바롱 Baron은 남작의 작위를 말하며, 롱그빌이란, 길다랗게 생긴 집(Long Ville) 을 말하는데, 샤토 건물 신축 이전 길 쪽으로 길게 이어지었던 농가를 의미한다.  이 포도밭은 원래 바데른 Badern이라 불리던 농가였지만 자끄 피숑은 이 땅에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 샤토 부속 건물이 풀장의 수면 위로 반영되어 아름답게 빛난다.

마치 동화에 나오는 듯한 아름다운 샤토로 외관이 빼어난 이 와이너리는 이후에 건설되었다. 1851년 피숑-롱그빌 라울에 의해 건축되었고, 1855년 분류에서 포이약의 2등급 와인으로 지정되었다. 하나의 샤토였지만, 1850년 조셉 드 피숑 롱그빌 남작이 죽은 후, 나폴레옹 상속법에 따라 자손에게 분할되어 상속되었고, 그 결과 라울 Raoul의 몫은 피숑 롱그빌 바롱(Pichon-Longueville Baron)이 되고, 버지니 Virginie의 몫은 피숑 롱그빌 꽁떼스 드 랄랑드 (Pichon-Longueville-Comtesse de Lalande)가 되었다.

▲ 포이약 항구에 정박중인 요트, 과거엔 이 물길을 따라 와인이 해외로 수출되었다.

피숑 바롱은 이 가문의 소유로 남아 있다가, 1933년 부떼이 Bouteilliers 가문에 팔리게 되는데, 반세기가 지난 1987년 부떼이 가문은 이 샤토를 프랑스의 보험회사인 악사 밀레짐 AXA Millésime에 소유권을 넘기게 된다.

악사 밀레짐은 보르도에 Château Pibran, Chtetau Petit-Village와 Château Suduiraut와 같은 유명 샤토를 보유하고 있으며, 부르고뉴에 Domaine de l’Arlot, 랑그독에 Mas Belles Eaux, 포르투갈에 퀸타 도 노발 Quinta do Noval과 헝가리의 유명 토카이 생산자인 데스노코 Disznóko 등 총 면적 525헥타르(약 160만평)에 이르는 포도원을 보유하고 있는 그룹이다.

피숑 바롱은 장 미셸 카제 Jean-Michel Cazes 에 의해 2000년까지 운영되다가 그의 은퇴 이후 크리스티앙 실리(Christian Seely)가 바통을 이어받았으며, 장 르네 마티뇽 Jean-René Matignon 이 와인메이커로 함께 일하고 있다. 

▲ 피숑 바롱 가는 길, 구불구불한 경계석 너머로 샤토 건물이 보인다.

장 마티용은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약 30년전인1987년 포도수확을 위해 채용공고를 내자 일꾼들이 도착했는데, 알고 보니 이들이 모두 유랑 서커스 단원들이었다. 서커스 단원들이 카라반을 이끌고, 동물들을 데리고 단체로 샤토에 짐을 풀자 난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라마 몇 마리는 샤토의 잔디밭에서 뒹구는 등 샤토는 아수라장이 되었으나, 사람을 새로 뽑을 수 도 없었던 탓에  이들과 함께 포도 수확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우여곡절 끝에 수확이 끝나자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공짜 서커스 공연을 했다고 한다. 혼이 난 사토는 다음해 부터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경험있는 포도수확팀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피숑-바롱은 포이약 남쪽에 자갈토 토양을 지닌 73헥타르(22만평)의 포도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1년부터 포도원과 양조장에 새로운 포도선별 정책을 적용하여 가장 좋은 포도밭 40헥타르(12만평)에서 나는 포도로만 와인을 만들어 고유한 떼루아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포도밭에서 동면중인 포도나무들

AXA가 피숑 바롱을 인수한 이후, 건축가 패트릭 딜런 Patrick Dillon과 장 가스티네 Jean de Gastines가 건축 디자인을 맡아 새로운 와이너리를 설계했다. 지하 와인저장고는 샤토 앞마당의 거대한 풀장 아래까지 뻗어 있는데, 지상층의 시원한 물은 지하 와인저장고의 온도를 낮추는 효과를 보이도록 지어졌다. 말하자면 와인셀러의 지붕이 바로 풀장인 것이다. 풀장을 떠 받치는 직선형 강화 콘크리트 바닥 덕분에 지하 셀러에는 수직 기둥이 별로 없어서 셀러내에서 물류 흐름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피숑-바롱 와인은 남성적이면서, 구조감이 돋보이는 뛰어난 품질의 와인으로, 이웃한 피숑 꽁테스와는 대조적이며 오히려 샤토 라투르의 특성과 유사하다. 아마도 까베르네 소비뇽의 함량이 훨씬 높아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숙성이 진행될수록 풍미가 개선되며, 깊은 루비 색상을 띄고 집중도가 높은 이 와인은 어릴 때 보다는 숙성이 되었을 때 기대 이상의 맛과 풍미 특성을 보여준다. 

▲ 샤토 피숑 바롱의 응접실 내부

그랑 뱅 Grand Vin을 만드는 30 핵타르의 포도밭은 약간 지대가 높으며 샤토 라투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최근 Optical Sorting System을 적용하여 포도알을 수작업으로 선별한 다음 광학 센서를 이용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결점을 가진 포도 알까지 솎아 냄으로써 와인 품질이 더 향상되었는데, 그만큼 생산량도 줄어들었다. 분류된 포도 알들은 약 3주간 스텐레스 스틸 탱크에서 알코올 발효를 진행하며, 오크 바렐에서 3개월간 숙성한 다음 최종 블랜딩 된 와인들은 18~20개월 정도 New Oak에서 숙성된다. 

▲ 당일 시음했던 와인들, 2010빈티지가 단연 최고였다.

시음 와인중 Pichon Baron 2010 빈티지가 단연 압권이었는데, 짙은 퍼플 색상에 블랙베리, 구운 커피향, 감초 등 복합적인 검은 과일 향과 스파이시한 향이 밀려들어왔고 바렐 숙성을 통해 타닌은 부드러운 편이었다. 목 넘김 이후에도 긴 피니쉬가 인상적인 이 와인은 로버트 파커 97점을 받았다. 이에 비해 2013빈티지는 다소 산도가 튀고 향의 복합미는 약했지만 몇 년간의 병숙성을 통해 향미가 많이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 시음 글래스의 표면에 묻은 와인이 붉은 그림자로 투영된 모습

그외 시음한 피숑 바롱의 세컨드 와인, Les Tourelles de Longueville과 Les Griffons de Pichon Baron도 함께 맛 볼 수 있었는데, 그랑 뱅 못지 않는 구조감과 풍미 특성을 보여주었다. 방문했던 곳 중 피숑 바롱은 아름다운 샤토 건물과 훌륭한 와인의 맛으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하다. 보르도 방문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들려봐야 할 와이너리로 추천드린다.     

김욱성은 경희대 국제경영학 박사출신으로, 삼성물산과 삼성인력개발원, 호텔신라에서 일하다가 와인의 세계에 빠져들어 프랑스 국제와인기구(OIV)와 Montpellier SupAgro에서 와인경영 석사학위를 받았다. 세계 25개국 400개 와이너리를 방문하였으며, 현재 '김박사의 와인랩' 인기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욱성 kimw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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