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라르트 테르보르흐, Woman Drinking Wine <사진=Wikimedia Commons>

그리스, 로마가 유럽 와인의 원조라고 할 수 있지만, 여성들이 와인을 마시는 일은 그리스에서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는데, 와인을 마신 기혼녀는 이미 판단력을 상실하여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마제국 초기에는 여성들도 상당한 정치적 권력을 가졌고, 부유한 부인들은 만찬을 주최하고 만찬에 참석할 수도 있었지만, 여자들은 집에서 말린 포도에 신선한 포도주스를 첨가하여 우려낸 ‘파숨(Passum)’을 마셨다. 이 파숨도 어느 정도 발효가 일어나 알코올을 함유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 건조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파시토(Passito)’라는 단어도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여자들에게 와인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와인을 피로 여겼기 때문인데, 여자들이 와인을 마시는 것은 피가 섞인다고 해서 ‘간통’으로 생각했고, 여자들은 절제력이 부족하여 광란 상태에서 신의 소유가 되며 그렇게 소유되는 것을 ‘강간’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와인은 위험한 약이었고, 약한 여성은 그런 약을 먹지 않도록 보호되어야만 했으니까 여성은 와인에 접근할 수 없었고, 와인을 마시다가 발각되면 사형당하거나 이혼을 당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키스는 자기 부인이 와인을 마셨는지 검사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말이 있을 정도니까 옛날 여자들의 음주는 절대적인 죄악이었다.

이렇게 와인은 남자들의 술이었지만, 19세기 샴페인이 유행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샴페인은 남녀 모두를 타깃으로 삼았다. “여자들에게 샴페인을!”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이는 여자를 뜻대로 다루려면 샴페인을 마시게 하라는 말도 되지만, 샴페인은 호사스러운 이미지를 여성의 몸에 걸치게 해주었다. 수많은 라벨에 여성들이 등장하고, 특히 샴페인 제조에는 많은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여성의 술’이란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심어주었다.

▲ 여성 와인메이커 마담 클리코 퐁사르당 <사진=Wikimedia Commons>

그러면서 여성 와인메이커도 등장하게 되는데, 이 역시 샴페인을 맑게 만든 ‘마담 클리코 퐁사르당(Madame Clicquot Ponsardin)’이 문을 열었다. 당시는 2차 발효의 개념이 없었던 때라서 대부분의 샴페인은 스위트였고, 찌꺼기를 제거하지 않고 마셨기 때문에 잔에 따른 샴페인은 찌꺼기로 인하여 큰 거품이 일어나 아주 혼탁한 상태였다. 그러나 유리잔이 나오면서 와인의 미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에 마담 클리코 퐁사르당은 각고의 노력 끝에 구멍 뚫린 나무판 즉 ‘퓌피트르(Pupitre)’를 고안하여 찌꺼기 제거 기술을 개발한다. 샴페인 지방은 다른 곳보다 개방적인 곳이라서, 프랑스 사회에서 최초로 여자들이 사업가의 면모를 갖추고 와인을 생산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 로마네 콩티 빈야드 <사진=Wikimedia Commons>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유명한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 역시 뛰어난 감각을 가진 여성의 작품이다. 1992년 로마네 콩티에서 물러나서 독자적으로 와인을 만들지만, 철저한 생물기능농법(Biodynamic viticulture) 신봉자로서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낮추어 와인을 생산하여 색깔이 진하고 풀 바디의 오래 가는 와인을 만든다. ‘부르고뉴의 여왕’이라는 별명에 맞게 양조에 대해서는 광신 그 자체라고 할 정도로 정열적이며, 등산가로서도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향의 인식과 학습이 남자에 비해서 더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은 젊을 때부터 화장을 하면서 색조와 향에 대한 훈련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고, 옷을 고르면서 미적 감각을 키우고, 요리를 하면서 미각과 후각을 사용하기 때문에 와인을 양조하는 데 남성보다 감각적으로 뛰어날 수밖에 없다. 다만, 그동안의 사회 분위기가 여자의 사회진출을 방해했기 때문에 와인메이커 대부분이 남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유능한 여성 와인메이커가 많이 나올 것이고, 와인소비 또한 여성이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본다.

 '전략'은 여성과 식사할 때 좋은 와인 한 병을 주문하는 것이고, '전술'은 그 여자가 와인을 마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 프랭크 뮤어(Frank Herbert Muir, 영국의 코미디 작가)

▲ 김 준철 원장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준철 winespiri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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