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하의 와인스케치북] 새해 결심과 건강한 음주, "2020년부터는 정말 술을 줄이려고"

승인2020.01.03 12:07:33

"2020년부터는 정말 술을 줄이려고"

퇴근 후 소주를 반주 삼아 저녁을 맛있게 드시는 걸 삶의 즐거움으로 여기시는 아빠의 며칠 전부터 계속된 공언이다. 아빠의 건강을 염려하는 가족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새해 결심을 공개적으로 외침으로써 스스로 다짐을 공고히 하려는 아빠 나름의 노력이리라. 모두들 응원하는 마음이지만 엄마와 나는 의구심이 먼저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이번에는 과연?'

프랑스 릴(Lille) 대학병원에서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하루에 4잔 이상의 알코올을 섭취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14년 일찍 뇌혈관 질환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한다. 과음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의학 통계가 늘 그렇듯 이제는 무뎌져 식상하기도 하지만 곰곰이 다시 생각하면 역시 무서운 진실이다.

위 통계가 언급하는 알코올이 정확히 어느 술을 말하는지는 나와있지 않다. 하지만 프랑스 내 지역별로 뇌졸중 조기 발병률 격차가 뚜렷함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지역별 음주 습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섭취하는 술의 종류의 위험성을 간접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즉 맥주나 높은 도수의 알코올을 섭취하는 지역보다 와인을 재배하고 마시는 지역의 조기 발병률이 낮았다는 것이다.

릴 대학의 지역별 음주습관과 뇌졸중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는 미국의 3대 대통령이자 와인 애호가인 토마스 제퍼슨이 했다는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와인을 싸게 살 수 있는 나라치고 국민이 취해있는 법이 없고, 증류주가 와인을 대신하는 나라치고 국민이 깨어있는 법이 없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어쩐지 나를 슬프게 한다. 하루의 시름을 달래기 위해 김치나 찌개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과 힘들고도 억울한 일이 많았을 한 주를 보내고 주말 저녁 친구들과 육체적, 정신적 갈증까지 풀어줄 것 같은 맥주를 들이켜는 것을 '깨어있지 못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면 우리 삶이 너무 가엽지 않은가.

▲ 하루가 끝난 후 소중한 사람들과의 한 잔은 누군가에게는 위로다. <그림=송정하>

내가 아는 한 와인은 절대 빨리 마실 수 있는 술이 아니다. 눈으로 보고 향을 맡고 맛을 본 후 음미를 하므로 소주나 맥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폭음을 하기 힘든 술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연구 결과가 심혈관 질환 등 각종 질병에 대한 와인의 긍정적 효과를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와인도 역시 술은 술이다.

하루 2잔 (순수 알코올 20g) 이상의 섭취는 오히려 높은 발병률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술 자체보다는 소비습관이 그 나라의 건강한 음주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느끼한 음식이 많은 프랑스에서 비교적 날씬한 몸을 유지하는 프랑스인들을 부러워하는 영미인들이 이름 붙인 '프렌치 패러독스'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와인을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은 이상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와인의 색을 즐기고 다채로운 향을 맡으며 시간을 들여 음미하는 모든 것들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뭐든지 빨라야 인정받는 세상이니 술도 빨리 마셔야 하고 하루의 고단함을 잊으려면 빨리 취해버리는 게 차라리 낫기 때문이다. 늦은 퇴근 후 냉장고 속의 차가운 맥주를 허겁지겁 들이켠 후 오늘과 다름없이 일찍 시작될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는 이에게, '건강을 생각해서 와인을 드셔 보시지요'라고 선뜻 권할 용기가 나지 않는 이유다.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뭐가 그리 다를 게 있겠냐마는 우리는 오늘도 새해를 맞이해 많은 결심들을 한다. 어제를 2019년이라 부르기로 하고 오늘을 2020년이라 부르기로 한 인간의 의지처럼, 변함없이 고된 하루를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겠다는 인간의 의지가 있으니 그걸로 이미 큰 변화가 시작된 것 아닐까.

그리하여 오늘도 수고했을 많은 이들이, 무엇을 드시든 너무 허겁지겁 급하지 않게 천천히 드시기를, 나아가 늘 드시는 거 말고 새로운 것에도 손을 뻗어 눈을 감고 음미할 정도의 여유가 생기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 송 정 하

법대를 나왔지만 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아 프랑스 보르도로 떠났다. 보르도 CAFA에서 CES(Conseiller en sommellerie:소믈리에컨설턴트 국가공인자격증), 파리 Le COAM에서 WSET Level 3를 취득했다. 사람이 주인공인 따뜻한 와인이야기를 쓰고 싶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송정하 noellesong05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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