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에 살던 시절에는 과일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 공용 부엌까지 오가기가 귀찮기도 했고 공용 냉장고에 먹을 걸 두면 금세 사라지곤 했다. 칼이나 도마, 접시 같은 도구도 없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손쉽게 먹던 과일이 있었는데 바로 귤이다.

겨울이면 기숙사 근처에 항상 귤을 파는 트럭이 있었다. 눈에 자주 띄고 가격도 싸서 부담 없이 사 왔다. 시원한 창가에 뒀다가 손으로 까먹으면 되니 보관하고 먹기도 편했다. 그러니 겨울철만 되면 기숙사 방마다 노란 귤껍질들이 쌓여갔다.

▲ 기숙사 어느 방에 가도 귤이 이렇게 쌓여있었다.

기숙사에 사는 대학생들도 편하게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니 귤은 국민 과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많이 먹는 과일이 귤이다. 1인당 연간 12kg나 먹는다. (2018년 기준, 한국 농촌경제 연구원) 겨울철이면 굳이 마트에 가지 않아도 작은 슈퍼에서 길거리 트럭에서 손쉽게 귤을 구할 수 있다. 

귤을 고를 때는 껍질이 얇고, 알맹이와 껍질이 잘 붙어있으며, 꼭지가 마르지 않은 것이 좋다. 귤을 사 오면 냉장고나 베란다에서 시원하게 보관한다. 오래 보관하려면 사 오자마자 소금물에 씻고 귤끼리 서로 닿지 않게 보관하는 것이 좋지만, 귀찮다면 중간중간 곰팡이가 피거나 상한 귤만 골라낸다. 귤은 하나가 상하면 근처의 귤도 금방 상하니 아무리 귀찮아도 이 작업은 꼭 해주는 것이 좋다. 참고로 곰팡이가 핀 귤은 일부만 곰팡이가 피었어도 다 버려야 한다. 보이진 않지만 이미 귤 전체에 곰팡이가 퍼져 있다.

귤을 먹을 때는 주물러 먹으면 더 달아진다고 한다. 이는 식물의 번식 본능과 연관이 있다. 귤을 비롯한 많은 과일들은 바닥에 떨어지면 에틸렌 성분을 내보내 스스로를 더 맛있게 숙성시킨다. 맛있는 향을 맡고 동물들이 과일을 먹어 씨앗을 운반하게 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바닥에 떨어트리는 것과 같은 외부 충격을 주면 귤이 더 달아진다. 단, 이미 다 익은 귤은 성숙이 아닌 노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미 다 익은 귤은 주물러도 소용이 없다. 귤을 먹다 보면 손이 노랗게 변하곤 하는데, 이는 귤의 노란 색깔을 내는 베타카로틴 성분이 피하지방과 각질에 쌓이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니 걱정할 필요 없다. 

이렇게 귤을 손이 노래지도록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원래 귤은 임금님께 진상되는 귀한 과일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감귤이 진상되면 이를 기념해 황감시라는 과거를 열고 축제를 벌일 정도였다. 하지만 도성에서 귤이 환영받는 만큼 귤을 조달해야 하는 제주도민들의 고통은 심했다. 귤나무에 귤이 달리면 바로 관에서 개수를 새어갔고, 수확할 때 개수가 줄면 나무 주인이 물어내야 했다. 병충해나 바람에 의한 피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나무에 새순이 나는 대로 꺾고, 뿌리를 자르고 끓는 물을 붓기도 했다.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고 진상할 필요가 없어지자마자 많은 귤나무가 베어지고 그 자리에 식량을 위한 작물들이 심어졌다. 일제 시대에도 귤은 먹었지만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한 물량이었다. 귤 재배가 본격화된 것은 해방 후의 일이다. 재일교포 등이 일본에서 귤 묘목을 대거 들여왔고, 수익성 높은 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60년대부터는 정부에서도 감귤 증식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 온주 밀감 나무 (출처: 위키피디아)

지금 우리가 먹는 귤은 온주 밀감이라는 품종이다. 이 품종이 처음 유입된 일제 시대 이래 우리나라 귤 시장에서는 이 품종이 절대다수를 이루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등 프리미엄 감귤류가 비중을 슬금슬금 높이고 있다. 이들은 귤과 오렌지 등을 교배시켜 새로 만들어 낸 품종이다. 늦게 수확하는 품종이라 감귤류 중에서도 만감류로 분류된다. 2018년에는 최초로 감귤류 중 이 만감류의 재배 면적이 20%을 넘었다. (한국 농촌 경제 연구원) 앞서 언급한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이 가장 대표적인데, 이들은 만감류 중 당도가 가장 높은 품종이다. 한라봉은 볼록 튀어나온 꼭지와 두꺼운 껍질을 가지고 있으며 향이 상큼하다. 천혜향은 껍질이 얇고 향이 천리를 간다는 뜻의 이름처럼 향이 좋다. 레드향은 붉은빛이 돌고 일반 귤처럼 동글 납작한 모양이 다른 만감류의 동글동글한 모양과 다르다. 각각의 수확시기가 달라 마음만 먹으면 일 년 내내 제철 감귤을 먹을 수 있다. 

▲ 한라봉. 꼭지가 볼록 튀어나와 있다.

이러한 만감류의 등장은 사실 감귤 농가의 고민과 관련이 있다. 한때 귤은 수익성이 매우 높은 과일이었다. 귤나무 한 두 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 보낼 수 있다고 하여 귤나무를 대학 나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공급 증가와 과일 시장의 경쟁 심화 때문이다. 제주의 감귤 재배지가 크게 늘었고, 요즘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육지에서도 감귤이 재배된다. 동시에 겨울에도 싱싱한 과일들이 외국에서 수입되고 있고, 이른 봄은 되어야 나오던 딸기의 출하시기도 크게 앞당겨졌다. 이 와중에 인건비, 재료비, 땅값 상승으로 각종 비용이 크게 높아졌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작년의 잦은 장마와 태풍으로 올해 출하된 귤의 품질이 떨어져 가격은 더더욱 떨어졌다. 만감류 재배를 통한 제품의 프리미엄화, 정부의 귤 대량 수매 등의 대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귤은 여전히 국민 과일이다. 겨울철이면 마트 과일 코너에는 귤 상자가 제일 앞에 놓여있고, 아파트에서도 택배로 온 귤 상자가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추운 날씨에 움츠러진 몸을 깨우는 귤의 상큼함과 노랗게 변한 손 끝의 기억이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이상 귤은 계속해서 국민 과일로 남을 것이고, 각종 변화로 고심하고 있는 귤 산업도 언젠간 균형과 안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소믈리에타임즈 솜대리 somdae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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