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커피, 삶을 디자인하다] <12> 샴페인 예찬

샴페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 상태의 표현이다.
승인2020.02.11 09:00:51

시음와인
Champagne Bruno Paillard Assemblage 2008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러곤 내게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나는 그 아름다움이 마치 내 것인 양 당연히 받아드린다.
별을 꿀꺽 삼켰으니 행복하기 그지없다.

이 시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와인을 마시며>라는 시의 첫 연입니다.

와인을 마시는 이 행복한 커플에게 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거대관념(종교, 국가, 혁명)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인 사랑일 것입니다. 남자는 상대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그렇게 아름다움을 부여받은 그녀는 오늘밤만큼은 여왕이 됩니다. 이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많은 노고가 그들에게 필요했겠지만 아무튼 와인은 이 두 사람의 가치를 돋보이게 합니다.

▲ 샴페인 탄생의 내러티브를 담아낸 돔 페리뇽 레이블. 별이 그려져 있다. <사진 ⓒFlackJacket2010>

와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남녀가 마신 와인이 샴페인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릴 것입니다. 17세기 말 프랑스 샹파뉴에 살던 수도사 돔 페리뇽이 2차 발효에 의해 형성된 탄산가스로 터져버린 와인을 맛보고 “형제여, 형제여, 드디어 별을 마셨습니다.”라고 외치면서부터 샴페인이 탄생되었다는 내러티브가 전해집니다. 샴페인을 마신다는 행위는 곧 별을 삼키고 행복에 빠지는 시적 화자처럼 아름다워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거품을 일으킨다고 해서 모두 샴페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세상에는 피즈(fizz:기포가 있는 음료)들이 넘쳐 납니다. 당연히 기포가 있는 와인이 인기가 높습니다. 하지만 샴페인(champagne)이 되려면 파리 북동부 샹파뉴에서 태어났다는 출생증명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거품이 많이 일어난다 해도 이 증명이 없는 다른 지역에서는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냥 스파클링 와인으로 일반화됩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샴페인은 샹파뉴라는 한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고유한 브랜드입니다.

샴페인의 탄생설화는 돔 페리뇽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사실은 그가 단독으로 발견한 것은 아니고 샹파뉴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을 거쳐 완성된 결과물입니다.

샹파뉴 지역은 가장 추운 와인 산지입니다. 추운날씨에 효모 활동이 정지된 와인이 봄이 오자 재 발효되면서 거품이 일었습니다. 당시엔 이런 현상에 그들은 기겁했습니다. 라이벌 산지인 부르고뉴에서 만드는 와인에는 전혀 거품이 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샹파뉴 와인 양조자들은 거품이 올라오는 자신들의 와인에 늘 실망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샹파뉴 와인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발포현상은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와인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코르크 마개가 튀어 오르고 무엇보다도 지칠 줄 모르고 피어오르는 기포들이 기적과도 같은 생동감을 부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노력 끝에 그들은 이른바 ‘샹파뉴 방식’을 창안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 샴페인의 양조법은 타 지역 모든 생산자들의 모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샴페인은 세계적으로 양조가 가장 복잡한 와인에 속합니다. 세심하고 섬세한 작업과 고된 노동력 그리고 양조 과정에서 빈틈없는 재능을 발휘해야 하는 까닭에 제대로 만들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 운동력이 느껴지는 듯 지칠 줄 모르고 피어오르는 기포들은 기적과도 같은 생동감을 부여했으며, 샹파뉴 만의 방식이 등장합니다.

제조과정에서 샴페인이 일반적인 스틸와인과 다른 점이 많지만 핵심적인 차이는 천연 탄산가스가 병 안에 갇혀 있는 동안 일어나는 2차 발효입니다. 이렇게 갇혀있던 탄산가스가 샴페인의 거품을 일으킵니다. 개봉했을 때 샴페인 한 병에는 대략 5,600만 개의 기포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 기포가 작을수록 우수한 품질의 와인으로 인정됩니다. 그리고 이 기포는 플루트 잔에서 섹시한 소리를 내면서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이처럼 잘 만들어진 샴페인은 다른 어떤 스파클링 와인도 갖지 못한 특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뛰어난 제품은 칼날처럼 정제된 섬세함과 집중력을 보이면서 자신의 특성을 드러내주는 미덕을 지닌 와인입니다. 최고의 샴페인은 섬세함과 풍부함은 말할 것도 없고 신선한 생기가 부드러운 자극성과 조화를 이루며 기분 좋은 상쾌함과 고상한 기품을 드러내줍니다. 그러니 ‘샴페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 상태의 표현’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도취는 즉흥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재능과 몰두가 요구되는 예술에 속한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샴페인 친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샴페인만큼 다정다감하고 경쾌하면서도 차가운 감각으로 쾌락을 선사하는 동시에 여왕 같은 기품이 폭발하는 음료가 있을까요?

“왜 하필 샴페인이냐고? 샴페인에 취하는 건 다른 술에 취하는 것과 전혀 다르니까. 술마다 사람을 취하게 하는 힘이 서로 다른데, 샴페인은 천박한 메타포를 불러오지 않는 몇 안 되는 술 중 하나다.” 이처럼 영혼을 고양시키는 동시에 고상함을 부여하는 술이 있을까요. 그래서 사랑을 부채질하고 싶을 때는 샴페인을 마셔야한다고 노통브는 주장합니다.

“처음에는 기교를 부리다가 곧 빛을 발하고 끝으로 꽁꽁 얼어붙는 그 새로운 쾌락에 몸서리를 쳤다.” 이러니 샴페인은 까다롭고도 다가서기 쉽지 않은 여성에 비유됩니다. 다채롭고도 아름답고 재능으로 가득 찬 여인과의 교감 같은 황홀함을 부여하는 꿈을 꾸는 음료, 그것이 곧 샴페인입니다.

“그들의 영롱한 광채가 보석, 금과 은으로 살랑거렸다. 그것들은 마치 뱀처럼 움직였는데, 그들이 장식했어야 했을 목, 손목, 손가락을 호출하지 않고 그들 자체로 자족하며 그 사치스러움의 절대성을 선언했다. 그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그들의 금속성 냉기를 느꼈다. 나는 거기서 차가운 눈의 향락을 길어냈고, 그 차가운 보물에 얼굴을 묻을 수 있기를 바랐다. 가장 놀라운 순간은 실제로 보석의 무게를 느낀 순간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액체로 된 보석의 무게를 느껴보고 싶은 욕망 때문에 강력한 감정에 이끌리듯 와인 한 병을 땁니다.

브루노 파이야르 샴페인 하우스가 최상의 포도를 선별해 수확하고 작황이 좋을 때만 생산하는 빈티지 샴페인 중에서 아쌍블라쥬 2008 에디션은 특별한 와인입니다. 그것은 아트 레이블 때문입니다. 바로 방혜자씨의 그림이 채택된 빈티지 샴페인입니다.

▲ 방혜자 화가의 작품 “ENERGE"를 채택한 2008 에디션

오래전부터 프랑스에서 활동해오던 이 작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80년대 <공간 Space>이라는 종합 예술잡지에서였습니다. 그는 평생 빛을 그린 화가였습니다. 생명의 원천이 되는 빛을 화면에 담고 싶어 했던 만큼 그림의 에너지가 샴페인의 레이블에 썩 잘 어울립니다.

순수성, 우아함, 복합성이라는 핵심가치를 표방한 브루노 파이야르의 샴페인은 단아하고 우아한 여인의 모습처럼 다가옵니다. 황금색을 띤 생동감이 섬세한 버블로 인해 금속성의 감각으로 자극합니다. 이 날카롭고 서늘한 감각은 화가의 그림을 처음 만났던 내 젊은 시절과 오버 랩되면서 추억을 환기해줍니다. 이제는 나도 제법 나이를 먹었지만 샴페인을 마시는 순간만큼은 아재나 할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차가운 냉기가 알려줍니다. 그리고 아몬드 풍미가 바디감을 주면서 시트러스로 마무리되는 정교하고 직선적인 와인입니다. 오늘은 이 와인이 충만한 기쁨을 주었습니다.

▲ 멀티 빈티지 용어 채택, 데고르주망 날짜 표기, 도자주 제로 등 혁신을 보여 주는 브루노 파이야르 샴페인들.

그러고 보니 여기 언급된 시인, 소설가, 화가는 모두 여성 예술가입니다. 확실히 여성들은 샴페인을 좋아하나봅니다. 아름다운 여성을 사로잡으려면 샴페인은 필수요건이 됩니다. 여성들은 샴페인 앞에서는 꽃으로 활짝 피어나게 마련입니다. 마릴린 먼로가 샴페인 350병으로 목욕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요. 샴페인에 흠뻑 빠진 여성이 어디 마릴린 먼로뿐이겠습니까. 모든 여성들은 샴페인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샴페인을 즐기면서 굿밤하시죠.

마숙현 대표는 헤이리 예술마을 건설의 싱크탱크 핵심 멤버로 참여했으며, 지금도 헤이리 마을을 지키면서 `식물감각`을 운영하고 있다. 와인, 커피, 그림, 식물, 오래 달리기는 그의 인문학이 되어 세계와 소통하기를 꿈꾼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마숙현 meehan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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