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하면 자연스레 미나리꽝이 떠오른다. 외갓집과 마을 어귀 저수지 사이에 깊숙이 들어간 저지대가 있고 거기에 우물이 있는데 그 주변이 외갓집 미나리꽝이다.

미나리꽝은 일종의 미나리 논이다. 물을 좋아하는 미나리의 특성에 맞게 갯벌 같은 곳에 미나리를 키우는 것이다. (밭에서 키우는 밭 미나리도 있기는 하다.) 어렸을 때는 동생과 나의 놀이터였다. 어른들은 발이 푹푹 빠져 위험하다고 했지만 그 말을 들으면 어린이가 아니다. 몸을 쭉 뻗어 미나리꽝 속 메뚜기도 잡고 때로는 발을 담갔다가 진흙 속에 빠져버리기도 했다. 아무튼 우리 집은 봄이면 그 미나리꽝에서 나는 미나리를 먹었다. 그냥 먹은 게 아니라 아주아주 많이 먹었다. 마트에서 파는 미나리 한 단은 우리 집 식구 2명이 먹기도 부족하다. 

▲ 미나리꽝에서 미나리를 수확하는 모습

그렇게 많이 먹다 보니 외갓집에 한 번 갈 때마다 가져오는 미나리 양도 많다. 성인 한 명이 못 다 안을 만큼 한아름 들고 온다. 냉장고를 가득 채운 미나리를 보면 이걸 언제 다 먹나 싶지만 못 먹어 버린 적은 한 번도 없다. 미나리를 먹는 법 중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생 미나리를 두 번 접어 막장에 찍어 먹는 것이다. 온 식구가 모여 앉아 산더미처럼 쌓인 미나리를 두 손으로 먹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식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미나리 본연의 맛을 즐기고 나면 다른 조리법을 시도한다. 생미나리 그대로 쫑쫑 썰어서 된장에 무쳐 먹기도 하고, 미나리를 데쳐 무치기도 한다. 같은 된장 양념이라도 데치면 식감이 달라져 또 다른 느낌이다. 밥에 쌈장, 참기름과 함께 넣어 비빔밥을 해 먹기도 한다. 미나리 향이 워낙 좋으니 미나리 한 가지만 넣고 비벼도 맛있다. 꼬막을 추가하기도 한다. 제육볶음이든 불고기든 오리주물럭이든 고기 볶음 요리도 넣는다. 볶다가 마지막에 쫑쫑 썬 미나리를 넣어 함께 볶아내기도 하고, 다 볶고 난 후 미나리를 위에 가니쉬처럼 올릭도 한다. 고기의 잡내를 가리고 상큼함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매운탕에 미나리를 넣어도 같은 역할을 한다. 가끔 신경을 써서 미나리강회도 한다. 살짝 데친 미나리는 질깃해져서 좀처럼 찢어지지 않는다. 데친 소고기와 계란 지단을 미나리로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먹는다. 아, 미나리 전도 빠트릴 수 없다. 새우를 넣어도 맛있지만 미나리만 넣어도 한 사람 당 몇 장씩은 먹는다. 이러니 미나리는 아무리 많아도 다 먹을 수 있다. 

▲ 된장에 무친 미나리

미나리는 아시아 일대에서 널리 먹는다. 중국, 일본,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등등에서도 요리에 흔히 쓰인다. 중국의 경우 훈제 두부와 함께 볶아 먹는 요리가 유명하고, 일본에서는 죽으로 끓여 먹는다. 가끔은 이렇게 외국의 조리법을 사용해보기도 한다. 샐러드를 해 먹기도 하는데 방울토마토와 호두를 넣고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만 뿌려 먹어도 상큼하고 좋다.

미나리는 청도 한재 미나리가 가장 유명하다. 김천 숭산, 청주, 태안도 미나리가 특산이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미나리는 난다. 미나리는 이북지역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난다. 오래전부터 일상적으로 먹던 야채다. 조선시대 우리나라를 방문한 명나라 한 사신은 '왕도(서울)와 개성에는 집집마다 미나리를 키운다'라고 기록했을 정도다. 미나리는 약용으로도 많이 쓰였다. 미나리는 해독 작용이 있어 간과 폐를 정화시킨다고 한다. 수질 정화 식물로 쓰이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다.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열을 내리는 데도 좋다.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땀띠가 날 때 미나리 즙을 내서 발랐다고 한다.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고, 칼륨이 많아 중금속이나 나트륨 배출 효과도 있다.

미나리는 3~4월이 제철이다. 겨울만 제외하면 사철 난다. 하지만 지금 미나리가 가장 연하다. 생으로 먹기 딱이다. 봄철 이후의 미나리는 주로 볶거나 데쳐 먹는다.

미나리는 줄기가 너무 굵지 않고 줄기 아랫부분이 불그스름한 것이 좋다. 잎이 싱싱한지도 확인하자. 싱싱한 미나리는 줄기를 구부리면 툭하고 부러진다. 미나리는 물을 좋아하니 보관할 때도 이 점을 활용한다. 키친타월을 물에 적셔 밑동을 감싸고 비닐에 잘 싸서 냉장고 야채칸에 둔다. 손질을 할 때는 볼에 물을 가득 담고 미나리를 펼쳐 줄기 사이사이 지저분한 것들을 씻어낸다. 옛날에는 미나리 속에 거머리가 많으니 이 거머리를 없애기 위해 식초 물이나 놋수저 담근 물에 담가 두라고 했지만 요즘에는 농약 때문에 거머리가 거의 없다. 유기농 미나리라도 밭미나리는 거머리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식초 물을 쓰면 좋기는 하다. 식초 물은 잔류 농약을 씻어내는 효과가 있다. 씻은 미나리는 밑동을 조금 잘라낸다. 잘린 후 시간이 좀 지나면 밑동이 쉽게 지저분해진다. 나는 잎사귀도 조금 잘라낸다. 잎사귀에 영양분이 더 많다고는 하지만 미나리는 주로 줄기를 먹는다. 

▲ 막 수확해 씻어낸 미나리

봄 같지 않은 봄이다. 꽃놀이는커녕 집 안에만 있어야 하니 갑갑하다. 이럴 때 미나리라도 한 단 사다 먹어보면 어떨까. 상쾌한 향이 찌뿌둥한 몸을 깨워줄 것이다. 면역력 강화는 덤이다.

소믈리에타임즈 솜대리 somdae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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