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내리쬐기 시작하는 햇볕만큼 그리고 점점 무성해져 길가를 가득 채우는 초목만큼이나 모든 것이 꽉 찬 달인 것 같다. 짧지 않은 서른한 개의 날들이 축하와 기념의 시간으로 빼곡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 1일 아버지의 생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과 부모님 결혼기념일, 마지막엔 내 생일까지 기념일 챙기기로 바쁘다. 여기에 어린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까지 합하면 기념일의 순수한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마음은 무뎌지고 계속된 지출까지 더해지면 여러모로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매년 그랬던 것처럼 우리 집은 5월 한 달 동안 가까이 붙어 있는 기념일을 묶어 세 번의 식사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이때 함께 할 와인으로 선택한 것이 크레망(Crémant)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맛있고, 저렴하며 샴페인의 적절한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레망과 샴페인의 차이는 어디서 올까?

크레망과 샴페인 둘 다 거품이 이는 발포성 와인이지만 그 둘은 명칭이 다르듯이 지리적 그리고 사용되는 포도의 품종과 숙성기간에서 오는 맛의 차이가 있다.  

원산지 인증제에 따라 프랑스 북부 샹파뉴(Champagne) 지방에서 생산한 발포성 와인만을 샴페인이라고 부르고 프랑스 내 샹파뉴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발포성 와인은 크레망이라고 한다. 크레망은 스틸와인(Still wine)으로 유명한 8개의 특정 지역에서 생산되는데 부르고뉴(Bourgogne), 루아르(Loire), 리무(Limoux), 쥐라(Jura), 알자스(Alsace), 보르도(Bordeaux), 사부아(Savoie), 그리고 남부 론(Rhone)지방의 디(Die)가 여기에 속한다.

크레망과 샴페인의 맛의 차이는 대부분 여기서 온다. 샴페인이 피노 누아(Pinot Noir), 샤르도네(Chardonnay), 그리고 피노 뫼니에(Pinot Meunier)에 한정된 포도 품종을 사용하는 반면, 크레망은 각 지역에서 재배하는 그들 고유의 품종을 사용하여 이것이 맛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즉 부르고뉴 지방의 크레망은 보르도의 크레망과는 맛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알자스의 크레망에서는 오쎄루아(Auxerois), 피노그리(Pinot Gris), 피노블랑(Pinot Blanc)과 리슬링(Riesling)이 주는 사과향의 신선함과 크리미함의 밸런스를 느낄 수 있는 반면 보르도의 로제 크레망에서는 적절한 산도가 결합한 여름철 붉은 과일의 상큼함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보르도의 메를로(Merlot)와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품종이 선사하는 것이다.

물론 샴페인도 각 하우스의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의 표현이 있지만 8개의 특정 지역에서 오는 기후의 차이와 고유의 품종이 결합하여 직접적이고 개성 있는 맛을 보여주는 크레망은 이렇듯 취향에 따라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다.

크레망이 샴페인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제조방식이 서로 같기 때문이다. 즉 둘 다병 속에서의 2차 발효를 통해 기포를 발생시키는 전통적인 방식(Méthode Traditionnelle)을 따른다. 일정 기간 병 속 효모 위에서의 숙성은 빵이나 비스킷 같은 아로마를 더 해 와인에 바디감과 복합적인 풍미를 준다. 또한 크레망을 위한 포도는 손으로 일일이 수확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는 크레망과 종종 경쟁관계에 있는 이탈리아의 발포성 와인, 프로세코(Prosecco)와 구별되는 점이다. 프로세코는 기포를 병 속이 아닌 탱크에서 발생시키는 방법(Méthode Charmat)을 택하며 포도 수확도 기계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크레망은 샴페인과 비교하면 짧은 숙성기간(최소 9개월)을 거치며 빈티지 크레망을 제외하면 샴페인과 달리 오래 보관하기에 적합한 와인은 아니다. 6°~7°C의 온도로 가급적 구입한 날로부터 2년 내로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레망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유럽에서는 보통 9유로의 가격으로 크레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위에서 말 한 섬세한 제조방식과 품종에서 오는 다양한 맛을 감안하면 캐주얼한 자리에서 샴페인을 대신할 음료로 이보다 더 적당할 수 없다.

프랑스 내에서는 늘어나는 수요에 맞게 크레망의 생산량이 많이 증가하여, 쥐라에서 생산되는 크레망은 약 200%, 보르도의 크레망은 약 185% 이상 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소비가 가능한 샴페인을 알아보는 거에요. 우리 와인은 삶의 소소하고 즐거운 순간에 함께 해요. 그게 꼭 거창한 이벤트나 축배의 자리일 필요는 없죠.’’

루아르 와인연합의 최고책임자, 니콜라 에므로(Nicolas Emereau)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 크레망은 작은 즐거움들이 가득한 5월과 닮았다. <그림=송정하>

이토록 기념일로 가득 찬 한국의 5월이지만 꼭 샴페인을 터뜨릴 만큼 경사스러운 날만 있진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날들을 서로 위로하며 안부를 묻고 앞으로 펼쳐질 날들을 이야기하고 응원하는 시간들, 크레망은 그런 자리에 어울리는 와인이 아닐까?

▲ 송 정 하

법대를 나왔지만 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아 프랑스 보르도로 떠났다. 보르도 CAFA에서 CES(Conseiller en sommellerie:소믈리에컨설턴트 국가공인자격증), 파리 Le COAM에서 WSET Level 3를 취득했다. 사람이 주인공인 따뜻한 와인이야기를 쓰고 싶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송정하 noellesong0520@gmail.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