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하의 와인스케치북] 구조감이 좋은 사람

승인2020.07.01 12:50:30

외모 지상주의는 타파되어야 한다. 외모가 그 사람의 전부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니며 살집이 있는 사람도, 키에 비해 어깨가 너무 넓어 비율이 좋지 않은 사람도(어쩌다 보니 내 얘기가 되었다) 나름의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텔레비전 속의 조막만 한 얼굴에 긴 다리, 완벽한 비율을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더해 운동이 만들어 낸 탄탄한 근육까지 자랑하는 연예인들을 보고 있자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는 부러운 듯이 중얼거리게 된다.

‘’저 사람은 구조감이 좋네‘’

와인에는 유난히 사람의 몸을 사용한 용어가 많다. 맛의 무게를 나타낼 때 쓰는 ‘바디(Body)’, 와인 잔을 흔들 때 잔 내부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몇 줄기의 액체를 영어권에서는 ‘다리(Leg)’로 표현하는 것 등이 그렇다. 스포츠 용어에도 ‘구조감’이란 표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와인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사람을 와인에 비유하는 것이 일종의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 견고한 골격과 환상적인 비율을 자랑하는 사람을 보면 구조감이 좋은 와인이 떠오른다. <그림= 송정하>

와인을 알기 전에는 누군가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후 와인 잔을 그윽이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듯 ‘’이 와인은 구조감이 좋군‘’ 하고 말하면 왠지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거부감이 들곤 했다. 와인은 액체인데, 무슨 건조물도 아니고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라도 평가하는 듯이 말하는 것이 어쩐지 ‘’그들만의 언어’’ 같고 잘난체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을 마시고 공부하면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의미가 와 닿았던 단어 중의 하나가 내게는 바로 이 ‘구조감‘이다. 말귀를 쉬이 알아먹지 못하는 나로서는 신기한 일이다.

와인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의 질의응답 코너에 의하면 구조감(Structure)이란, 타닌(Tannins), 산도(Acidity), 알코올(Alcohol) 그리고 글리세롤(Glycerol, 당분에서 추출되는 끈적거리는 성질) 등과 같은 와인의 여러 요소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와인의 향이나 질감과 달리 구조감은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 맺고 반응하는지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구조감의 핵심은 타닌(떫은맛)과 산도(신맛)일 것이다. 그야말로 어른의 맛이다. 타닌은 보통 떫고 거친 맛을 내는 요소인데 용어가 익숙하지 않을 뿐 덜 익은 감이나 바나나에서부터 커피, 차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서 쉽게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와인의 경우 타닌은 포도의 껍질과 줄기, 씨앗에 들어 있는 물질이며 오크 통에서 숙성되는 과정에서도 생길 수 있다.

구조감이 좋은 와인이란 이러한 타닌, 산도, 알코올, 당도 등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와인이다. 즉 각 요소들의 맛을 모두 지니고 있으면서 어느 하나가 튀지 않고 응축되고 통합되어 부드럽게 마시기 좋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제 소리를 내며 하나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훌륭한 오케스트라처럼 말이다. 그래서 구조감이 좋은 와인은 균형이 잘 잡힌 와인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리슬링(Riesling) 품종의 스위트 와인은 당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산도도 아주 높아 산도와 당도가 균형을 이루어 크게 달게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산도가 없이 그저 달기만 했다면 걸쭉한 설탕물과 같은 단조로운 와인이 됐을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구조감은 사람의 골격 즉, 뼈대 혹은 근육과 같은 탄탄하고 견고한 틀을 의미한다. 그래서 구조감이 좋은 와인은, 튼튼한 뼈를 가지고 적당한 비율과 보기 좋은 근육을 가지고 있으며 허리를 곧게 펴고 얼굴은 당당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사람과도 같다.

한편 과일향과 같은 와인의 향은 그 이후의 문제다. 그 와인의 개성인 향 자체를 음미하기 위해 와인만을 단독으로 마실 수도 있지만 대개 와인과 같은 음료는 음식과 함께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 그 이유다. 식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해 산도가 높은 와인을 찾거나 단백질이 풍부한 고기요리를 위해 타닌이 강한 레드와인을 매칭하는 등 주인공인 음식 앞에서 와인의 향에 우선을 두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와인의 향은 사람이 걸치는 옷과 액세서리 혹은 헤어스타일쯤 되지 않을까? 취향과 개성을 보여주어 나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때로는 부족한 골격과 생김새를 보완하기도 하는 그런 역할 말이다.

구조감이 좋은 와인은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그 맛이 더욱 기대되는 와인이다. 높은 산도는 오랜 보관을 가능하게 하고 잘 숙성된 타닌은 와인에 깊고 풍부한 맛을 더하며 알코올도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숙성하면 부드러운 풍미로 변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와인은 사람과 참 닮았다. 잘 생기고 잘 빠진 사람(와인)이 대우받는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깊은 맛을 보여주는 와인이 있는 것처럼 나도 조금만 노력하면 ‘오래 가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주어진 골격이지만 등과 어깨를 곧게 펴고 바른 자세로 걷는 것, 그리고 근육량을 조금 늘려 보기 위해 운동을 하는 등 아직 희망은 있다. 거기에 나만의 향기까지 더 해진다면 그런대로 구조감이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은 느낌이 든다.

▲ 송 정 하

법대를 나왔지만 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아 프랑스 보르도로 떠났다. 보르도 CAFA에서 CES(Conseiller en sommellerie:소믈리에컨설턴트 국가공인자격증), 파리 Le COAM에서 WSET Level 3를 취득했다. 사람이 주인공인 따뜻한 와인이야기를 쓰고 싶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송정하 noellesong05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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