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 12월 13일 조선신문에 실린 미쯔와 와인 광고 <사진=국립중앙도서관>

1차 대전 중 일본은 와인 수입이 곤란하게 되자, 우리나라에 와인용 포도밭을 조성하여 상당량의 와인을 생산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당시 조선총독부에서 일본의 사업가 ‘미츠와 젠베에(三輪善兵衛)’에게 의뢰하여 조선에서 포도밭을 조성하여 와인을 만들도록 권했다. 

이에 권업모범장(농촌진흥청 전신)에서 재배지를 물색한 결과, 포항지역이 최적지로 선정되어 1917년 국유지를 불하받아 농장을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과거 영일군 동해면과 오천면 일대의 부지로 지금은 해병대교육훈련단과 포항비행장이 들어선 자리다. 총 200정보(60만 평)의 포도밭을 조성하였는데, 어떤 품종을 재배했는지 기록으로 나오지 않지만, 경북 포항에는 양조를 목적으로 포도를 재배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유럽 종 포도일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오사카 아사히신문(1931. 6. 25.) 기사를 보면, 1930년 포도수확 5만 관(20만 ㎏)에 포도주(미츠와 포도주) 1,000석(180,000ℓ)과 브랜디 100석(18,000ℓ)을 생산하였다고 한다. 제품도 프랑스 고급품에 뒤지지 않았고, 향도 비교할 데가 없을 정도로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강장제로 키니네(퀴닌)와 빈혈에 좋은 철을 첨가(規那鉄葡萄酒)하여 특수하게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조선의 경북이란 지역에서 일본 최고의 국산품이 나온다면서 “포도는 야마나시부터”라는 말이 옛날부터 전해오지만, 오늘날에는 ‘조선의 경북’으로 고칠 필요가 있다며, 가와치(河内)의 야마토(大和) 포도도 유명하지만, 경북 포항에서는 양조를 목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포도나무로 조성한 대포도원으로 오늘날에는 반도의 모범적인 농장으로 유명하다고 전하고 있다.

이 미츠와 농장은 1939년에는 1500석(27만 ℓ)까지 생산하였으며, 해방 후에도 ‘삼륜포도주 공사’라는 명칭으로 1960년대까지 와인을 생산하였지만, 기술력과 관리 부족으로 곤란을 겪은데 이어, 1966년에 방부제 사용과다로 문제가 되어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도 아닌데, 이 회사의 활동을 제대로 기록해놓은 문서가 없어서 아쉬울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술의 원료는 당분을 함유하고 있어야 한다. 포도를 비롯한 과일은 당분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술이 되지만, 쌀, 보리 등 곡류는 주성분인 녹말이 당분으로 변해야 술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녹말이 당분으로 변하는 과정을 ‘당화’라고 하는데, 밥을 입 속에 넣고 오래 씹으면 단맛을 느끼게 되는 것도 녹말이 당분으로 서서히 변하는 당화라는 과정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 김 준 철 원장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준철 winespiri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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