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이 9월에서 10월로 넘어가면 나도 모르게 ‘아! 10월이구나!’ 하고 외친다. 더 이상 덥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춥지도 않은 10월은 바쁜 하루 중 잠시 앉아 쉬어 가는 늦은 오후의 휴식 시간과도 같다. 긴장으로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고, 그러다 고개 들어 하늘도 한번 보고, 이리저리 허리를 돌리다가 우연히 지나가던 고양이랑 눈도 마주친다. 정신없이 보내다가 미처 보지 못했던 사소한 많은 것들을 비로소 둘러볼 여유가 생기는 그런 오후 말이다. 그런 10월이 언제 이렇게 가 버린 걸까.

10월에는 꼭 들어야 할 노래가 있었다. 바로 배리 매닐로우(Barry Manilow)의 ‘When october goes’다. 10월이 가면은, 황혼이 지는 하늘 아래서 뛰놀다 집에 돌아가던 어린 시절, 그리고 행복한 시절을 함께 했던 오래된 꿈들이 떠오른다는 서정적인 가사는 늘 나를 아련하고 행복한 추억에 잠기게 한다. 여린 듯 담담하게 부르다가 10월을 보내는 게 얼마나 싫은지를 나지막하지만 애절하게 외치는 노래의 후반부에 이르면, 나까지 괜히 10월이 가는 게 아쉬워진다.

이 노래가 주는 쓸쓸함과 아쉬움을 제대로 느끼려면 아무래도 10월 말은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나만의 쓸데없고 이상한 고집이 있었다. 그래서 노래 듣기를 미루고 미루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면 11월이 훌쩍 지났을 때가 많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뭐 어쩌겠는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도 서른이 넘어 들어야 그 노래의 의미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고 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10월을 이야기한 노래라면 역시 11월에 들어야 제맛인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또 한번 해 본다. 지나간 것은 늘 아쉽고 소중하다.

▲ 책만큼이나 음악이 어울리는 계절, 가을이다. <그림=송정하>

누군가 어떤 목소리의 가수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잠시 망설여진다. 내 대답이 너무 고루하고 올드해서 자칫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드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수의 이름이 냇 킹 콜(Nat King Cole)과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이기 때문이다. 냇 킹 콜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치 오래 볶아 깊고 진한 커피의 매캐한 연기가 어딘가 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설탕을 조금 넣은 에스프레소 같아서 동시에 따듯하고 달콤하다.

반면에 단단하고 중후한 프랭크 시나트라의 목소리는 한마디로 ‘멋지다’. 오크 향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위스키 같다고나 할까. 밤에 만난 낯선 이를 유혹하는 ‘Strangers in the night‘의 능글맞은 가사도 그가 부르면 그저 부드럽고 젠틀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음악과 술 혹은 와인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이 ‘도취’라고 대답할지 모른다. 술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예나 지금이나 음악이 있는 곳에 술이 있고, 술이 있는 곳에 늘 음악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도취가 어느 정도의 취기를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나는 와인을 마시고 취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내 주량이 와인 2잔이기 때문이다. 음식과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난 족히 2시간이 넘도록 이 와인 2잔으로 버틸 수도 있다. 와인의 향기와 맛을 매우 즐기지만 와인을 위한 내 목구멍이 너무 작은 걸까? 나는 사실 많이 마시지 못한다. 와인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으로서, 이런 고백은 가끔 부끄러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와인학교 시절, 소믈리에의 최고 덕목 중 하나는 절제라고 한 선생님 한 분의 말씀을 떠올리며 스스로 위로하곤 한다.

특별히 알코올에 취약한 체질이 아니기 때문에 나라고 해서 2잔을 마시고 정신이 혼미해지지는 않는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 긴 시간에 걸쳐 2잔을 마시는 것과 같다. 술을 마시고 지나치게 들뜨거나 가라앉거나 하는 급격한 감정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2잔에서 멈춰야 한다는 절제의 선 같은 것이 내 안에 자리 잡은 것 같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어떤 가수의 목소리를 좋아하느냐 와는 별개로, 나는 늘 평정심을 유지하게 해 줄 음악을 찾으려 노력해 왔다. 그래서 평소에 듣는 건 널 뛰는 마음을 잠재워 주고 늘 같은 상태로 유지해 주는 그런 음악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프랑스에 있을 시절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é)의 ‘Home’이라는 노래가 이상할 정도로 자주 들렸다. 우연히 라디오에서나 카페에서 말이다. 하도 자주 들려 노래가 나를 따라다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파리와 로마에는 여름이 오고 또 겨울이 오고 가지만 난 그저 집에 가고 싶어요. 내가 운이 좋은 걸 알아요. 하지만 그만 집에 가고 싶어요. 당신이 그리워요.’

유난히 쌀쌀맞은 프랑스인을 마주친 날이나 김치찌개가 간절히 생각 나는 축축한 비 오는 날, 혹은 휴대폰으로 본 최근 사진 속 엄마의 얼굴이 부쩍 늙어 보일 때, 이런 노래를 들으면 그날 하루는 완전히 망치는 날이다. 마이클 부블레의 감미롭고 애절한 목소리와 드라마틱한 멜로디까지 더 해져, 차곡차곡 모아 두고 눌러 왔던 정돈된 마음이 소용돌이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평소에 듣는 음악은 재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습관적으로 틀어 놓는다. 그렇다고 내가 재즈에 조예가 깊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우연히 들은 음악에 끌려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 장르가 재즈라니 아, 내가 재즈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정도다. 볼륨을 크게 하고 집중해서 듣는 것도 아니다. 주로 인터넷 라디오 재즈 방송을 작은 볼륨으로 듣는데, 관심 있는 노래나 가수 또는 연주자가 있으면 유튜브로 몇 번 더 찾아 들을 뿐이다. 그러니 재즈 애호가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재즈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역사도 모르고 다른 장르와 차별되는 음악적 특징 같은 것도 알 리가 없다. 다만 재즈의 매력이 ‘자유와 변형’에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재즈를 들으면 나도 일종의 자유 비슷한 것을 느낀다. 특히 내부의 여러 감정들로 부터의 자유다. 그 자유는 고요함을 주는, 흔들리지 않는 자유다.

캐린 앨리슨(Karrin Allyson)이라는 미국의 재즈 보컬리스트가 있다. 약간 비음 섞인 허스키함이 매력적인 그녀의 목소리는 서늘한 느낌도 있는데, 어떤 노래를 불러도 한발짝 물러서서 삶을 관조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녀가 조금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부르는 ‘Everything must change’를 들을 때조차도 내 감정은 흔들리지 않는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가사와 담담한 멜로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뿐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에 의하면, 음악은 완벽한 조화를 이룬 이데아를 설명하는 이상적인 도구라고 한다. 그는 심지어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구분했는데, ‘좋은 음악’이란 자연의 조화를 존중해야 하며 냉정과 절제, 용기와 침착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조금 자랑스레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플라톤 선생님, 저 잘하고 있는 건가요?

사실 음악에 좋은 음악이 있고 나쁜 음악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널 뛰는 내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고 싶었던 것뿐이다. 재즈를 듣고 있으면 나아가 아무 생각이 없어질 때가 있다. 그냥 리듬과 흐름에 나를 맡기다 보면 머릿속에 생각이란 것이 사라져 모든 것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일종의 도취의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작가이자 재즈 비평가인 알랭 제르베르(Alain Gerber)가 말 한 재즈에 대한 정의는, 재즈가 무엇인지 모르는 나에게 조금의 실마리와 위로를 던져준다.

‘재즈, 아마도 그것은 말 그대로 아무 의미 없는 음악일 것이다. 아니면 의미와는 작별을 했으리라. 오히려 그것에 집착하기 위해서.’

요즘처럼 해가 짧아지는 계절, 아직 이른 시각인데 밖은 너무 어두워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드는 초저녁에는 에디 히긴스 트리오(Eddie Higgins Trio)의 ‘A lovely way to spend an evening’ 만큼 위로가 되는 것이 없다.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의 서정적이면서도 경쾌한 리듬과 멜로디가, 스산하고 어두운 늦가을의 저녁을 환하게 만든다. 마치 퇴근 후 하루 종일 보고 싶었던 가족을 만나러 혹은 오랜 친구와의 저녁 약속에 가는 것처럼 마음도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이때 함께 하는 와인으로 뭐가 좋을까? 상쾌하고 향긋한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 기분 좋은 도취의 시간이 될 것 같다.

▲ 송 정 하

법대를 나왔지만 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아 프랑스 보르도로 떠났다. 보르도 CAFA에서 CES(Conseiller en sommellerie:소믈리에컨설턴트 국가공인자격증), 파리 Le COAM에서 WSET Level 3를 취득했다. 사람이 주인공인 따뜻한 와인이야기를 쓰고 싶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송정하 noellesong05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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