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에 담기고 있는 크림(Cream) <사진=Consejo Regulador de las Denominaciones de Origen "Jerez-Xérès-Sherry" - "Manzanilla-Sanlúcar de Barrameda" - "Vinagre de Jerez">

[칼럼니스트 신재연] 영국인들의 쉐리 사랑은 1509년 영국 튜더 왕조의 헨리 8세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된 스페인 아라곤 왕국의 캐서린의 얘기에서 엿볼 수 있다. 캐서린은 헨리가 스페인 까나리 제도(Islas Canarias)와 헤레즈(Jerez)에서 생산되는 가장 좋은 와인을 본인만 마시기 위해 따로 보관하자 이에 대해 불평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헨리 8세가 로마 가톨릭 교회와 척을 지고 성공회를 설립한 뒤,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을 새로운 왕비로 맞으면서 양국의 관계가 소원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쉐리는 16세기 말 영국에서 크게 인기를 얻게 된다. 스페인의 무적함대 건설 소식을 전해들은 영국에서 프란시스 드레이크 경이 이를 방해하기 위해 카디스(Cádiz)를 침공하였다가 배에 선적되어 있던 약 3,000개의 쉐리 배럴을 그대로 싣고 달아나 더 많은 영국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쉐리를 맛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 카디스(Cádiz) 항구와 헤레즈(Jerez)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 범선 위의 나침반 문양 옆에 카디스의 지명이 보인다. <사진=Consejo Regulador de las Denominaciones de Origen "Jerez-Xérès-Sherry" - "Manzanilla-Sanlúcar de Barrameda" - "Vinagre de Jerez">

이 시기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 또한 쉐리의 매력에 빠져 있었는데, 그는 작품 속 대사를 통해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내게 수천 명의 자식이 있다면 가장 먼저 가르칠 행동 강령은 약한 술을 피하고 쉐리에 중독되라는 것이다”

               - 셰익스피어 작품 헨리 4세 2부 중 존 팔스타프의 극중 대사 -

쉐리의 인기가 높아지자 영국은 스페인과 정식으로 교역을 하고 투자를 하면서 더 많은 쉐리를 수입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실려 간 쉐리는 모두 브리스톨(Bristol) 항구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브리스톨의 와인 유통산업이 성장하게 된다. 19세기 초 와인의 유리병 유통을 획기적으로 가능케 한 거푸집을 활용한 유리병 제조의 최초 특허를 브리스톨의 헨리 리켓(Henry Ricketts)이 획득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 19세기 하베이스(Harveys) 와이너리의 브리스톨 밀크 (Bristol Milk) 광고 전단지 <사진=Trademark Bristol Story: www.bristolreads.com>

그러나 브리스톨에 배럴로 도착하는 쉐리의 대부분은 알코올 함량이 높아 긴 여정 중 상할 염려가 적은 올로로소(Oloroso)였고, 그 외 다른 종류의 쉐리가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보관-유통시키던 상인들은 누구나 부드럽고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스윗 쉐리와 올로로소 등을 블렌딩해 판매하기 시작하였는데 결과적으로 쉐리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면서 이렇게 블렌딩 된 쉐리는 브리스톨 밀크(Bristol Milk)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당시 하베이스(Harveys) 와이너리도 헤레즈에서 가장 많은 쉐리를 수입하던 곳 중의 하나로 브리스톨 밀크를 판매하고 있었다. 어느 날 존(John)과 에드워드(Edward) 하베이 형제는 새로운 블렌딩 샘플을 만들고 있었는데 때마침 방문한 귀족 부인에게 이를 권하였다고 한다. 그 부인은 새로운 쉐리를 시음한 뒤에 그 부드럽고 깊은 맛에 감동하여,

“지금까지 내가 마시던 것이 밀크라면, 이건 크림이에요!”

라고 탄성을 질렀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이 하베이스 브리스톨 크림(Bristol Cream) 상표의 탄생 비화이다.

▲ 1882년 하베이스(Harveys) 와이너리에서 상표 등록한 브리스톨 크림(Bristol Cream)  <사진=trade.mar.cx>

이후 크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는 블렌디드 쉐리의 새로운 표준이 되었고, 이 블렌디드 쉐리의 단맛을 조금 줄이면서 만들어진 카테고리가 미디엄 스윗(Medium Sweet), 그보다 당분 함량이 더 적은 것이 미디엄 드라이(Medium Dry) 이다. 그리고 1960년대 들어와 양조 전문가들이 피노(Fino)에 단맛을 가미하면서 새롭게 페일 크림(Pale Cream)을 선보이게 되었다.

만약 집에서 크림을 직접 블렌딩해보고 싶다면 뻬뜨로 히메네즈(Pedro Ximénez)로 만든 스윗 쉐리와 올로로소를 섞어가면서 내 입맛에 맞는 적정 비율을 찾아보는 것도 큰 즐거움일 것이다. 혹시 아는가, 크림을 처음 맛 보았던 그 부인처럼 우리에게도 새로운 영감이 떠오를지.
 

▲ 신 재연 소믈리에

[칼럼니스트 소개] 대학 졸업 후 8년여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IE Business School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이후 Escuela Española de Cata 에서 Sommelier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스페인의 와인과 먹거리를 공부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일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신재연 소믈리에  jane.jy.shin@gmail.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