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록세라에 오염된 포도나무잎 <사진=Wikimedia>

필록세라는 포도나무 뿌리의 즙을 흡착하여 고사하게 만들어 포도재배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해충으로서, 1800년대 후반에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져서 와인산업의 기반을 흔들어 놓은 주목 받는 해충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프랑스는 와인 생산량이 75%까지 감소할 정도로 국가 경제를 흔들어 놓았으니까, 1870년에 일어난 보불전쟁의 피해보다 더 컸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필록세라 덕분에 국가 간 동식물이 이동할 때는 반드시 병충해 상태를 조사하는 ‘검역’이라는 제도가 정착되었고, 보르도를 침범한 필록세라 때문에 보르도 사람들이 스페인으로 이주하여 리오하 와인을 발전시켰으며, 더 나아가 유럽의 와인 메이커들이 신세계로 이주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신세계 와인의 발전’을 앞당겼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와인 생산량이 감소하자 이제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맥주가 와인 대신 수요가 증가하여 맥주산업을 발전시키고, 브랜디(코냑)의 품귀로 스카치위스키가 지방 토속주에서 세계무대로 데뷔하는 발판도 마련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와인 생산량 감소로 프랑스에서 가짜 와인이 나돌게 되자. 이를 방지하고자 원산지명칭통제제도(AOC)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품질관리제도를 확립하는데 전기가 된 것이다. 이렇게 필록세라는 신세계 와인의 발전을 도모하고, 맥주와 위스키를 출세시키고, AOC 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벌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필록세라를 모르면서 술에 대해서 아는 척해서는 안 된다.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준철 winespiri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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