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으로 표현한 당시 ‘엘알리소(El Aliso)’의 모습 <사진=LOS ANGELES VINTNERS ASSOCIATION>

캘리포니아에서 유럽종 포도를 심기 시작한 것은 1861년 미국 와인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헝가리 출신 ‘오고스톤 하라즈시(Agoston Haraszthy)’가 유럽에서 포도묘목 10만 주를 가져온 시점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전에 유럽에서 묘목을 가져와서 와인을 만든 사람이 있었다. ‘장 루이 비뉴(Jean-Louis Vignes)’라는 사람으로 1831년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여 푸에블로와 로스앤젤레스 강변 사이에 104에이커(약 13만 평, 42ha) 대지를 구입하여 포도를 심고 와인을 만들었다. 이곳을 입구에 있는 몇 백 년 된 나무 이름(Alder)을 따서 ‘엘알리소(El Aliso)’라고 명명하였다.

당시 사용할 수 있는 포도는 18세기 말 멕시코에서 프란시스코 수도사가 가져온 미사용 포도였다. 이 포도는 잘 자라고 수확량도 많았지만, 장 루이 비유는 이 와인에 만족하지 못하고, 보르도에서 카베르네 프랑과 소비뇽 블랑을 가져오기로 결정한다. 이 포도나무는 유럽에서 남미 대륙 끝에 있는 혼 곶(Cape Horn)을 통과하여 가지고 온다. 당시에는 파나마운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장기간 이동에 뿌리를 살리고자 이끼와 얇게 썬 감자 사이에 묻어서 가져 온 것이다. 이로써 비뉴는 캘리포니아에서 처음으로 고급 포도나무를 재배하고 그 와인을 숙성시킨 사람이 된다.

당시 와인은 발효가 끝나자마자 마시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그는 장기 숙성을 한 와인을 선보였다. 그의 첫 번째 빈티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857년에 그의 와인이 20년 되었다고 광고를 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1837년 이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오크통 나무는 그가 가지고 있는 샌 베르나르디노 산맥(Bernardino Mountains)에서 가져왔다. 그의 포도밭에는 포도나무 4만 주, 연간 15만 병을 생산하는 규모였고, 백악관에도 납품하였으며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비싼 포도밭이었다. 1855년 포도밭을 조카에게 팔고 그 돈으로 자선사업에 전념하고 1862년 사망한다. 기록이 뚜렷한 데도 그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궁금할 뿐이다.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준철 winespiri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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