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보름 부럼 <사진=한국물가정보>

최근 국제적으로도 화두인 애그플레이션(agflation). 농업을 뜻하는 영어 ‘애그리컬처(agricultur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단어로, 곡물 가격이 상승하며 일반 물가까지 올라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처럼 심상치 않은 곡물 가격 상승세가 우리 전통 명절인 정월 대보름 부럼과 오곡밥 재료 등 주요 품목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격조사기관인 한국물가정보가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오곡밥과 부럼 재료 등 10개의 주요 품목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와 비교해 50%가량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전통시장은 150,400원, 대형마트는 197,940원으로 전통시장 기준 전년보다 50.6% 올랐으며,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31.6% 저렴한 것으로 조사됐다. 매해 품목별로 오르내림이 있었으나, 올해는 내린 품목은 없고 모든 품목이 올랐는데, 특히 오곡밥 재료 중에서는 수수가, 부럼 재료 중에서는 잣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 정월 대보름 주요 품목 물가 정보 <자료=한국물가정보>

이는 지난해 생육 환경이 좋지 않아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만큼 적은 생산량 탓으로 분석된다. 한국물가정보 이동훈 연구원은 “곡식류의 경우 낟알이 형성되는 시기에 역대 최장기간을 기록한 장마로 일조시간 감소, 강수량 증가 등 생육 환경이 좋지 않았고, 낟알이 익는 시기에 일조량은 증가했으나 연이어 들이닥친 태풍과 평균기온 감소 등 기상 악화로 인해 생산량이 급감한 것이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라고 밝혔다.

또한, 부럼 재료의 가격 상승세를 주도한 주요 요소는 밤과 잣으로, 잣은 작년 정월 대보름에도 재작년과 비교해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다. 작년 코로나19로 인해 줄어든 수입량으로 저장된 국산 잣 소비가 늘어 가격이 오르던 가운데, 이상고온 현상에 이어 병충해까지 극성을 부렸고, 최장기간을 기록한 장마와 추수 시기에 찾아온 가을 태풍으로 생육 환경이 좋지 않아 흉년을 맞이한 잣은 올해 특히 유례없이 비싼 가격인 것으로 조사됐다.

▲ 정월 대보름 주요 품목 물가 정보 <자료=한국물가정보>

한편, 정월 대보름에는 예로부터 절식으로 오곡밥, 약밥, 귀밝이술, 김과 취나물 같은 묵은 나물 등을 먹으며 한해의 건강과 소원을 빌고, 쥐불놀이, 액막이, 연날리기, 달집태우기, 달맞이 등의 놀이와 행사로 한 해의 풍년을 빌었다. 인구가 도시로 대거 유입되면서 최근에는 이런 전통 놀이를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장수와 풍년을 기원하는 ‘오곡밥 먹기’와 부스럼 예방과 치아 건강을 기원하는 ‘부럼 깨기’는 매년 빠지지 않고 남아있는 행사다. 칼로리가 높은 대부분의 견과류에 비해 밤은 100g당 167㎉로 열량이 낮고, 비타민C 함유량이 풍부해서 생밤 10개면 비타민C 하루 필요량을 모두 섭취할 수 있다고 한다.

잣은 떨어진 기력을 보충하는 데 탁월한 견과류로 혈압을 낮추고 스태미나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지방이 약 65%를 차지하는 호두는 그중 90%가 단백질과 소화 흡수가 잘 되는 불포화지방산으로, 우리 몸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

▲ 보름 견과류 <자료=한국물가정보>

은행에는 장코플라톤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혈전을 없애주는 등 혈액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 땅콩에는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불포화지방산 함유량이 많아 스태미나 식품으로 불리며, 콩류 중에서 당질이 가장 적게 들어있어 당질 제한을 할 때 유용하고 레스베라트롤이라는  심장병 예방에 좋은 성분과 항산화 작용을 하는 파라쿠마르산도 풍부하다. 이렇게 정월 대보름에 부럼을 깨물고 먹는 것에서 겨울 동안 부족했던 영양소를 보충하고자 하였던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소믈리에타임즈 전은희 기자 stpress@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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