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라가의 메르세드(Merced) 광장 벤치에 앉아 있는 피카소의 동상. 메르세드 광장은 피카소가 유년시절을 보낸 생가 앞에 위치해 있다. <사진=신재연>

[칼럼니스트 신재연] 스페인 남부 해안에 위치한 말라가(Málaga)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피카소의 고향이자 전세계 사람들이 찾는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말라가를 찾는 관광객들은 피카소 미술관과 피카소 생가를 방문하고 태양의 해안이라는 의미의 꼬스따 델 쏠(Costa del Sol) 가운데에 위치한 아름다운 바다, 마르베야(Marbella)의 해변에서 추억을 만드는 것을 필수 코스로 꼽는다.

하지만 말라가는 기원전 8세기 페니키아인들이 이주해오면서부터 와인을 만들어 온 유서 깊은 와인 생산지이다. 필록세라(Phylloxera)가 말라가를 강타하기 이전 17세기에서 19세기 초반 사이에는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와인 생산지로서 명성을 과시하였고, 18세기 말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는 모스코바의 스페인 대사를 통해 말라가의 와인을 맛 보고는 말라가에서 러시아로 수입되는 모든 와인의 관세를 철폐한 일화도 있다. 이렇듯 말라가의 와인은 긴 역사만큼 그 종류와 와인을 부르는 명칭 또한 독특하고 다양하다.
 

▲ 말라가의 대표 품종인 모스까뗄 데 알레한드리아 <사진="Consejo Regulador de las Denominaciones de Origen Málaga, Sierras de Málaga y Pasas de Málaga">

말라가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포도는 모스까뗄 데 알레한드리아(Moscatel de Alejandría)와 뻬드로 히메네즈 (Pedro Ximénez)로, 이를 바탕으로 만든 와인인 빠하레떼(Pajarete), 라그리마(Lágrima) 등의 전통적인 스윗 와인이 주종을 이루지만 쉐리 스타일의 크림(Cream)과 드라이한 피노 쎄꼬(Fino Seco)도 생산되며, 선술집에서는 이런 모든 와인을 비노 말라가(Vino Málaga)로 통칭하기도 한다. 이는 양조 방법과 생산된 와인 종류에 따라 이런 리쿼 와인(Vinos de licor)에 D.O.(Denominación de Origen) Málaga 원산지 인증을 해주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
 

▲ 말라가의 와인 생산지 상세 구분. 아샤르끼아(Axarquía), 몬떼스 데 말라가(Montes de Málaga), 마닐바(Manilva), 세라니아 데 론다(Serranía de Ronda), 노르떼(Norte)로 나눠진다. <사진="Consejo Regulador de las Denominaciones de Origen Málaga, Sierras de Málaga y Pasas de Málaga">

빠하레떼는 말라가 스타일의 스윗 와인을 부르는 애칭으로 아로뻬(Arrope) 첨가 없이 리터당 45g – 140g 의 당분을 유지하며 짙은 호박색을 띄고 최소 2년 이상 숙성되어 완숙한 과실향과 토스티한 아몬드 향, 카라멜 등의 달고 고소한 향이 복합적으로 나는 와인을 일컫는다. 이는 빠하레떼 산맥에 위치한 곳에서 생산한 이 스타일의 와인이 유명해져 지역 이름을 부르다 보니 고유명사처럼 된 것이다. 여기서 아로뻬는 포도즙을 직접 끓이거나 중탕으로 졸여서 만든 시럽을 의미하는데 와인에 이를 첨가하는 양과 숙성 기간에 따라서 와인의 색이 짙어지기 때문에 금빛(Dorado), 붉은 금빛(Rojo Dorado), 어두운(Oscuro), 짙은 색의(Color), 검은 빛(Negro)으로 와인을 분류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라그리마는 원래 흘러내리는 눈물이란 의미로 와인을 와인 잔에서 흔들어 돌린 뒤에 와인 잔 벽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는 것도 라그리마라고 부른다. 그러나 말라가 와인에서 라그리마는 포도를 인위적으로 압착해서 즙을 짜내지 않고 가볍게 으깬 뒤에 흘러내리는 즙을 받아서 만드는 와인을 의미한다. 라그리마 와인 중에서 최소 2년 이상 숙성하고 품질을 인정받는 경우 크라이스트의 눈물(Lacrimae Christi)란 명칭을 얻을 수 있다.

말라가에서 이런 전통 와인을 맛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는 안띠구아 까사 데 과르디아 (Antigua Casa de Guardia)를 추천한다. 스페인 남부의 유쾌하고 시끌 벅적한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는 선술집으로 올해 176년이 되었는데, 다양한 말라가 와인을 맛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말라가의 와인을 즐기던 피카소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안띠구아 까사 데 과르디아의 벽 한켠에 걸려 있는 피카소의 사진. 피카소가 플라멩꼬 무용수에게 와인을 선물하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사진=Antigua Casa De Guardia>

이제 스페인에서 말라가를 방문한다면 말라가 와인을 마시며 안달루시아(Andalucia)의 태양을 미각으로 느끼는 사치도 누려보자. 달콤하게 넘어가는 한 잔의 와인 덕분에 태양의 해변이 주는 아름다움과 피카소의 예술혼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배가 될 것이다.

*필록세라(Phylloxera): 북아메리카에서 유래한 포도나무에 기생하는 해충으로 19세기 말 이에 저항력이 없던 유럽의 포도나무에 급속히 전염되어 유럽 전역의 대다수 와인 산지가 황폐화 되었었다.
 

▲ 신재연 소믈리에

[칼럼니스트 소개] 대학 졸업 후 8년여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IE Business School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이후 Escuela Española de Cata 에서 Sommelier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스페인의 와인과 먹거리를 공부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일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신재연소믈리에  jane.jy.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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