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하의 와인스케치북] 포르투(Porto) 속으로 ④

승인2021.03.26 12:53:30

갈매기 소리에 깼다. 어젯밤, 바다를 보러 갈 생각을 하며 잠들었더니 환청이라도 들리나?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들어도 정말 갈매기 울음소리가 맞다. 서울에서만 나고 자란 사람에게는 시내 한복판에서 들리는 갈매기 울음소리가 여간 신기한 게 아닌지라 나는 갈매기 소리의 진원지를 찾으려 창문을 열고 아래위를 두리번거린다. 바닷가에서 놀던 갈매기들이 바람을 타고 도우루 강가까지 온 걸까.

어제 그 높은 탑과 축축하고 가파른 골목길을 수차례 왕복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오늘 아침은 몸이 더 가벼워진 느낌이다. 게다가 휴대폰의 성급한 알람 소리가 아니라 끼룩대는 갈매기 소리라면 얼마든지 달콤한 아침 잠 따위는 물리칠 수 있을 것만 같다.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아침이다!’ 흡족해하며 휴대폰을 보려는 데, 이런, 시계는 이미 정오를 향해 가고 있었다. 괜히 머쓱 해져 잠시 침대에 멍하니 걸터앉았다. 오전의 생생한 바다 보다는 일몰의 바다를 보라고, 체력이 저질인 여행자를 위해 갈매기가 이렇게도 느지막이 울었구나. 나는 그냥 여유를 부려 보기로 했다.

거리도 하늘도 모두 회색이다. 비가 와서 젖은 도로를, 며칠째 무리해 아픈 발로 걸으려니 더 힘이 든다. 포르투는 끝까지 맑은 하늘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걸까? 늦게 일어나 마음이 조급해졌는지, 3일째 흐린 날씨에 슬슬 서운한 마음이 든다. 이럴 땐 달달한 게 최고다.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지만 유명한 에그타르트 맛집, 나타(Nata)가게가 오늘은 문을 열어, 하나 사 먹으며 걷기로 했다. 어제 먹은 것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덜 달고, 더 따뜻하다.

▲ 비 오는 1월의 포르투 <사진=송정하>

포르투갈식 샌드위치, 프란세자냐(Francesinha)가 맛있다는 곳에 가기 위해, 산타 카타리나 거리를 지나 상 벤투역(St. Bento)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었다. 직선거리가 끝나고 측면에 두 개 이상의 좁은 거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늘 당황스럽다. 얼마 안 되는 각도로 갈라져 있는 두 길 중 도무지 어디를 택해야 할 지 모르겠다. 물론 감각이 좋은 사람이라면 어디로 가든 쉽게 목적지를 찾겠지만 말이다. 나는 인터넷 지도의 ‘내 위치’ 버튼을 여러 번 눌러 현재 위치를 확인한 후 지도상의 움직이는 화살표에 의존해 엉금엉금 걷기 시작했다.

골목 가장자리의 살짝 경사진 곳에서 간신히 피코타(PICOTA) 라는 간판을 발견했다. 날씨가 조금 개어 실외에도 몇 개의 테이블이 늘어져 있지만 나는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기로 했다. 돌 벽과 높은 천장만 아니라면 우리나라의 여느 분식집을 연상시키는 구조다. 새로운 음식을 처음 접할 때에는 무조건 오리지널로 선택하는 나는, 이번에도 노말(Normal) 프란세자냐를 주문했다. 앞과 옆 테이블에서 프랑스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가 들리는 거 보니 관광객들 사이에서 이름난 집이 맞는 것 같다.

따뜻하게 데워진 접시에 담겨 나온 프란세자냐는, 두툼한 정사각형 모양의 샌드위치에 맨 위에는 치즈가 올려져 있고 진한 오렌지색 소스가 흠뻑 끼얹어 있다. 말이 샌드위치지 손으로 들고 먹을 수 없는 형태라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해 한 입 먹으니, 마치 햄버거에서 빵을 뺀 거대한 패티를 소스에 부어 먹는 맛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이프로 자른 단면을 보니 고기 패티와 여러 종류의 소시지, 베이컨, 치즈 등이 지구상의 모든 육상동물 고기를 다 넣으려는 기세인가 싶게 차곡차곡 쌓여져 있다.

음식의 유래를 찾아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축구를 굉장히 잘 할 것만 같은 이름을 가진 다니엘 다 실바(Daniel da Silva)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막 고향 포르투로 돌아온 그는, 프랑스에서 먹던 크로크 무슈(Croque monsieur: 빵에 햄과 에멘탈 등의 치즈를 올려 따뜻하게 먹는 프랑스식 샌드위치)를 포르투갈인들의 입맛에 맞게 새로 만들고 싶었다. 그는 스테이크와 달걀, 훈제 돼지고기로 만든 포르투갈의 소시지 링귀사(Linguiça), 가늘고 작은 치폴라타(Chipolata) 등의 소시지와 베이컨, 치즈를 토핑(?)으로 추가했고, 이것이 오늘날 포르투의 유명한 프란세자냐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프란세자냐’란 포르투갈어 이름도 ‘프랑스에서 온 작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물론 다홍색의 특제 소스도 빼놓을 수 없는데 토마토와 맥주를 넣는 것이 비법이라고 한다.

▲ 지나치게 알찼던! 프란세자냐 <사진=송정하>

그래도 그렇지, 의욕이 너무 과했던 것 아닙니까, 다니엘 다 실바씨! 그 맛의 풍부함 (혹은 느끼함?)과 양이, 이미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어서, 반을 채 먹지 못하고 포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함께 나온, 유난히 맛 좋았던 감자튀김마저 남긴 게 아까웠다.

식당을 나오니 맑았던 하늘이 다시 흐려진다. 나는 해변으로 가는 트램을 타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트램을 타려면 강 둑으로 내려가야 한다. 칙칙하고 흐린 골목길 사이로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하더니 멀리 강가에 정착한 배들이 보인다. 가로등 위에 앉은 갈매기 두 마리가 같이 날씨 걱정을 하 듯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인펑티(Infante) 트램 역에 모인 몇몇의 무리들과 함께 나는 대서양을 면한 포즈(Foz)행 전차에 올랐다.

프랑스의 여러 도시와 일본에서 몇몇의 트램을 타 보았지만, 내가 본 트램 중 가장 작고 귀여우면서도 클래식한, 동화에서나 볼 법한 트램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마호가니색 나무 장식과, 황동색 손잡이, 천장의 백열전구가 옛 느낌을 물씬 풍긴다. 하차를 알리는 벨이 없어서 내리려면 천장에 달린 줄을 힘차게 잡아당겨야 한다. 그러면 챙- 하는 소리가 나고 전차는 멈춘다. 나도 챙 소리를 내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내릴 역은 종점이다.

▲ 한 관광객 일행이 포르투로 돌아가는 시간을 묻고 있다 <사진=송정하>

성수기에는 이른 오전이나 오후 늦게 타야 할 정도로 승객들로 붐빈다는데, 추운 겨울에 온 덕에 자리에 앉아 창밖의 해변을 감상할 수 있었다. 강 맞은편의 집들이 듬성듬성 보일 무렵 이내 바다가 가까이 느껴진다. 아라비다 다리(Ponte da Arrábida) 아래를 지나 서쪽으로, 서쪽으로. 마침내 도우루 강과 북대서양이 만나는 지점, 파세이우 알레그르 공원(Passeio Alegre) 역에서 트램이 멈췄다.

거대한 파인애플을 닮은 야자나무 너머로 탁 트인 바다가 보인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맞은편에는 야자수만큼이나 크고 아름다운 저택이 줄지어 있다. 파도가 부서지는 광활한 바다와 야자나무를 정원 삼아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인간이 만들어 낸 찬란한 문화예술이 잘 보존된 유럽에 있다 보면 어디를 가든 그 건물이 그 건물 같고, 오밀조밀 잘 차려진 거리들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바람을 쐬러 근처 강으로 나가 봐도 강물의 색이나 물줄기가 영 시원찮다. 그럴 때는 이렇게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영역으로 가고 싶어진다. 가늠할 수 없는 검푸른 바다 그리고 거센 파도와 부딪히며 수많은 세월을 견뎌온 바위들, 어쩐지 도시에서 보다 훨씬 신비하게 느껴지는 하늘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다 보면 다시 인간이 그리워 돌아가고 싶은 때가 찾아온다.

해변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저 멀리서 가늘고 긴 막대가 넘실거리길래 다가가 봤더니 바다낚시를 하러 온 사람들이다. 저곳이 바다낚시의 명당인가 보다. 나는 지렁이가 무섭다는 이유로 낚시를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은은한 바다 풍광을 배경 삼아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취가 느껴진다.

▲ 바다낚시 하는 사람들, 멀리 펠구에이라스(Felgueiras) 등대가 보인다. <사진=송정하>

방파제와 등대에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여 사납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는 것은 그 어떤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흥미롭다. 자세히 보려고 더 다가가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아찔한 쾌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를 집어삼킬 듯 콸콸 쏟아지는 파도를 보고 있으니 쌀쌀한 날씨지만 시원한 음료 생각이 간절하다. 나는 해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오포르투 카페(Oporto Café)로 들어가 ‘비뉴 베르드(Vihno verde)’를 주문했다. 직역하면 ‘그린 와인(Green wine)’이 되는 비뉴 베르드는, 포르투갈의 북서부 지방에서 주로 화이트 와인으로 생산되며 살짝 기포가 올라오는 것이 특징이다. 내가 마신 것은 대서양의 서늘한 기후를 머금은 포도, 알바리뉴(Alvarhino)와 로레이루(Loureiro)를 블렌딩 한 것으로, 전형적인 비뉴 베르디답게 알코올 도수가 낮아, 지금처럼 잠시 쉬어 갈 때 가볍게 마시기에 제격이다. 바다를 보며 마시는 비뉴 베르드에서는, 레몬과 자몽의 상큼한 맛에 조금 짭짤한 풍미도 느껴졌다. 때마침 카페에서는 오래전 즐겨 듣던 노라 존스(Norah Jones)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나는 갑자기 이 모든 것이 신기할 정도로 고맙고, 또 흘러갈 순간들이 아쉽다.

늦게 일어나서 하루가 너무 짧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니 이제는 오늘의 마지막 트램을 타고 포르투 시내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리고 여행의 의무이자 특권인, 맛있는 식사를 즐겨야 할 차례다. 지금까지 내 맘대로 ‘페드로네 닭 집’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는 한 식당(Pedro dos Frangos)으로 향했는데, 식당의 2호점에 도착한 순간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길 건너 바로 앞에 1호점이 있는 것 하며 2층으로 올라가는 내부 구조가, 자주 가던 서울의 한 유명한 칼국숫집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자리를 안내하는 직원과 테이블에서 들리는 한국인 관광객의 목소리까지 들으니 마치 서울 한복판의 칼국수 식당에 새로 추가된 메뉴인 치킨을 먹으러 온 느낌이다.

나는 로스트 치킨과 포르투갈의 국민 맥주, 수퍼복(Super Bock) 오리지날을 한잔 주문했다. 최근에 이 식당의 리뷰를 검색 한 결과, 이 곳을 다녀간 한국인들의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인생 최고 중의 하나로 꼽을 만한 맛있는 치킨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기름이 뚝뚝 흐르는, 보르도 치킨집의 거대한 닭 다리에 한동안 충격을 받았던 탓인지 아니면 낮에 프란세자냐를 너무 남겨 배가 어지간히 고팠기 때문인지, 적당히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한국의 시장 통닭 맛 그대로였다. 나는 누가 보는지 어쩐 지도 모른 채, 양손을 들어 닭을 정성스레 해체한 후 한 입 먹고, 기름진 손으로 맥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기를 반복했다. 배가 불러 더 먹지 못한 것이 지금도 후회된다!

배가 부르니 숙소로 향하는 어둑한 골목길을 걷는 것도 즐거운 밤 산책이다. 온전히 하루를 즐길 수 있는 날은 내일로서 마지막이니, 내일은 기필코 일찍 일어나서 조금이라도 더 보고 먹어야(?) 하겠다는 단순한 다짐을 해본다. 벌써 포르투가 아쉬워진다.

▲ 송 정 하

법대를 나왔지만 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아 프랑스 보르도로 떠났다. 보르도 CAFA에서 CES(Conseiller en sommellerie:소믈리에컨설턴트 국가공인자격증), 파리 Le COAM에서 WSET Level 3를 취득했다. 사람이 주인공인 따뜻한 와인이야기를 쓰고 싶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송정하 noellesong05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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