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 30주년 기념 사진 <사진=김욱성 칼럼니스트>

영화 ‘와인 미라클’ 때문에 ‘파리의 심판’의 역사적 사실이 상당히 다르게 묘사되었는데, 실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스티븐 스퍼리에(Steven Spurrier)는 프로방스에서 몇 년을 살다가 1970년 파리에 정착하기로 한다. 1971년 파리 시내에 ‘캬브 들 라 마들렌(Cave de la Madeleine)’이라는 와인 숍을 차리고, 1973년에는 프랑스 최초 사설 와인교육기관인 ‘아카데미 뒤 뱅(L'Academie du Vin)’을 설립하였는데, 당시 영어를 구사하는 은행, 법률 회사 등이 대부분 이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영어로 와인강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음용 와인에 프랑스 이외의 국가의 것을 포함하기도 했다. 사업이 확장되면서 매니저로 미국 출신인 ‘패트리샤 갤러거(Patricia Gasteaud-Gallagher)’를 채용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캘리포니아 와이너리에서는 프랑스에 와서 자기들의 와인을 공정하게 평가받기 위해 아카데미 뒤 뱅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 캘리포니아 와인을 시음하는 기회가 많았다.

그러던 중 갤러거가 1976년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이해 캘리포니아 와인과 프랑스 와인을 파리에서 시음행사를 해 볼 것을 스퍼리에에게 제안하고 어느 정도 계획을 세웠으나, 시음 와인을 딱히 정해 놓은 것은 없었다. 날짜와 장소,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먼저 갤러거가 캘리포니아로 건너가서 여러 가지 와인을 시음하면서 선정하고, 나중에 스퍼리에와 합류하여 화이트 6종, 레드 6종을 선정한다. 마침 갤러거의 친구(Joanne DePuy)가 사람을 모집하여 프랑스 와인투어를 가는지라 이들에게 와인을 맡겨 파리 공항까지 시음 와인을 3상자 가져올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1976년 5월 24일 11명의 심사위원(스퍼리에와 갤러거를 제외하면 전부 프랑스인)이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여 우리가 잘 아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때 타임즈의 외신기자 ‘조지 태버(George Taber)’가 이를 ‘파리의 심판(The Judgement of Paris)’라고 제목을 붙여서 보도한 것이다.

샤토 몬텔레나의 공동 소유주인 짐과 로라 바렛(Jim and Laura Barrett)은 마침 보르도에서 와인을 시음하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된다. 이들은 알렉시스 리신(Alexis Lichine)과 함께 샤토 라스콤브(Chateau Lascombes)에서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 앞에서는 조용히 있다가 버스에 들어와서 우리가 1등이 되었다고 축배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1973년 샤토 몬텔레나를 만든 와인메이커인 ‘마이크 그르기치(Mike Grgich)’에게 전보로 이 소식을 알렸다. 1973년 스텍스 립을 만든 와인메이커인 ‘워렌 위니아스키(Warren Winiarski)’는 이들이 귀국할 때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참고로, 1973년 스텍스 립에는 1%의 피노 누아가 들어갔다고 한다.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준철 winespiri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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