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훈의 와인 스토리텔링] 와인은 발효된 포도즙

승인2021.06.07 15:10:50

와인은 발효된 포도즙입니다.

포도즙에는 수분이 70~80%, 탄수화물이 15~25%, 유기산 0.3~1%, 타닌 0.01~0.1%, 질소화합물 0.03~0.17%, 무기질 0.3~6%이며 탄수화물은 주로 과당이나 포도당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이 모두가 당분을 알코올로 변화시키는 효모의 중요한 영양분입니다. 와인을 만드는 방법은 포도즙을 짜고, 단세포 식물인 효모가 포도 주스 속에 들어 있는 당분을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효모가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은 당분이지요. 효모가 당을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합니다. 탄산가스를 날려버리면 거품이 없는 와인이 되고, 막아놓으면 발포성 와인이 되지요.

▲ 파스퇴르(Louis Pasteur) <사진=Wikimedia>

발효의 신비한 현상은 우유로 유명한 파스퇴르가 1859년에 <알코올발효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발효의 비밀을 풀어냈습니다. 달콤한 포도주스가 효모의 도움으로 알코올로 바뀌는 과정을 발효라고 하지요. 우리가 마시는 대부분의 와인들은 효모가 당분을 다 잡아먹고 발효가 끝난 상태의 와인입니다. 이런 상태를 ‘Dry’ 하다고 표현합니다. 파스퇴르는 "발효는 산소 없이 나타나는 생명현상"이라는 폼 나는 말도 남겼지요.

와인을 마실 때 우리는 언제 와인을 마셔야 하는지가 항상 궁금하고 어려워합니다. 또 언제가 와인의 절정인가도 알고 싶어 합니다. 다만 염두에 둘 것은, 와인은 다양성이 매력이며, 맛과 즐거움을 느끼는 부분은 개개인의 정서적, 감각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와인은 생명을 가진 술입니다. 생명을 가졌다는 뜻은 발효과정에서부터 오크통이나 병 속에서 끊임없이 생화학적 반응에 의해서 다른 맛으로 진화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발효와 숙성을 헷갈려 합니다. 발효는 와인이 되는 과정, 숙성은 와인이 맛들어가는 과정쯤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와인 저장과 숙성의 목적은 와인이 자신이 가진 잠재력과 표현력을 극대화하고 인간에게 더 큰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발효는 와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이고, 숙성은 완성된 와인이 여러 가지 생화학적 반응을 통해 익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부터는 조금 복잡해집니다.

▲ 숙성되고 있는 와인들 <사진=Wikimedia>

와인이 숙성된다는 것은 산화와 환원 작용이 관여하게 됩니다. 1856년 파스퇴르는 나폴레옹 3세의 명을 받아 연구를 한 결과 와인이 숙성하고 변질되게 하는 주범은 산소라는 것을 규명하게 됩니다. 산소는 와인에게 계륵 같은 존재입니다. 없어서도 안 되지만, 많아도 안 되는, 그렇다고, 없앨 수도 없는, 와인이 숙성된다는 것은, 산소분자를 잃거나(환원) 수소 또는 전자를 얻는(산화) 과정을 반복하면서, 와인 속에 존재하는 알코올, 당, 산 등 여러 물질이 화학적인 변화를 겪으며 에스테르(esters)같은 오묘한 향이 생겨나게 되지요.

와인의 숙성에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시간. 빛. 열, 습도 추위, 진동, 용기 등입니다. 시간은 다른 것으로 대체 불가능한 요소입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시간을 제외한 다른 요소들이 와인의 숙성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라고 봐야 합니다. 좀 복잡하지만, 병입된 와인 병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우선 타닌의 변화를 알아봅니다. (레드의 경우, 화이트나 샴페인은 숙성기간이 짧고 바로 마셔도 괜찮은 경우가 많습니다)

타닌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타닌은 단백질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우리 입안에는 침과 그 침을 만들어내는 침샘이 있는데, 침샘은 대부분 단백질로 되어 있습니다. 타닌이 하는 역할은 침샘을 닫아버려서 우리 입안을 부드럽게 해주던 침을 더 이상 분비하지 못하게 하니, 혀가 쪼그라드는 거친 느낌을 입안에 남기는 것이지요. 숙성이 진행되면서 타닌의 분자가 서로 연결되어 침전물로 가라앉게 되면, 인은 다른 구성 물질들과 섞여서 부드럽고 조화된 맛을 느끼게 합니다.

와인은 숙성기간 중 이러한 상태는 짧은 기간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몇 달 혹은 몇 년간 지속됩니다. 따라서 와인의 숙성이 피크에 달했다고 말하는 것은 부정확하며, 오히려 일정 기간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간이 얼마나 지속될 것이며, 이처럼 마시기 좋은 상태인의 잠재적 가치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는 와인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조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예견할까요?

▲ 와인 테이스팅 <사진=Anton Kuzmin>

전문가들은 글라스에 담긴 와인이 어떤 와인이고, 누가 만들었으며, 빈티지가 언제이고, 그해의 포도 품질을 결정하는 기후는 어떠했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수많은 테이스팅 경험과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와인의 맛과 그 맛을 만들어낸 조건을 과거 다른 빈티지 와인에 대한 테이스팅 기억과 비교하는 것이지요.

"이 2005년 빈티지는 같은 와인 메이커의 1982년 빈티지 와인을 떠올리게 한다. 포도가 자라는 동안 날씨도 비슷했고, 그 와인이 어렸을 때의 맛이 지금 이 새 와인과 너무도 비슷하다. 1982년 빈티지 와인이 발전해 온 경과와 타닌이 좀 더 맛있게 변화하려면 12년에서 18년은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 와인도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측되는데, 아마도 이 와인이 최고조에 달하려면 12년 내지 18년은 소요될 것 같다.

따라서 이 와인은 2015년에서 2021년 사이가 가장 마시기 좋은 시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거쳐 와인이 맛있는 상태가 되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면 언제 와인을 마셔야 제일 맛있는 상태일까요? 이 점에서 약간의 오해가 있습니다. 숙성된 맛있는 와인이라는 말에는 좀 어폐가 있고,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변화된 와인입니다. 숙성과 성숙의 차이라고 할까요? 장기숙성능력과 품질은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오래 숙성된 와인이 반드시 숙성초기 와인보다 더 우월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오래 숙성시킨 와인은 더 부드럽고, 원숙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세월을 이겨낸 와인의 특성이지 반드시 고결(高潔)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개인의 다양성과 개성이 개입하게 됩니다. 우리는 확실히 우리의 선조들에 비해 시간에 대한 참을성이 없어졌고, 구체적이고 확인 가능한 것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와인 시음의 적기도 눈으로 확인 가능한 전문가들의 그래프를 확인하고 싶어 하고, 머릿속에는 그래프의 꼭짓점을 상상합니다.

사실 와인 숙성의 정점은 이집트의 피라미드 모양이 아니고 봉덕사 신종 같은 모양입니다. 자! 와인을 마실 차례입니다.

시음 온도는 기준을 타닌 함량으로 하면 간단해집니다. 많을수록 높은 온도로 서비스하고, 타닌 함량이 적은 와인은 차게 마신다고 보면 됩니다. 화이트 와인의 과일 향을 이루는 에스테르 성분은 낮은 온도에서도 향을 감지할 수 있는 농도에 도달하는 시간이 빠르고, 레드와인의 향을 이루는 휘발성 페놀 분자는 온도가 더 높아야 감지될 수 있습니다. 저는 키스를 할 때마다 머릿속의 상상과 부속기관이 따로 놉니다. 기장 취약한 부분입니다.

사랑을 나눌 때 우리는 오감을 동원해서 느끼고, 몸과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고, 오롯이 상대에만 집중합니다. 와인을 즐기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몸의 긴장을 풀고 오감의 돌기를 동원하여 와인을 받아들이십시오.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 기대하거나 우려하는 만큼 잘 되거나 잘못되지는 않습니다. 부모들은 인내를 가지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볼 뿐이지요. 와인의 숙성기간이나 절정도 그렇습니다. 자연의 오묘한 부분이 관여하도록 지켜볼 수 있을 뿐입니다.

인간이든 와인이든 이 세상에 나와서 생명을 다할 때까지 절정의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 어찌 한순간뿐일까요? 와인과 나 사이에 행복한 쾌락을 누리는 즐거움에 간섭할 어떤 이론이나, 편견을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권기훈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의대를 다녔고, 와인의 매력에 빠져 오스트리아 국가공인 Dip.Sommelier자격을 취득하였다. 이후 영국 WSET, 프랑스 보르도 CAFA등 에서 공부하고 귀국. 마산대학교 교수, 국가인재원객원교수, 국제음료학회이사를 지냈으며, 청와대, 국립외교원, 기업, 방송 등에서 와인강좌를 진행하였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권기훈 a90049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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