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선진 대표

셰프를 꿈꾸는 사람은 한 번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것을 상상해봤 것이다.

단순히 이를 상상에서 끝내지 않고 한국인 최초로 현실로 이뤄낸 사람이 있다. 세계적인 레스토랑인 ‘엘 불리(El Bulli)’에서 근무한 것은 물론 세계 1위 레스토랑이었던 ‘노마(NOMA)’까지 진출했던 ‘황선진 셰프’가 그 주인공이다.

소믈리에타임즈는 그녀의 해외 레스토랑 경험을 담은 특별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Q1.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믈리에타임즈 구독자분들에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해외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현재 베카프리미엄델리샵(강남구) 및 외식 컨설팅을 하고 있는 요리사 황선진이라고 합니다.

Q2. 처음 요리에 관심을 가지고 셰프라는 꿈을 꾸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어학연수 시절, 국적이 다른 친구들과 매일 방과 후 요리 프로그램도 보고 서로 요리를 해주기도 하면서 세상에는 제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요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셰프라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Q3. 부모님 몰래 미국 요리학교인 존슨앤웨일즈대학교에 입학하셨다 들었습니다. 해외 요리학교 진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곳에서의 생활 및 교육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A. 당시 입학원서를 부모님 몰래 냈었는데, 재무 및 은행과 같은 서류가 미비해서 입학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결국엔 말씀드렸고, 처음에는 반대하셨지만 결국에는 도와주셨습니다.

유학 생활은 사람마다 편차가 큰데요. 저희 학교는 11일 동안 한 과목이 끝나야 다른 과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 7시간 매일 쪽지시험을 보는 것은 물론 중간고사, 기말고사, 실기테스트, 팀플을 해내야 해서 쉽지 않았어요. 물론 지금은 많이 변했겠죠?

외국 유학 생활의 장점은 좋은 마트에 가면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식재료가 있어서 공부하기가 좋았습니다. 또한, 다양한 문화도 접할 기회가 많았고요.

▲ 세계적인 명성의 레스토랑 '엘불리' <사진=Wikimedia>

Q4. 졸업 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 '엘불리'와 '노마'에서 일하셨습니다. 둘 다 분자요리로 유명하지만 스타일 자체는 다를 것 같은데, 두 곳에서 처음 일하게 된 계기와 생활 그리고 얻을 수 있었던 노하우는 무엇이었나요?

A. 제가 일했던 곳은 ‘엘불리’와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알리니아’ 그리고 북유럽 레스토랑인 ‘노마’인데요.

엘불리의 경우 학창 시절 뉴욕 미쉐린 1스타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선배님께서 엘불리 책을 자랑하시며 제겐 너무 어려운 책일 거라며 만져보지도 못하게 하셨어요. 막상 책을 진짜 사보니 너무 어려워서 정말 잘 모르겠더라고요. “뜨거운 젤리와 완두콩 라비올리는 어떻게 만들까?” 등을 생각하며 정확한 과정을 알고 싶어 본격적으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위해서 아마 이력서를 100장 정도 프린트 해놓고, 하루 세 번의 이메일 입사지원과 한 번의 등기우편 등으로 계속 문을 두드렸던 것 같아요.

하필 같은 시기에 당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 중 한 곳인 ‘찰리츄라우더(시카고, 당시 미국 내 7위)’와 ‘알리니아’의 오프닝 멤버로도 합격이 되어 나머지 두 군데를 포기해야 했었는데, 엘불리 이후 알리니아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근무 도중 손을 심하게 베어서 일을 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전 알리니아가 정말로 좋았기 때문에 붕대를 감고 일을 계속하다 감염이 되어서 결국엔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만난 친구가 덴마크에서 다시 한번 저랑 주방에서 신나게 한판 놀아보고 싶다고 제안했고, 그 뒤 친구랑 같이 덴마크에 있는 ‘노마’에 가게 되었어요.

▲ 상상력을 자극하는 독창적인 음식을 선보이는 '알리니아' <사진=Alinea>

Q5. 전체적으로 탄탄대로의 '엘리트 코스'로 보이지만, 절대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A. 꿈에 그리던 알리니아에서 일할 수 있게 되어 매일이 감사함의 연속이었는데요. 앞에서 말했듯이 혼자 진급 케이스였는데, 선배의 훼방으로 손을 다치는 바람에 감염 사고가 있었고 수술이 급해져 한국에 돌아와야 했을 때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Q6. 반대로 해외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가장 즐겁거나 보람찼던 순간은요?

A. 2000: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엘불리에서 미쉐린 출신 요리사들 사이에서 학생의 신분으로 들어가 레벨 차이가 너무 났고, 알아들을 수도, 말을 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력을 통해 차츰차츰 인정받게 되고 엘불리의 마지막 날 조회 시간에 헤드 셰프님께서 2005년 올해의 베스트 셰프로 저를 호명해 주셨습니다. “언어장벽을 뚫고 가장 완벽하게 요리한 셰프로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해 보였다”라고 말씀하셨고, 그때가 정말로 가장 보람찬 순간이었습니다.

Q7. 현재는 국내에서 외식 컨설팅은 물론 강남구 대치동의 베카프리미엄델리샵을 운영하시고 계시는데요. 앞으로의 계획 혹은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요리로 이룬 모든 것을 사회로 환원하는 것이요. 제가 이렇게 요리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제 요리를 즐겨주시는 고객님이 있어서이고, 그 고객님들께 감사하는 길을 차후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모두 보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8. 마지막으로 셰프를 꿈꾸고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A. 셰프라는 직업은 박봉에 고된 노동이 수반되므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의 접근보다 먼저 즐김으로 다가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불가능은 없으니 끝까지 포기 안 하셨으면 합니다.

소믈리에타임즈 유성호 기자 ujlle0201@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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