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6년 미국독립혁명이 발발하여 그때까지 미국으로 보내고 있던 죄수를 처리하지 못하게 된 영국은 호주(Australia) 대륙을 새로운 유형의 식민지로 이용하게 된다. 그리고 1788년 1월, 군인과 죄수 1,030명(죄수는 726명)은 지금의 시드니 근처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날이 호주의 건국기념일로, 호주는 죄수들이 개척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죄수들이 오는데, 도중에 많은 죄수들이 사망하게 되어 손실이 크자, 총독은 ‘윌리엄 레드펀(William Redfern)’이라는 의사에게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한다. 당시 레드펀은 감귤류와 와인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터라, 라임 즙을 섞은 와인을 죄수들에게 처방하여 효과를 보게 된다. 이에 윌리엄 레드펀은 시드니 남쪽에 포도밭을 개척하였고, 그 후 다른 의사들도 와이너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 (왼쪽) 헨리 린드먼 의사 (오른쪽) 크리스토퍼 로손 펜폴드 의사 <사진=Lindeman's & Penfolds>

린드먼(Lindeman)과 펜폴드(Penfold)는 런던의 세인트 바르톨로뮤(St. Bartholomew) 병원 출신이다. 린드먼은 1840년 호주로 이주하였는데, 유럽에서 와인의 효능에 매료되었던 그는 당시 독한 술을 마시던 사람들에게 와인의 효능에 대해 알리면서, 1843년 뉴사우스웨일스 헌터 밸리(Hunter Valley)에 포도밭을 세운다. 그는 또 1871년 뉴사우스웨일스 의학신문에 와인의 유익한 점을 알리고 와인을 국가적인 음료로 삼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 1800년대 린드먼 와이너리의 모습 <사진=Lindeman's>

와인의 의학적 가치를 잘 알고 있던 펜폴드 역시 1844년 호주 남부로 이주하는데, 프랑스에서 포도 묘목을 가져와 애들레이드(Adelaide)에 심었다. 처음에는 환자들을 위한 강화와인 위주로 시작하여 지금은 호주를 대표하는 와이너리가 되었다.

- 와인 에피소드(윤영지 외, 백산출판사)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준철 winespiri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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