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도에서 와인으로 <사진=시대의창>

서양에서 동양까지, 세계 와인의 문명사

와인은 인류 문명과 가장 닮은 술이다. 인류가 아직 두 발로 걷기 전부터 지구 어딘가에서는 와인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인류에 의해 ‘발견’된 와인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오래 ‘숙성’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이 책은 최고의 와인 전문가 과정인 WSET 디플로마를 수료한 한국인 저자가, 인류 문명사에 기록된 와인의 흔적을 따라간 기록이다. 태곳적부터 노아의 시대를 거쳐 철학과 종교의 시대를 지나, 인간의 시대, 과학의 시대, 그리고 취향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포도가 영글어 와인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한 권에 빚어냈다.

지금까지 와인의 세계사와 관련해 출간된 책들은 대부분 서양의 이야기만을 한정적으로 풀어내는 데에 그쳤다. 언뜻 당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와인이 ‘서양만의 술’일까? 이 책은 ‘와인의 발상지’인 ‘중동’을 포함해 ‘중국, 일본, 한국’에 이르는 ‘진정한 와인의 세계사’를 담고 있다.

한잔의 와인을 음미한다는 것은, 포도가 와인이 되기까지의 문명사적 경험을 느끼는 것과 같다. 와인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물론, 와인의 맛을 깊이 느끼고 싶은 독자 모두에게 이 책은 와인을 인문학적으로 더욱 풍부하게 ‘테이스팅’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신화와 종교, 역사와 문명, 예술 작품에 깃든 와인 이야기

인류 최초의 와인 흔적은 트랜스코카시아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의 와인 문화의 뿌리는 로마 시대 유럽 대륙과 기독교에 바탕을 두었다. 이러한 문명사적 ‘테루아르(환경)’ 때문에 오랜 시간 와인은 서양의 것이자 기독교 문화와 밀접한 술이었다.

터키 북부 아라라트산 기슭에 표착한 노아의 방주를 벗어난 포도는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와인빛으로 물들였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는 이들 고대인들이 포도로 와인을 빚는 장면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 지역으로 건너간 ‘포도’는 고대 문자를 통해 존재를 드러내더니, 호메로스의 시대에 이르러 위대한 서사시에 여러 차례 등장하기도 한다. 이윽고 신화와 철학의 시대에 당도한 와인은 디오니소스와 철학자들에 의해 인류 문명사 깊은 곳에서 무르익는다. 로마인들에 의해 서유럽으로 전파된 와인은, 비록 암흑시대를 맞긴 하지만 깊은 담장에 둘러싸인 수도원에서 종교와 더불어 기나긴 숙성을 거치며 때를 기다린다.

세상은 변해 사람들은 커다란 배를 타고 대륙을 넘나들었다. 사람들이 가는 곳을 향해 포도 또한 넝쿨을 뻗을 수 있었다. 어느 사이 유럽을 벗어난 포도는 낯선 대륙에 뿌리를 내렸고, 기술의 발전이라는 자양분을 취해 세계 곳곳에 ‘와인 익는 마을’이 생겨났다. 바야흐로 인류는 와인의 시대에 당도했다. 문화와 종교, 자본과 가치가 ‘블렌딩’된 와인의 역사는 곧 인류 문명사였다.

이 책은 태곳적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사 곳곳에 배어든 종교와 신화 속의 이야기, 역사 기록과 문명사의 흔적들, 그리고 동굴벽화를 비롯해 여러 유물과 예술 작품에 표현된 포도와 와인을 다양한 시각 자료와 함께 보여준다.

암포라, 오크통, 유리병, 코르크 그리고 과학기술

포도가 와인이 되어 우리 입 안을 향긋하게 적시기까지, 그 오랜 동안에는 여러 ‘도움’이 필요하다. 포도가 ‘올곧이’ 발효될 저장고, 와인이 담길 병, 병을 막을 마개,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대한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한 과학기술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코르크 마개를 열고 잔에 와인을 따라 그 맛과 향을 쉽게 음미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가 ‘일상’이 되기까지 역사적 경험이 숱하게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비단 포도와 와인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와인을 둘러싼 여러 도구와 기술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다루었다. 고대인들이 와인을 보관한 암포라(항아리)는 바닥이 왜 뾰족했는지, 나무통은 언제부터 와인 저장에 사용되었는지, 지금처럼 단단한 유리병은 누가 고안했고, 코르크 마개는 언제 등장했고 어떻게 만드는지 등 ‘알아두면 술 마실 때 꺼내기 좋은’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여기에, 알코올도수를 높인 와인이 생긴 까닭, 유럽을 초토화시킨 포도나무 전염병과 접목 기술, 그리고 파스퇴르까지, 한계와 위기에 맞선 이야기들을 두루 담았다.

최근 한국도 와인의 시대를 맞았다. 한때 ‘넘보기 어려운 술’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동네 편의점에서도 좋은 와인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 와인’ 또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고 싶다’던 고려 사람들의 바람을 이젠 한 병의 와인으로 접할 수 있다. 어느덧 와인이 우리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든 것이다.

이 책은, 일상의 와인에 인류와 함께 익어온 포도의 깊은 풍미를 더하고 싶은 독자들이 와인과 함께 곁들일 때 더욱 빛을 발할 최고의 ‘마리아주(조합)’가 될 것이다.

소믈리에타임즈 유성호 기자 ujlle0201@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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