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곳, 언젠가 함께 올라주겠니?
언제?
글쎄...
한 10년 후...
약속해 주겠어?
좋아, 약속할게. "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작가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주옥같은 명대사들이 사랑에 대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작품 ‘냉정과 열정 사이’, 수많은 연인들로 하여금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오르게 하였지요.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낼 수 없다. 다들 미래만을 외치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미래를 쫓는다고 쓸데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체 살아가는 것이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불확실해서 더 절실한 기다림.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릅니다. 10년 후의 불확실한 만남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인간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꿈꾸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의 무대는 피렌체입니다.

피렌체는 이태리 최고의 와인 산지인 토스카나 주의 주도입니다. 아름다운 구릉에 펼쳐진 포도밭, 맛있는 음식과 멋진 포도주가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토스카나 지방은 푸치니와 안드레아 보첼리, 어릴 때 읽었던 동화 피노키오의 고향이자 와인, 올리브오일의 산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쉽게 만날 수 있는 와인이 키안티 와인입니다.

1716년 9월, 피렌체 대공국의 수장 코시모 3세 대공은 한 법령(Bando Granducale)에 서명합니다. 대공이 다스리는 피렌체 남부와 시에나 북부 사이에 놓여있는 샌드위치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보호하는 법령이었습니다.

대공은 남 피렌체에서 북 시에나 구간의 옛 지명이 키안티임을 참작해 ‘키안티’를 와인명으로 채택합니다. 키안티 포도밭과 일반 포도밭의 경계를 가르고 키안티 경계선 안으로 포함된 마을 지명도 구체적으로 규정에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원산지가 확실한 자국산 와인을 보호하고 위조 와인을 처벌할 수 있는 명분을 열었습니다. 이 법령은 나아가 현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규정을 낳았고 현대 이탈리아 와인 법의 골격을 이루게 됩니다.

▲ Fiasco di Chianti <사진=@giulio nepi>

제가 중학교 때 친구 집에서 처음 본 와인입니다.

좀 사는 집에 거실장에서 버티고 있던 와인이, 바로 이렇게 생긴 키안티 와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주로 남대문 미제시장이나 미군부대를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가 되었지요.

이 키안티 와인의 고향이 토스카나 지방입니다.

토스카나 지방에서 주로 재배되는 품종은 산지오베제입니다. 산지오베제 (Sangiovese)는 라틴어 ‘쥬피터(Jove)’ 와 ‘피(Sanguis)’를 합성한 단어로 ‘쥬피터(제우스)의 피’라는 뜻입니다. 산지오베제는 브루넬로(Brunello), 모렐리노(Morelino), 프루뇰로 젠틸레(Prugnolo Gentile)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요. 모두 산지오베제와 같은 품종이고 유전자만 다른 계통인 클론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 지방의 명주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에서 브루넬로가 바로 산지오베제의 클론이지요. 뒤에 붙은 몬탈치노는 산지 이름이고요.

로쏘 디 몬탈치노(Rosso di Montalcino)는 같은 포도밭의 산지오베제로 만드는데 포도나무의 수령이 BDM보다 어린 포도로 만들기 때문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와인입니다.

토스카나 여행은 보통 이 작고 아름다운 몬탈치노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 몬탈치노 <사진=Wikimedia>

키안티 와인의 등급 공부를 좀 해볼까요?

키안티-키안티 수페리오-키안티 클라시코-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순으로 뒤로 갈수록 고급 와인입니다. 2014년 2월에는 그 위에 최고 등급인 그란 셀레지오네(Gran Selezione)가 새로 만들어졌었지요.

▲ 키안티 클라시코의 대표적인 Gallo Nero, 검은수탉 상표 <사진=Chianti Classico Consortium>

이렇게 생긴 것 보셨지요?

키안티 클라시코의 대표적인 Gallo Nero, 검은수탉 상표입니다.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을 마셔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검은 수탉 전설은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검은 수탉은 지구인의 마스코트가 되었습니다. 검은 수탉이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의 모델이 된 것은 법령 공포 후 2백 년이 지난 후입니다. 1932년 키안티 와인 컨소시엄은 코시모 3세 대공이 의도한 키안티 지명을 ‘키안티 클라시코’로 확정한 뒤 그 명칭의 불가침권을 검은 수탉 마크로 굳혔습니다. 대공 시절에는 토스카나 지역 밖에서 가짜 와인 시비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토스카나 내부에서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지요. 그동안 키안티라는 이름의 와인이 무려 6종류나 생겨나 1716년에 인증받은 원산지 자격을 위협받게 되자 나온 묘안이 키안티 뒤에 ‘원조’를 뜻하는 classico를 덧붙이는 것이었습니다.

키안티 와인 초창기에는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컨소시엄 회원만 검은 수탉 마크를 사용할 수 있었으나 2005년을 기점으로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생산자 전체로 마크 표시 부착 의무제가 확장되었습니다. 2013년에는 모델 교체도 있었는데~이전처럼 검은 수탉이지만, 민화적 분위기를 짙게 풍기던 모델에서 흑색 실루엣이 대담한 수탉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의 키안티 클라시코를 처음 개발한 와이너리는 1141년에 세워져 무려 87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바론 리카솔리(Barone Ricasoli)입니다. 바론 리카솔리 오너이던, 베티노 리카솔리(1809∼1880)는 산지오베제에 콜로리노와 카나이올로를 블렌딩하는 레시피를 최초로 개발한 사람입니다.

▲ (왼쪽부터) 바론 리카솔리(Barone Ricasoli),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사진=Ricasoli 1141>>
▲ 키안티 클라시코 위치 <사진=Chianti Classico Consortium>

지도의 중간에 빨갛게 표시된 지역이 바로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입니다. 클라시코(Classico)는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의 의미가 아니고 원조쯤의 의미입니다. 키안티 지방에 가장 중간에 좋은 땅에 자리 잡고 있지요.

▲ 법으로 정한 숙성 기간 <사진=Chianti Classico Consortium>

이건 법으로 정한 숙성 기간입니다. 참고로 와인라벨에 Riserva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 중에서 나라에서 정한 의미 있는 규정을 가지고 있는 곳은 이태리나 스페인 정도입니다.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와인교육을 한 분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고 우수한 사람을 꼽으라면 영주 국회의원이신 최교일 의원입니다. 서울중앙지검장때 저에게 개인교습을 한 일 년 받으셨는데, 얼마나 예습을 철저하게 해오는지 제가 수업 때마다 긴장했었지요?. 한 번은 이분과 내기를 했는데 피렌체와 플로렌스가 다른 도시인지 같은 도시인지가 문제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답은 '같다'입니다.
영어와 이태리어의 차이지요.

피렌체의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연인, 단체와 베아트리체의 이야기입니다.

'신곡'의 저자 단테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게 됩니다. 열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어느 세력가 집안의 축제에 참석한 단테는 그 집 딸인 아홉 살 소녀 베아트리체를 보고 한눈에 반했고, 이 만남은 단테의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9년이 지난 어느 날, 피렌체 시내를 흐르는 아르노 강에 놓인 폰테 베키오 다리를 건너던 단테는 성숙한 여성으로 성장한 베아트리체와 마주치게 되고. 베아트리체가 먼저 단테를 알아보고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으나 심장까지 얼어붙은 단테는 한 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습니다.

베아트리체는 24살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고 사랑하는 베아트리체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단테는 몇 년 후 마침내 대서사시 '신곡'을 완성하게 됩니다.

신곡에서 단테는 로마 시대의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부활절 전후 일주일 동안 사후세계로 순례를 떠납니다. 고통스러운 비명과 악취가 진동하는 연옥과, 참회와 회개 속에서 구원의 날을 기다리는 연옥을 통과한 단테는 천국의 입구에서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되고,. 그리고 그녀의 손에 이끌려 순례의 마지막 날 천국으로 날아오릅니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으로 치닫고 있을 때, 독일군은 퇴각하면서 미군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모든 다리를 폭파시켰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폰테 베키오 다리를 폭파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불멸의 연인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폰테 베키오가 지금까지 건재하게 된 이유입니다.

"두 인간 존재를 잇는 사랑의 다리는 파괴되지 않는다.
두 육체가 사라져도 그 다리는 그곳에 있다."

▲ 폰테 베키오 다리 <사진=@Justin Brown>

홀로, 멀리.. 여행을 떠나라.
그곳에서 가장 그리운 사람이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권기훈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의대를 다녔고, 와인의 매력에 빠져 오스트리아 국가공인 Dip.Sommelier자격을 취득하였다. 이후 영국 WSET, 프랑스 보르도 CAFA등 에서 공부하고 귀국. 마산대학교 교수, 국가인재원객원교수, 국제음료학회이사를 지냈으며, 청와대, 국립외교원, 기업, 방송 등에서 와인강좌를 진행하였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권기훈 a90049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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