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컴퓨터를 분실하였다가 되찾는 기간 기고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독자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양해를 구합니다."

말라가(Málaga)에서 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산중에 위치한 론다(Ronda)는 스페인을 찾는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협곡을 사이에 두고 발달한 중세 도시와 그 사이를 잇는 위용 넘치는 다리로 장관을 선사한다. 이 아름다운 도시의 이름에서 유래한 쎄라니아 데 론다(Serranía de Ronda), 직역해 론다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와이너리들이 씨에라스 데 말라가(D.O. Sierras de Málaga), 말라가 산맥의 와인을 만든다.
 

▲ 깍아지른 절벽 위에 만들어진 도시가 한 눈에 보이는 론다의 전경 <사진 = Web Oficial de Turismo de Andalucía>

또한 씨에라스 데 말라가는 기본적으로 말라가에서 생산되는 주정강화 와인이 아닌 일반 드라이 와인에 부여되는 원산지 인증이다. 이전 글에서는 말라가에서 전통적으로 생산되는 시럽 같이 달콤하고 알코올 함량이 높은 와인을 소개했는데 씨에라스 데 말라가는 와인의 당분 함량이 12gr/l를 넘을 경우 원산지 인정을 받을 수 없으며, 알코올 함량도 15.5도 이하여야 한다. 따라서, 지리적으로 볼 때 말라가(D.O. Málaga) 와인과 씨에라스 데 말라가(D.O. Sierras de Málaga) 와인의 생산지가 중복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전혀 다른 와인의 종류에 부여되는 원산지이다.

한편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는 화이트 품종의 경우, 뻬드로 히메네즈 (Pedro Ximénez), 모스까뗄 데 알레한드리아(Moscatel de Alejandría)와 같은 토착 품종은 물론 스페인 중서부에 위치한 와인 산지인 루에다 (Rueda)로 유명한 베르데호(Verdejo), 독일의 리슬링(Riesling) 등 다양한 품종을 폭 넓게 인정하고 있다. 레드 품종의 경우에도 안달루시아 지방 토착 품종인 로메(Romé)와 함께 대중적인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쉬라(Shyrah), 뗌쁘라니요(Tempranillo) 등은 물론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피노 누아(Pinot Noir)도 생산한다.

그래서 씨에라스 데 말라가 와인 중에는 다른 스페인 와인 산지에서는 만나기 힘든 독특하고 재밌는 와인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호르헤 오르도녜쓰(Jorge Ordóñez)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보따니(Botani)이다. 말라가에서 최초로 시도된 100% 모스까뗄 데 알레한드리아로 만들어진 드라이 와인 보따니는 보통 해당 품종으로 진득하고 달달한 주정강화 와인을 만들어 오던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에 신선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 호르헤 오르도녜쓰(Jorge Ordóñez) 와이너리에서 모스까뗄 데 알레한드리아(Moscatel de Alejandría)로 생산한 드라이 화이트 와인 보따니(Botani) <사진 = Bodegas Jorge Ordóñez & Co)

이름에서부터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을 떠오르게 만드는 보따니는 향수를 마신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시트러스(Citrus)계열의 향이 콧속을 짙게 파고든다. 잘 마른 노란 볏짚 색을 띄는 와인은 감귤 껍질 오일, 말린 레몬 등의 향과 함께 봄이면 안달루시아 (Andalucía) 전역에 만개하는 오렌지 꽃 내음이 가득한데, 그즈음 말라가의 청초한 새벽 공기를 닮은 듯도 하다.

반면, 지중해의 해변, 이글거리는 태양, 뜨겁고 건조한 여름으로 대변되는 말라가에서 오스트리아 출신 와인메이커인 마틴 키니나(Martin Kieninger)는 피노 누아를 생산한다. 론다의 산자락에 자리잡은 키니나 와이너리는 오스트리아 토착 품종과 다양한 레드 와인 품종으로 실험적이면서도 독특한 와인을 생산하면서 꾸준히 기아 페닌(Guía Peñin)*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아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 키니너(Kieninger) 와이너리 포도밭의 전경 <사진 = Bodegas Kieninger>

그가 생산하는 비나나(Vinana) 피노 누아 와인은 해발 고도 900미터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드는데 꼬세차(Cosecha)-수확연도에 따라 메를로를 블렌딩한 경우도 있고 알코올 함량이 14.5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2013년 와인의 경우에는 전반적으로 잘 익은 체리와 블랙 베리 향 뒤에 느껴지는 균형 잡힌 산도와 부드러운 타닌, 쌉싸름한 카카오, 다크 초콜릿을 연상시키는 맛이 긴 여운을 남긴다. 단, 연간 1,500병도 생산되지 않으니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 기아 페닌(Guía Peñin): 스페인과 전세계 와인에 대해 25년 이상 전문적인 와인 작가 및 저널리스트로 활동해온 호세 페닌(José Peñin)에 의해 구성된,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하고 포괄적인 와인가이드이다. 매년 스페인의 8,000여 종의 와인에 대한 시음 노트와 점수를 발간한다.
 

▲ 신재연 소믈리에

[칼럼니스트 소개] 대학 졸업 후 8년여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IE Business School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이후 Escuela Española de Cata 에서 Sommelier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스페인의 와인과 먹거리를 공부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일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신재연소믈리에  jane.jy.shin@gmail.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