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조태경] 연꽃 연(蓮,) 잎 엽(葉,) 빚을 양(釀) 자를 쓰는 연엽양은 연엽주, 연잎주로도 불린다. 이름만 들어도 어떤 술인지 알 수 있는 연잎주 대신 연엽양을 타이틀로 꼽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연엽주가 실린 최초의 문헌은 16세기 문헌 <주방문>이며 이후 <산림경제>, <온주법>, <증보산림경제> 등에 여러 번 등장하는데 오직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만 연엽양(蓮葉釀)으로 표기된 연잎주가 등장한다. 술 빚는 방법, 정확히 표현하자면 술을 발효시키는 방법이 유별나고 술의 맛과 향기가 독특하다.

방문(方文)에 따르면 연엽양 빚는 법은 이렇다. 먼저 청쾌한 늦여름 연잎이 무성한 연못가를 상상해야 한다. 정당한 장소도 물색해두고 근처로 가자. 일단 고두밥을 지어 식힌 후, 물과 누룩가루를 섞어 버무려둔다. 큰 연잎이 있는 못 한가운데로 가서 연잎에 술밑 일부를 덜어 얹고 싸서 볏짚으로 잘 묶어둔다. 무게가 나가는 연잎이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옆에 고정해 두는데 2~3일 이면 술이 익는다고 하였다.

술이 익었으면 싸놓은 연잎을 풀어 맛을 보는데 그 술이 달고 향기가 가득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당한 일조량과 선선한 바람이 부는 한여름에서 초가을까지의 날씨는 술이 익는 적당한 기온을 조성해주었을 것이다. 연꽃이 활짝 핀 연못가의 연잎주가 익고 있다니, 생각만 해도 황홀할 정도다. 그 맛이며 향이며 연엽양을 빚어보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물양 적은 술빚기에서 오는 고단함을 생각하니 선뜻 시도하기는 쉽지가 않다.
 

▲ 연엽양<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그래서 먼저 빚게 된 것이 연잎주다.

첫 연잎주는 송순주(송순: 솔잎의 순) 빚는 방법(밑술 죽, 덧술 고두밥)에 송순대신 연잎을 넣었다. 송순을 고두밥과 같이 쪄서 밑술과 버무리는 대신, 술독에 술밑(고두밥, 밑술, 누룩 버무린 것)을 앉힐 때 연잎 한 장을 조각내어 술밑과 연잎을 켜켜이 넣는 방법을 택했다. 30일쯤 지나 맛을 보았는데 쓴맛과 향이 너무 강했다. 아마도 고두밥에 비해 연잎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한다. 두 번째 빚은 연잎주는 연잎 한 장을 이등분하여 술독 바닥에 한 장만 깔고 술밑을 안쳐 발효시켰는데 처음의 연잎주보다 한결 쓴맛이 줄고 부드러웠다.

꽃, 잎 등의 부재료를 이용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술밑과 부재료를 같이 섞는 방법은 부재료의 향기가 가장 강하게 표출되는데 섞는 방법은 3가지로 나뉜다. 고두밥, 물, 누룩을 버무릴 때 부재료를 같이 넣어 버무리는 방법과 술독 바닥에 부재료 예를 들면, 꽃을 한줌 깔아주는 방법 그리고 꽃과 술밑을 켜켜이 안치는 방법이 있다. 이중에서도 재료를 버무릴 때 부재료를 같이 넣는 방법이 가장 향기, 맛 성분이 강할텐데, 대부분의 연잎주 빚는 방문에서 켜켜이 안치거나 바닥에 연잎을 깔아주는 방법을 택하는 것을 보면 연잎의 향이 다른 부재료에 비해 강하게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쯤 되면 연엽양을 빚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18세기 후반 문헌 <증보산림경제>의 연엽주는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연엽양과 발효방법이 유사하다. 먼저 찹쌀 8kg, 누룩 500g, 연잎 몇장, 볏집을 준비한다. 찹쌀 고두밥을 쪄서 차게 식힌 후에 누룩가루와 버무려 연잎에 적당히 싸고(연잎밥 크기보다 크면 좋다)볏집으로 묶는다. 항아리 바닥에 튼튼한 나뭇가지나 나무주걱을 십자로 깔로 이 위에 연잎밥을 차곡차곡 채워 담아 발효시킨다.
 

▲ 연엽양 빚는 모습

한달 후 쯤 술독을 열면 진한 연잎의 향기가 코를 자극하는데 이는 덖은 연잎차와는 차원이 다른 향기로 숲속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술독에서 짚으로 묶은 연잎밥을 꺼내면 바닥에 투명한 청주가 자박하게 고여 있다. 물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청주양은 1리터 정도나 될까.

일단 고인 청주를 따라내 한잔 마셔본다. 아침이슬이 촉촉이 맺힌 새벽녘 숲속을 거닐다 우연히 벌집을 발견하여 채취한 벌집의 한 조각을 입안에 넣어 녹여먹는 느낌이 든다. 동시에 불현 듯 떠오르는 건 ‘토카이 아수(Tokaji Aszu)', 꿀물처럼 단맛이 있기 전에 상쾌한 산미가 입안을 먼저 적시고 감미로운 단맛이 입안을 채우는 맛의 스펙트럼이 연엽양과 흡사하다. 전통주에도 이런 술이 있을 줄이야. 한방 얻어맞은 느낌이랄까..

토카이는 보트리티스 시네리아(Botrytis Cinerea)라는 곰팡이가 포도껍질에 먼저 펴서 내부로 침입해 수분을 증발시키는데 이 때문에 포도의 당도가 증가한다. 수확시기를 놓쳐 귀부병에 걸린 포도를 가지고 만든 와인이 헝가리 토카이 지역에서 나는 스위트 와인이 토카이다. 먼저 쭈글쭈글해진 포도알을 수확하여 일정기간 용기에 담아두면 바닥에 달콤한 포도엑기스가 고이기 시작하는데 이를 ‘에센시아(Essensia)'라고 한다. 에센시아가 들어가는 양에 따라 토카이 아수의 당도가 달라진다.

연엽양을 보자. 발효된 술덧이 연잎에 의해 자연적으로 필터링되어 연엽양 청주 엑기스가 얻어지는 것이 토카이 아수 에센시아가 얻어지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다. 발효 중에 또 필터링을 거쳐 술에 베는 연잎의 향기란 형용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술 한 모금에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연엽양을 언제 또 빚어볼 수 있을까?
 

▲ 조태경 전통주큐레이터

[칼럼니스트 소개] 전통주 소믈리에 조태경은 대학원에서 전통식문화와 전통음식을 공부했고 현재는 사)한국전통주연구소에 재직해 전통주를 배우며 관련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학원 재학 중에 사회적 기업과 슬로푸드 운동에 관심을 가진 것을 계기로 나눔과 공유할 수 있는 삶을 고민하고 있다.

2008년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인증 ‘마스터소믈리에자격’을 취득하였고 식음료에 관심을 가지고 바리스타 및 한식, 일식 등의 자격증도 이후 취득하였다. 2015 유네스코 지정 강릉단오제 신주빚기대회에서 ‘연화주’로 장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칼럼문의 조태경 전통주큐레이터 ebllin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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