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허수자] 칠곡의 신동양조장을 가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 처음에는 그냥 슥~~ 가서 보고왔고 정식 취재는 이번이 처음이다. 취재 요청 전화에 대하시는 것이 범상치 않은 것은, 아무날 아무시쯤 가도 될까요 하니 ‘그날은 집에 있으니 오소..’ 하는 대답. 환영도 겸사도 없고, 그냥 그날은 내 있으니 와서 볼 일 있으면 보고 가시던가...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 칠곡 신동양조장

약속한 시간이 되어 신동양조장을 찾았을 때는 비가 왠수같이 퍼붓고 있었고 양조장에 들어서니 윤기창 장인은 술 거르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런데 놀라울 손, 물론 앞의 두 양조장과는 규모가 다른 것은 알고 갔지만 직접 손으로 술을 거르고 있는 것. 어제 전화드리고 온 사람입니다... 하는데 "이 시골 양조장에 뭐 볼끼 있다고..." 하고 눈길 한 번 주고는 바로 다시 작업에 열중이다. 양조장 역사를 여쭈면 ‘거 밖에 걸린 거 함 보소. 꽤 됐지...’ 머 그런 식이다.

▲ 주류제조업 면허

살림집을 겸한 양조장을 훌쩍 둘러본다. 작업이 한창이니 안내해달라고도 못하겠고, 그냥 알아서 실례되지 않는 범위에서 살펴볼 밖에 도리가 없다. 듣던대로 쌀은 칠곡산 우리쌀, '전분당화효소제(국)'가 보여주듯이 입국 방식을 사용한 술빚기다.

쌀이 80%, 밀가루가 20%가 들어간다고 하고 아스파탐도 조금 들어간다고 한다. 라벨에 기록된 제원과는 조금 다르다. 어쨌거나 사장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 당연히 8:2가 맞을 것이다.

발효실의 발효탱크들이 인상적인 것은 어른 허리높이 정도 만큼 밖에 안 되는 높이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큰 양조장들이래봤자 하루 몇 천 병 정도, 좀 큰 맥주집에서 하룻밤 소비되는 생맥주양 정도밖에 술을 빚지 않지만 그래도 발효탱크는 2000리터나 3000리터 정도로, '술독에 빠지면' 죽을 수도 있는 사이즈가 된다. 그런데 여기는 사이즈도 아담하고 갯수도 적다.
 

▲ 술 거르기(좌측) 와 발효조(우측)

술을 거르는 작업도 전부 수작업. 이렇게 '다라이'에 받쳐놓고 손으로 뒤집고 눌러가며 직접 한다. 이 급수는 얼마나 할지, 거르고 난 후에 숙성은 얼마나 시킬지 등이 모두 장인의 감으로 결정된다. 작업은 고되지만 장인이 한땀한땀 눌러가면서 모든 것을 아날로그식으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옆에서 작업을 지켜보며 이것저것 묻는 말에 대답은 거의 단답형이다. 예의 이 시골 양조장에 뭐 볼끼 있다고...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묻는 말에만 짤막하게 대답한다. 유일하게 좀 긴 문장이 나오다가 만 얘기는

"원래 나이도 들고 돈도 안 되고, 고마하고 치워뿔라칸긴데 우째 알고 서울에서까지 와서 우리집 술이 제일 좋다고 달라카는데... 억지로..."

농담도 아니고 협박도 아니고 늙은이 푸념도 아니다. 정말로, 윤기창 장인이 이걸 '치워뿔면', 신동막걸리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랬었는데, 그 동안 1박2일을 비롯한 여러 티비 프로에도 나오고 서울에도 신동막걸리를 취급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아들 윤민호씨가 뒤를 잇고 있다. 이것으로 또 한 세대는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는 이 막걸리를 옥호로 걸고 영업을 하는 '이박사의 신동막걸리' 덕에 술이 많이 알려졌다. 필자도 그 덕에 이 술을 알게 되었다. 초기에는 매주 사장님(이박사)이 직접 칠곡으로 내려와서 서울까지 실어날랐다. 택배로 부쳐도 될 것이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 술의 특성과 관계 있을 것이다.
 

▲ 신동막걸리(좌측) 와 이박사의 신동막걸리 가게(우측)

사장님께 출고된 후 얼마만에 마시면 가장 좋냐고 여쭈니 돌아오는, 역시 단답형의, 대답은 "20시간"이다. 하루도 이틀도 아니고 딱 잘라 20시간. 그저 설렁설렁 대강 눈대중으로 손에 익은대로 일하는 것으로 보여도 이런 정확한 숫자가 답으로 돌아오니 조금 놀랐다고 할까.

어쨌든 이 정도면 택배로는 맞추지 못하는 시간이다. 아마도 타지로 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지역에서 소비할 것을 염두에 둔 시간인 듯. 하긴 나도 이 막걸리 여러 번 마셔보았지만 가장 맛있게 먹었던 것은 양조장 길 건너 ‘민아네 분식집’에서 칼국수 한 그릇 놓고 동치미 살얼음 뜨듯이 한기가 쨍한 신동막걸리 한 잔 마셨던 그것이었고, 서울 올라와서 먹은 것은 여러 장소, 여러 경우에 마셔봤지만 아무래도 그만은 못한 느낌이었다.

신선한 신동막걸리는 바나나향, 혹은 바닐라향이라고도 표현되는 향긋한 냄새와 부드럽고 담백한 질감이 일품이다. 전형적으로 신선할 때가 좋은 막걸리이다.

[칼럼니스트 소개] 허수자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했으며 영국 Lancaster University에서 Finance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을 살려 유라시아대륙을 누비며 술과 음식을 탐했다. 2010년 네이버 맛집 파워블로거, 2011,2012년 네이버 주류 파워블로거(emptyh.blog.me) 였으며 2011년부터 한주전문점 ‘세발자전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술에서 더 나아가 발효식품 전반으로 관심사를 넓히고 있으며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Ark of Gastronomy’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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