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헤레즈(Jerez)에서 시작해 반 시계 반향으로 스페인 본토를 훑고 올라가던 경로를 틀어 저 멀리 떨어진 까나리 군도(Islas Canarias)로 살짝 외도 해볼까 한다.

스페인 까나리 군도는 모로코(Morocco)의 남쪽에서 서사하라(Western Sahara)로 넘어가는 경계의 서쪽 해안으로부터 약 12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7개의 큰 섬을 꼽는데 크기 순으로 보자면 떼네리페(Tenerife), 후에르떼벤뚜라(Fuerteventura), 그란 까나리아(Gran Canaria), 란싸로떼(Lanzarote), 라 빨마(La Palma), 라 고메라(La Gomera), 엘 이에로(El Hierro)의 순서로 나열할 수 있다. 이곳은 적도에 가까운 아열대부터 겨울에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스페인의 최고봉 떼이데(Teide) 산까지 다양한 기후 조건을 만날 수 있어 작은 섬이 모인 지역이지만 대륙 못지않은 다양성을 보여주는 곳이라 일컬어진다.
 

▲ <지도 = http://mapa-de-espana.blogspot.com.es/>

이 중에서 란싸로떼는 섬들 중에서 가장 동쪽에 아프리카 대륙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무역풍을 타고 오는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받아내는 곳이다. 또한 18세기 초까지 활발한 화산 활동을 보여주던 곳이라 화산토가 지면을 두텁게 덮고 있기 때문에 농작물을 경작하기 어려운 악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악조건을 극복한 이곳 사람들의 끈기와 노고 덕분에 란싸로떼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포도밭 풍경을 가지게 되었다.

▲ 상공에서 내려다 본 란싸로떼의 포도밭 <사진 = Bodega Bermejo 제공>

란싸로떼의 기후를 보면 대서양의 해풍과 무역풍이 균형을 이루면서 온화하고 따뜻한 기온이 유지되어 아열대에 가깝다. 연 평균 약 20℃를 유지하며 가장 추운 1월과 8월의 평균 기온 차이가 약 7℃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나 일교차는 17℃ 이상 나기도 하고 강우량 측면에서는 연 강수량이 150mm 밖에 되지 않아 사막 기후의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봄과 여름에는 사하라에서 대서양을 향해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하면서 모래 먼지를 가득 실은 살(SAL: Saharan Air Layer)의 영향으로 기온이 45℃까지 올라가고 모래 폭풍이 발생하는 깔리마(Calima)가 나타나기도 한다.

토양의 경우, ‘1730년 9월 1일 띠만퐈야(Timanfaya)의 땅이 열렸다’고 문헌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까나리 군도 역사상 가장 크고 중요한 화산 폭발 기록이다. 이때 시작된 화산 활동은 6년간 지속되었고 용암과 화산재가 섬 전체를 뒤덮었다고 한다. 이후 화산재로 뒤덮인 대지는 물을 스폰지처럼 흡수해 물이 지표면을 흘러 바다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를 가져왔고 심토층 깊이 내려간 물이 저장되어 건조한 기후를 견딜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화산재로 이뤄진 표면의 토양층은 마그마에서 유래한 미네랄은 풍부하지만 유기물이 거의 없어 작물 재배에 부적합했기에 란싸로떼 사람들은 화산토 아래 유기질 토양을 찾아 구덩이를 만들어 포도를 심기 시작하였고, 이런 재배 방법이 란싸로떼만의 유일무이한 포도밭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 구덩이와 돌담 사이로 포도나무가 보이는 란싸로떼의 포도밭 <사진 = Bodega Bermejo 제공>

구덩이 중에 큰 구덩이는 깊이 4m 너비 6m에 이르기도 하는데, 이렇게 구덩이를 파는 또 다른 이유는 위에 설명한 깔리마로부터 포도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뜨거운 모래 바람에 포도나무 잎이 마르고 타 버릴 수 있기 때문에 구덩이에 밖에는 바람이 불어오는 동쪽을 향하여 작은 돌 무더기 담장을 쌓아 포도나무를 보호하기도 한다. 또한 부족한 강수량 때문에 한 방울의 물이 아쉬운 환경에서 밤사이 구덩이에 모인 이슬은 포도나무에 부족한 수분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 건조하고 척박한 검은 화산토로 이뤄진 포도밭의 모습 <사진 = El Consejo Regulador de la Denominación de Origen “LANZAROTE”>

이런 란싸로떼의 포도는 유럽 본토의 포도밭을 황폐화 시켰던 필록세라(Phylloxera)의 영향을 받지 않아 토착 포도 품종을 접목 없이 제 뿌리 그대로 재배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품종으로는 화이트의 경우, 말바시아 볼까니까(Malvasía Volcánica), 모스까뗄 데 알레한드리아(Moscatel de Alejandría), 비하리에고(Vijariego) 또는 디에고(Diego)라 불리는 포도 등이 유명하다. 말바시아와 모스까뗄의 경우 수확 시기를 늦춰 당도가 높은 포도를 이용해 달콤한 디저트 와인을 만들기도 하는데, 헤레즈의 주정강화 스윗 쉐리와는 달리 알코올 발효가 자연스럽게 끝난 뒤의 잔여 당분에서 오는 감미이기 때문에 단맛이 강하지 않고 은은하게 부드럽다.

레드의 경우 리스딴 네그로(Listán Negro) 또는 리스딴 프리에또(Listán Prieto)라 불리는 품종이 대표적인데, 이는 아메리카 대륙을 건너간 선교사들이 미사(Misa)에 쓰일 와인을 양조하기 위해 재배하면서 널리 확산되었기 때문에 미국 캘리포니아(California), 멕시코 캘리포니아 남부(Baja California), 페루 등지에서는 미션(Misión) 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칠레에서는 국가란 의미의 빠이스(País), 아르헨티나에서는 서인도 제도 사람이란 의미의 끄리오야(Criolla)등 별칭이 많다.
 

▲ 화산토에서 만들어지는 란싸로떼의 와인을 극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사진 = Bodega Bermejo 제공>

란싸로떼는 와이너리가 많지 않기도 하지만 그 중에 주목할 와이너리는 베르메호(Bodega Bermejo)이다. 수십 세기 동안 와이너리를 지켜온 베르메호 가문은 21세기에 들어서 활발한 생산을 벌이며 주목 받고 있는데 란싸로떼 고유의 떼루뇨(Terruño : 프랑스어 떼루아(Terroir)와 같은 의미로 와인이 만들어지는 전반적인 환경을 의미)를 지키면서 각 품종의 개성을 잘 살려 와인을 빚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개성 있는 와인의 인기 덕분인지, 연간 약 40만병을 생산하는데 출하 즉시 모두 판매가 완료되기 때문에 재고를 가지고 장기 숙성을 할 여유조차 없다고 한다.

그런데 와인을 마셔보면 왜 재고가 부족할 수 밖에 없는지 진심 어린 이해가 간다. 특히 필자가 시음해 본 리스딴 네그로 마쎄라씨온 까르보니카(Maceración Carbónica)의 경우, 카보닉 마세레이션(Carbonic Maceration)을 통해 과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낸 농밀한 붉은 과실향과 균형감 있는 산도 및 타닌도 좋았지만, 배럴 숙성을 전혀 하지 않은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오묘하게 느껴지는 훈연의 향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포도가 얼마나 화산토 가까이에서 그 모든 성분을 흡수하고 자랐는지 자연의 신비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말바시아 볼까니까 나뚜랄멘떼 둘쎄(Naturalmente Dulce)의 경우도 과하지 않은 부드러운 단맛에 잘 익은 파파야, 뭉그러진 사과 등의 과일 향에 더하는 훈연이 은근히 느껴지는데 달콤한 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렇게 독특하고 감미로우면서 우아한 디저트 와인에는 매혹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스페인 본토보다 아프리카에 가까운 검은 화산토에서 생산되는 란싸로떼 와인의 신비함.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 신재연 소믈리에

[칼럼니스트 소개] 대학 졸업 후 8년여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IE Business School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이후 Escuela Española de Cata 에서 Sommelier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스페인의 와인과 먹거리를 공부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일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신재연소믈리에  jane.jy.shin@gmail.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