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믈리에타임즈 | 김도영 기자] 2015년 첫해가 밝았다.

언제나 새해를 맞으며 ‘그래, 올해는 죽이는 한 해가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진다. 아마 작년 페이스북을 뒤져보면 같은 말이 적혀있을 것이 분명하다.

한때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멋있고 특별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그저 집에서 따뜻한 이불 덮고 연말 시상식 보는 게 가장 편하다는 것을.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닫는다. ‘마지막’에 의미부여를 하는 것보다 마음 비우고 일을 하는 게 가장 생산적이라는 사실을.

그래, 일이나 하자. 맥주를 마시며 맥주 이야기를 해보자.

   
▲ 국산 맥주 카스, 더 프리미어 오비, 하이트, 맥스, 클라우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다시 말하자면 국산 맥주는 맛이 없다. 물론 개인의 취향은 존중해줘야 한다. 맛이라는 것은 객관적일 수 없다. 각자가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양보할 수 없는 사실은 국산 맥주는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맥주에 조금만 관심 있다면 알겠지만, 맥주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수백 수천 가지의 맥주가 있는데 국산 맥주는 대부분이 ‘페일라거’에 한정되어 있다. 이마저도 개성이 거세되어있다.

오죽했으면 2012년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말했을까. 애주가들은 그렇다 치고 주류회사에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국산 맥주가 맛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료를 너무 아낀다. 맥주는 보통 물, 맥아, 효모, 홉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맥아(싹이 난 보리)와 홉이 맥주의 맛을 크게 좌우한다. 그런데 국내 주세법에서는 맥아 함량이 10%만 넘어도 맥주로 인정한다. 그래서 비싼 맥아 대신 옥수수와 같은 전분을 섞어 만든다. 이러니 당연히 보리의 구수한 맛 대신 다소 밍밍한 맥주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밍밍한 맥주는 탄산을 많이 집어넣어 ‘청량감’ 있는 맥주로 포장된다. 우리는 밍밍하고 탄산이 잔뜩 들어간 맥주를 마시며 “맥주는 역시 이 맛이지!”라고 외친다. 싸구려에 길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맛은 지극히 주관적이니 이런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비하할 의도는 없다는 것을 알아두시길.

맥주의 메카 독일은 ‘맥주 순수령’에 의해 100% 맥아만을 사용해 맥주를 만들어야 했고, 아시아 맥주 강자 일본은 주세법상 맥아를 67% 이상을 써야 ‘맥주’라고 표기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은 맥아 함량이 낮은 맥주는 ‘발포주’라고 따로 구분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맥주에 희망은 없을까. 대답은 ‘NO’이다. 국산 맥주도 물 밀 듯이 들어오는 해외 맥주와 하우스 비어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그리고 ‘북한 맥주보다 맛없다’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많은 연구가 있었다.

맛과 다양성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맛으로는 ‘올 몰트 비어(All Malt Beer)’ 3종이 다양성으로는 ‘에일 4종’을 꼽을 수 있다. (‘에일 4종’은 2부에서 다루도록 하자)

   
▲ 흔한 퇴근길 쇼핑 장바구니

OB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주류 국내 3대 주류회사에는 다행히(?) 맥아 함량 100%의 ‘올 몰트 비어’가 있다. OB맥주에는 더 프리미어 오비, 하이트진로에는 맥스(MAX), 롯데주류에는 클라우드가 각각 맥아의 함량이 100%인 맥주다. 독일의 맥주 순수령에도 일본의 주세법에도 부합하는 당당한 맥주다.

‘올 몰트 비어’ 3종 중 가장 형은 하이트진로의 ‘맥스’이다. 2002년 ‘프라임’으로 시작한 하이트진로의 ‘올 몰트 비어’는 2006년 ‘맥스’로 새롭게 출시되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두 번째는 OB맥주의 ‘더 프리미어 오비’로 2006년 ‘OB골든라거’로 출시되었다가 최근 이름을 달리하며 리뉴얼했다.

마지막은 롯데주류의 ‘클라우드’이다. 롯데주류는 오랜 기간 맥주사업에 투자하며 지난해 4월 ‘클라우드’를 출시했다.

그렇다면 이제 맛을 볼 차례가 왔다.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다. 연말연시 데이트를 포기하고 일하는 중이다.

   
▲ 국산 맥주와 형제의 나라 터키 맥주 에페스 전용잔

시음에 사용할 잔은 국산 맥주 3사(社) 중 특정 브랜드를 편애할 수 없으니 형제의 나라 터키의 대표 맥주 브랜드 에페스의 전용잔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 하이트진로 맥스

전통강호, 하이트진로 ‘맥스(MAX)’

알코올 함량 4.5%로 호주산 맥아와 미국산 홉이 사용됐다. 맥스, 클라우드, 더 프리미어 OB 중 가장 무난한 맥주를 고르자면 맥스를 꼽을 수 있다. 셋 중 알코올 함량도 가장 낮고 치우침이 없다. 좋게 보면 맥아와 홉의 밸런스가 잘 맞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특색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맥아의 비율이 낮은 다른 맥주들에 비하면 풍부한 향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지만 ‘올 몰트 비어’ 삼 형제 중에는 가장 무난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맥주 소비층은 ‘홉’을 싫어한다. 홉 특유의 ‘스파이시’를 그저 ‘쓴맛’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연한 맥주에 길들어져 있기 때문에 ‘쓴맛’은 맛없는 맥주로 인식한다. 하지만 맥주 마니아층은 정반대의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하이트진로에서 생각한 것이 ‘계절 한정판’이다. 하이트 진로는 매년 ‘스페셜 홉’이라는 이름으로 영국, 독일, 체코 등 다양한 유명 홉을 이용한 맥스의 스페셜 한정판을 생산하여 판매한다. 이렇게 대중과 마니아를 모두 만족시키는 마케팅을 통해 ‘올 몰트 비어’ 시장의 1위 자리를 굳건히 했다.

   
▲ 롯데주류 클라우드

신흥강자, 롯데주류 ‘클라우드’

알코올 함량 5%로 호주, 캐나다, 독일산 맥아와 독일 체코산 홉이 사용됐다. 클라우드는 신흥강자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의 숙원사업이기도 했던 맥주 사업은 오랜 연구 끝에 ‘클라우드’를 낳았다. 당초 ‘에일 맥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베일을 벗겨보니 라거가 나왔다. 클라우드는 맥스보다는 더 프리미어 OB에 가깝다. 맥스와는 뒷맛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맥스의 뒷맛이 단향을 남기며 끝난다면 클라우드는 스파이시한 뒷맛이 두드러진다. 클라우드는 독일의 허스부르크(Hersbrucker)홉과 체코산 사츠(Saaz)홉을 조합했다. 특히 체코산 사츠홉은 허브향과 스파이시함이 특징이다. 더불어 발효 원액에 물을 추가로 타지 않는 방식인 오리지널 그래비티 공법을 이용하여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클라우드는 올해 신흥 강자로 떠오르며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 OB맥주 더 프리미어 OB

급격한 변화, OB맥주 ‘더 프리미어 오비’

알코올 함량 5.2%로 호주, 캐나다, 영국산 맥아와 독일산 홉이 사용됐다. ‘필스너’라는 이름답게 홉이 비교적 강하게 느껴진다. 맥아와 홉의 특징을 굉장히 단순화해서 설명하자면 맥아는 구수함을 홉은 쓰고 신 맛을 나타낸다. ‘필스너’는 체코 필젠 지역에서 시작된 맥주의 종류로 홉의 쓰고 신맛이 좀 더 강조되어 있다. ‘더 프리미어 오비’와 ‘OB 골든라거’와의 가장 큰 차이이기도 하다. OB맥주는 지난해 ‘올 몰트 비어’ 시장에서 점유율 16%를 차지했으나 올해 4월 롯데주류 클라우드가 출시된 이후 3%까지 추락했다. 이에 OB맥주는 이달 OB 골든라거의 생산을 중단하고 더 프리미어 오비를 출시했다. 기존 OB 골든라거보다 숙성기간을 3배 늘려 만들어 향이 깊다. 맥아의 구수함이 처음에 느껴지면서 중반에는 플로랄(Floral) 향이 조금 느껴지며 뒷맛은 홉의 새콤함이 잘 표현됐다.

국산 ‘올 몰트 비어’를 대표하는 3가지 맥주를 맛봤다. 각 맥주들의 거창한 홍보 문구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의 ‘올 몰트 비어’도 나쁘지 않다. 무작정 한국 맥주는 해외 맥주보다 맛없다고 치부할 것도, 그저 청량감에 마시거나 소주 섞는 용도 정도로만 사용할 것도 없다.

다만 한국 맥주도 맛과 다양성 측면에서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다음에는 ‘에일 4종’을 통해 ‘다양성’을 살펴보자.

국산맥주 전쟁 / 사진 = SSTV 정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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