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재교수의 술과 한시] <2> 술집 아가씨의 자존심

동한(東漢)의 신연년(辛延年)이 쓴 <우림랑(羽林郞)>
승인2015.12.07 14:59:56

술집 아가씨의 자존심

옛날 곽장군 댁 하인 중에
풍자도라는 이가 있었지.

장군의 권세를 믿고
술집의 북방 아가씨를 조롱했지.

북방 아가씨는 15살
봄에 혼자 술집을 보고 있었지.
옷자락 긴 치마에 허리띠 매고
소매 넓고 짝 맞춰 수놓은 저고리 입었지.

머리에는 남전의 옥으로 만든 장식 꽂고
귀 뒤에는 대진국(大秦國)의 진주를 장식했지.
양쪽으로 쪽진 머리 얼마나 고상하고
아름다운지
확실히 세상에 비할 데가 없었지.

쪽진 머리 한 쪽은 오백만 냥이고
두 쪽을 합치면 천만 냥이 넘었지.
뜻밖에 금오 나리가
멋지게 우리 집에 찾아왔지.

은 안장이 얼마나 눈부시던지!
푸른 깃털 덮개 얹은 수레가 집 앞에서
머뭇거렸지.
내게 다가와 청주를 달라고 하기에
옥병에 담아 끈으로 묶어 주었지.

좋은 안주 달라고 하기에
금 쟁반에 잉어회 썰어 주었지.
내게 청동 거울 주면서
내 붉은 치맛자락에 묶어 주더군.

치맛자락 찢어지는 건 아깝지 않아.
하지만 어찌 천한 몸을 함부로 굴린다는
욕을 먹으랴!
남자는 후처를 사랑하고
여자는 이전의 남편을 중시하지요.

인생에 새 사람과 옛 사람이 있다지만
신분의 높낮이는 넘어서지 않는 법이지요.
금오 나리, 고맙긴 하지만
짝사랑으로 괜히 마음만 쓰셨네요!

 

昔有霍家奴, 姓馮名子都.

依倚將軍勢, 調笑酒家胡.

胡姬年十五, 春日獨當壚.

長裾連理帶, 廣袖合歡襦.

頭上藍田玉, 耳後大秦珠.

兩鬟何窕窕, 一世良所無.

一鬟五百萬, 兩鬟千萬餘.

不意金吾子, 娉婷過我廬.

銀鞍何煜爚, 翠蓋空踟蹰.

就我求淸酒, 絲繩提玉壺.

就我求珍肴, 金盤鱠鯉魚.

貽我靑銅鏡, 結我紅羅裾.

不惜紅羅裂, 何論輕賤軀.

男兒愛後婦, 女子重前夫.

人生有新故, 貴賤不相踰.

多謝金吾子, 私愛徒區區.

이것은 동한(東漢)의 신연년(辛延年: ?~?)이 쓴 〈우림랑(羽林郞)〉으로, 한 편의 짤막한 연극 장면을 보는 듯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우림(羽林)은 대개 황제의 처소를 호위하고 시중을 드는 등의 임무를 담당하는 관청이며, 거기에 소속된 무관을 흔히 우림랑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냥 한(漢)나라 때의 악부(樂府)라는 관청에서 수집한 민간 노래의 제목 가운데 하나일 뿐이어서, 제목의 뜻 자체는 노래의 내용과 별로 긴밀한 관계가 없다. 물론 원래의 노래는 제목과 관련이 있겠지만, 신연년은 옛 제목에 새로운 내용을 담아 교묘하게 당시의 상황을 풍자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면 감칠맛이 느껴진다.

처음 네 구절은 하나의 이야기처럼 엮어진 이 작품 전체의 내용을 개괄하고 있다. 첫 구절에 언급된 곽장군은 원래 서한(西漢) 때에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을 지낸 곽광(霍光: ?~기원전 68)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신연년이 살던 시대의 어느 장군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한서(漢書)》에 수록된 곽광의 전기에 따르면, 둘째 구절에 언급된 풍자도(馮子都)는 곽광의 하인이자 동성애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이었다. 이런 두 가지 상황을 종합하여 후세의 연구자들은 신연년이 풍자하고 있는 대상이 동한의 대장군으로 안풍후(安豊侯)에 봉해진 두융(竇融: 기원전 16~서기 62)의 아우 두경(竇景: ?~?),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하인이거나 수하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 증거로는 대개 《후한서(後漢書)》에 수록된 두융의 전기에서 언급된 두경에 관한 설명이다.

두경은 집금오(執金吾)가 되고 그의 아우 두양(竇瓖)은 광록훈(光祿勛)이 되어서 권세가 드높아 경사를 진동했다. 그들 모두 교만하고 방종했는데 그 가운데 두경은 더욱 심했고, 노비나 문객(門客), 호위병들이 그 권세를 믿고 백성들을 무시하면서 재물을 강탈하고 죄인들을 착취하고 남의 부녀자를 납치하여 제 아낙으로 삼았다. 이에 장사꾼들은 문을 걸어 닫고 마치 강도나 원수를 피하듯이 그들을 피했다. 담당 관리도 두려워하고 힘이 없어서 아무도 감히 상부에 보고하지 못했다.

 

竇景爲執金吾, 瓖光祿勛,
權貴顯赫, 轟動京城.

雖俱驕縱, 景爲尤甚,
奴客緹騎, 倚倚形勢.

欺凌小人, 強奪財貨,
榨取罪人, 妻略婦女.

商賈閉塞, 如避寇仇.
有司畏懦, 莫敢舉奏.

이와 같은 두경과 그 하인, 문객, 호위병들의 모습은 〈우림랑〉에 묘사된 ‘금오 나리[金吾子]’보다 더 심하지만, “장군의 권세를 믿고” 안하문인으로 설치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다. 게다가 두경이 ‘집금오(執金吾)’가 되었으니, 노래에 등장하는 ‘금오 나리’의 상관이 바로 그일 것이라고 쉽게 연상할 수 있다. ‘금오(金吾)’ 또는 ‘집금오’는 황제와 대신의 경호 및 의장(儀仗)을 담당하고 경사(京師)를 순찰하며 치안을 담당하던 무관(武官)의 관청이었으니 그 위세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대개 동한 무렵에 집금오 휘하에는 200명의 호위병[緹騎]들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제16구에서 ‘금오 나리’의 몸동작을 ‘멋지게[娉婷]’라고 묘사한 부분이다. 대개 이 어휘가 여자의 자태를 묘사할 때 쓰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금오 나리’ 또한 자신의 상관인 ‘장군’과 외설적인 관계를 맺고 있을 수도 있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제5구부터는 10구절에 걸쳐서 ‘북방 아가씨’의 미모와 화려한 치장을 묘사한다. 방년(芳年) 15살의 미녀는 귀한 남전(藍田)의 옥과 대진국(大秦國)──옛날 중국에서 로마 제국 및 근동(近東) 지역을 일컫는 호칭──의 수입 명품 진주로 치장할 만큼 아름답고 부유하고 화려하지만, “세상에 비할 데가 없는” 것은 북방 이민족인 그녀의 빼어난 미모뿐만 아니라 순수하지만 도도한 자존심이라는 것이 은근히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묘사가 끝난 후, 제15구부터는 화자가 북방 아가씨로 바뀌어 1인칭 시점에서 ‘금오 나리’의 파렴치한 작태를 서술하고 있다. 은 안장을 얹은 말과 푸른 깃털로 장식한 덮개를 얹은 수레는 그의 호사로운 행차를 짤막하면서도 확실하게 묘사했다. 그녀에게 ‘다가와[就]’ 값비싼 청주와 진귀한 안주를 주문하는 허세에는 이미 불순한 의도가 담겨 있으며, 부부나 서로 사랑하는 남녀 간의 관계를 상징하는 ‘청동거울’─옛날 부부나 연인들은 헤어질 때 거울을 쪼개어 나눠 가진 채 다시 합칠 날을 기다렸다고 하니─을 붉은 치맛자락에 ‘묶어[結]’ 주는 데에 이르면 이미 공공연한 희롱에 가까워진다. 게다가 ‘묶어’ 준다는 동사는 남녀의 결합(結合)을 암시하기도 하니, 자존심 강한 북방 아가씨의 입장에서는 그 뻔뻔함이 치가 떨릴 지경이었을 터이다.

이에 마지막 여덟 구절에서 그녀는 부드러움과 고아함을 안에서 지탱해주던 강인한 자존심을 이끌어낸다. 치맛자락 찢어지는 것은 아깝지 않다는 말은 그녀가 청동거울을 잡아서 단호하게 떼어내는 바람에 붉은 비단으로 만든 비싼 치맛자락이 찢어졌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미천한 신분이지만 자신에게는 이미 마음을 준 남자가 있다는 사실과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변함없음을 확인해준다. 이것은 역시 한나라 때 악부에서 수집한 민가(民歌) 가운데 하나인 〈맥상상(陌上桑)〉에서 여주인공 진나부(秦羅敷)가 자신을 유혹하려는 관리에게, “나리께는 당연히 부인이 계실 테고, 저도 물론 남편이 있지요.[使君自有婦, 羅敷自有夫]”라고 했던 것과 상통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이는 15살의 아가씨가 벌써 결혼을 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시의 사회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이 말 자체가 ‘금오 나리’의 수작을 거부하기 위한 명분으로 제시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신분의 높낮이는 넘어서지 않는 법”이라는 말은 또한 미천한 자신과 잘난 ‘금오 나리’가 애초부터 어울리는 상대가 아니라는 확실한 선 긋기이기도 하다. 또한 전혀 반대의 측면에서 이 구절은 장군 가문의 하인과 술집 아가씨 사이의 신분적 차이라는 게 어디 있기에 그렇게 잘난 행세를 하느냐는 조롱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잘난 척하는 ‘금오 나리’는 사실 비천한 존재이고, 술집에서 술이나 팔지만 나는 자존심이 굳건한 고귀한 몸이라는 뜻인 셈이다. 어쨌든 이런 불쾌한 기분에도 그녀는 “고맙기는 하다[多謝]”라는 정중한 인사로 유연하게 상황을 마무리한다. 결연히 거울을 떼어내던 행동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어딘가 조롱하는 듯한 어감이지만 예의를 잃지 않고 있으니, 노래에서 끝까지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그 잘나고 무례한 ‘금오 나리’는 결국 머쓱해져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푸른 기와집’이나 권력층을 끌어들여 이런저런 사기를 벌이거나 불공정한 이득을 챙기는 범죄자와 부패한 하급 공무원들, 대기업과 관련된 비리 등은 오늘날도 여전히 ‘인기’ 있고 발표 빈도도 높은 뉴스 소재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조직과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한 이런 일들은 이후로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인 한 그런 현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씁쓸한 예언을 거의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개인의 자존을 중시하고 사회적 정의를 추구한다. 그런 병폐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최소화’할 수는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아직은 대다수일 거라고 믿고 싶은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노래의 형식을 빌려서 시대의 병폐를 고발하거나 풍자하는 고대 중국의 전통적인 ‘사시(史詩)’에 선구적인 모델이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훗날 ‘시성(詩聖)’ 두보(杜甫)도 ‘안사의 난[安史之亂]’을 전후로 한 시대의 참상과 관리들의 부패를 고발한 걸작으로 꼽히는 ‘삼리삼별(三吏三別)’을 쓰면서 이 작품과 유사한 방식을 채용했고, 그 후의 백거이(白居易) 등이 썼던 ‘신악부(新樂府)’ 또한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 백운재 교수

[칼럼니스트 소개] 백운재(필명)교수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1999)를 취득했으며 현재 인제대학교 중국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하늘을 나는 수레(2003), 한시에서 배우는 마음경영(2010), 전통시기 중국의 서사론(2004)등의 저서와 두보, 이하 등의 중국 시와 베이징(1997), 서유기(2004), 홍루몽(2012), 유림외사(2009), 양주화방록(2010)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칼럼관련문의 백운재 peking00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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