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환 밥소믈리에

[칼럼니스트 박성환] 모두가 바쁜 연말 필자 역시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달 [수요미식회]라는 TV프로그램에서 밥을 주제로 방송 프로그램의 요청으로 자문을 담당했다. 지금까지 방송을 하다 보면 많은 내용들이 편집되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전달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던 적이 많았었지만, 이번 방송에서는 맛있는 밥에 대해서, 문닫기 전에 가야 할 밥 식당 등의 대부분의 내용이 다 전달되어 정확하고 좋은 방송이 되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짧은 방송이라는 시간적 한계 때문에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조금 더 준비했다.
 

▲ tvN 수요미식회 방송화면 <사진=tvN 캡처>

과연 맛있는 밥이란 어떤 밥일까?

밥이란 쌀, 불, 물로 이루어지는 매우 단순한 구성과 조리법에 의해 만들어지는 음식이지만,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요소들이 밥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럼, 우선 맛있는 밥이란 어떤 밥인지에 대해서 간단히 정의해보면 이렇다.

색이 하얗고, 윤기가 흐르고, 거의 무미에 가깝지만, 은은한 단맛과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혀에서의 촉감은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씹었을 때 찰기가 있고 탄력이 있다.” 라고 할 수 있다. 뭔가 알 것 같은데 좀 애매모호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에 좀 더 구체적으로 오감으로 세분화해서 설명을 해 보겠다.

1. 시각(외관) - 밥의 색상, 윤기나 밥알의 형태로써 하얗고, 윤기가 나야 한다. 약간의 은빛이 돈다고도 한다. 그리고 밥알 하나하나가 서 있는 듯한 모양에 밥알의 크기가 가지런하면 밥맛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2. 청각 - 씹을 때의 소리, (정말 맛있는 밥은 씹을 때 거의 소리가 안 난다. 개인 적으로 맛있게 뜨거운 밥을 입에 넣을 때 입 안에서 호호 부는 소리가 맛있는 밥맛을 연상시키는 소리가 아닌가 싶다)

3. 후각(향기) - 밥의 향기 (밥 냄새)는 밥맛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밥을 입안에 넣기 직전의 향기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4. 미각(맛) - 혀에서 느끼는 감칠맛으로 맛이 약하여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있지만, 정말 맛있는 밥은 넣자마자 은은한 단맛이 나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밥을 30번 씹으면 단맛이 난다고 열심히 씹었던 기억이 있긴 한데, 정말 잘 지어진 밥은 한 번만 씹어도 단맛이 나는 걸 느낄 수 있다.)

5. 촉각(촉감, 텍스처) - 밥을 입안에 넣었을 때의 혀의 감촉, 찰진 정도, 단단한 정도 등인 밥의 물리적 특성도 밥맛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온도가 추가된다.

밥은 너무나도 단순하기에 이런 것들을 느낄 겨를 없이 다들 먹겠지만, 이런 것들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밥을 먹어본다면 정말 맛있는 밥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쌀로 지은 밥이 자기 입맛에 맞는 지 찾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맛있는 밥이란 어떤 것인지 각 항목별로 설명했는데,

그럼 맛있는 밥을 하기 위한 조건은 또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한 조건으로 쌀이 50%, 밥 짓기가 50% 라고 하지만, 이 단순한 쌀 하나만으로도 맛있는 밥이 되기 위한 것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너무나도 많고, 이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한다면 맛있는 밥이 되기 어렵게 된다.

그럼 밥맛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1. 품종
2. 산지 (토질, 토양)
3. 기후 (온도, 일조량 등)
4. 재배방법 (재배시기, 시비방법 등)
5. 수확, 탈곡 (기계화로 인산 손상 및 혼입)
6. 건조
7. 저장
8. 도정
9. 밥솥의 종료 (가마솥, 냄비, 전기, 압력솥 등)
10. 세척 (불림까지)
11. 취반, 보관(화력 조절, 뜸들이기 등)

이 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만 골라 본 것이다. 이 내용들을 다시 천천히 살펴보면 소비자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다.  기후 등의 자연적인 환경, 농민의 재배 관리 기술, RPC의 도정과 유통관리 등이다. 그렇다 보니 최종 소비자는 최소한 도정일을 꼼꼼하게 살피고, 쌀의 보관 및 취반에 신경을 더 써야만 맛있는 밥을 먹을 수가 있다.

잠깐 쉬어가는 이야기로 중국 청나라 시대의 장영이란 학자는 그의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設) 에서 “조선 사람들은 밥을 잘 짓는다. 밥알이 윤기가 있고, 부드러우며 향긋하고 고루 익어 기름지다. 밥을 지을 때는 불을 약하게 하고 물을 적게 부어야 한다.” 라고 했다. 조선의 밥맛과 조선사람들의 밥 짓기 기술에 대해 칭찬했다.

그랬던 민족이었는데 이제는 어떠한가, 최근 쿡방의 열풍으로 요리에 많은 관심이 생겨나는 것은 매우 흡족할 만한 일이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밥에는 관심이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이런 밥들이 맛있는 밥이라고 보통 이야기 하지만, 필자는 개인의 주관적인 입맛을 존중한다. 아무리 밥이 위와 같다고 해도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아닌 것이다.  이런 맛있는 밥을 먹어 보게 된다면 그 생각을 바뀔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게 밥맛인데, 좀 더 간편하고 알기 쉽게 100점 만점에 90점 이렇게 점수로 알려주면 참 편하겠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가? 와인을 좋아한다면 미국의 유명 와인 평론가인 ‘로버트 파커’라는 이름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로버트 파커 점수 95점 와인, 이런 식으로 숫자가 와인에 적혀있으니 와인을 잘 모르는 소비자에게는 와인을 구입할 수 있는 척도가 되어주고, 판매자에게는 마케팅 셀링 포인트가 되어준다.

밥에는 이렇게 점수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일까?

밥은 로버트 파커보다 더 정확한 밥맛을 측정해 주는 장비가 있다. 일본 토요라이스나 사타케 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식미측정기’라는 측정기가 있다.
 

▲ 사타케 취반식미기(좌측)와 토요 미도미터(우측) <사진=Nisshoku http://www.komeshou.jp/토요라이스 http://www.toyo-rice.jp/>

데스크 탑 컴퓨터 정도 크기의 측정기인데 그 판매가는 웬만한 중형 수입차보다 비싸다. 그러다 보니 작은 회사나 개인은 구입할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측정 원리는 근적외선과 가시광선을 밥에 투과하여 밥의 맛을 측정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전자코와 전자혀도 있다.

‘반유십이합설’에는 밥을 맛있게 먹는 12가지의 조건이 나와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첫 번째가 쌀, 두 번째는 불 조절, 세 번째부터 여덟 번째까지는 고기, 채소, 국 등의 반찬들이었고, 아홉 번째는 시간, 열 번째는 밥을 담은 그릇, 열한 번째는 장소, 가장 중요한 열 두번째가 짝, 즉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었다.

전문가들이 다 밥맛에 대한 의견이 달랐던 것은 이렇듯 밥맛이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좋은 곳에서 정성껏 담아내어 먹는 행복한 기억이 되어야만 뇌리에 남는 맛있는 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릴 적 행복했던 시절 어머니께서 해 주셨던 밥이 제일 맛있다고 느꼈었기에 그와 유사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밥을 맛있다고 하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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