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훈의 와인 스토리텔링] 아르마니 vs 베르사체, 그리고 와인

우리 와인 애호가들이 취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좋은 것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승인2016.12.05 17:19:03
▲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 중에서... <사진=네이버 영화>

화려한 파티장.

아르마니 정장을 격조 있게 차려입는 쥴리앙(리차드 기어)이 비버리 힐즈의 고급 호텔 파티장으로 들어선다. 명품 드레스로 맘껏 멋을 낸 여인들은 샴페인 잔을 들고 파티장을 유영하듯 거닐고 있다. 신사는 곧 대담한 컬러의 드레스의 옆을 커다란 옷핀으로 길게 연결하고 관능적인 보디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베르사체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로렌 휴튼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지적인 남자도 시각적인 유혹과 자극에는 매우 취약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다.

화려하고 매력적인 로렌 휴튼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줄리앙은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밤새 남자의 뇌리 속에는 그녀와 왈츠를 추는 동안 마주친 한 여인이 자꾸 떠오른다. 목선이 올라오는 단아하고 섬세한 장식을 한 아르마니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다.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를 약간 각색한 장면이다.

와인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를 꼽으라면 Wine Spectator 와 로버트 파커 주니어가 운영하는 Wine Advocate 다. 전 세계 와인업자들은 이 두 매체의 와인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보르도의 와인 생산자들은 파커 점수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출시를 앞둔 와인의 가격을 책정하지 않을 정도이다.

두 매체에 속한 와인 평론가들은 하루에도 어마어마한 수의 와인을 시음하며 평가 기록을 남긴다.

이들이 고평가한 와인들의 시음기를 보거나 혹은 직접 마셔보면 공통점이 있다. 레드와인의 경우 컬러가 가장 짙고 오크향이 풍부하고 진한 풍미의 와인들이다.

많은 수의 와인을 시음하는 방법 중에는 원격측정법이라는 것이 있다.

와인을 시음해 나가면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되는 와인은 발견하면 이 와인을 기준점으로 삼아 다른 와인을 평가하는 것이다.

저 역시 시음회에 가면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와인을 발견하면 이 와인을 기준 삼아 다른 와인을 상대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와인들이 대부분 강력한 매력을 풍기는 베르사체류의 와인들이다.

아르마니 스타일의 와인은 강력한 인상을 주기가 힘들다.
 

▲ Carla Bruni <사진=yourperfectmistakes.tumblr.com>

1997년,
유럽 최고의 와인 전문가들이 세계 최고의 샤르도네를 가려내기 위해서 모였다.

이 시음회의 뒷배경에는 천박한 신세계 쪽 와인들이 시장을 지배하는 현상을 막아보려고 하는 프랑스 측의 저의가 숨어있었다.

총 27종의 샤르도네 종 부르고뉴에서 생산된 샤르도네가 70%고 신세계 쪽 나라들은 겨우 한 가지씩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의외의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했다.

결과는?
미국의 로버트 몬다비 샤르도네 리져브 었다.
2위는 Domaine Comtes Lafon의 Meursault Chames였다.

두 와인은 진하고 풀 보디이고 바닐라 향이 강조되는 새 오크통에서 숙성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뉴욕에서 미국인으로 심사단을 구성해서 연 시음회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견고하고 오랜 숙성이 필요한, 미네랄 풍미가 강한 와인들은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영향력 있는 평가자들이 시장 수요를 만들어내고 와인 애호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거부할 수도 부인할 수도 없다.

이들 전문가들은 미술관의 큐레이터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냥 물방울 그림을 다이아몬드 물방울 작품으로 바꾸는 역할도 큐레이터의 힘이다.

큐레이터가 평가한 미술작품이나 파커의 고득점 와인을 구매한 애호가들은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나는 결혼이 늦은 편이었다.

36세에 결혼을 했다. 참한 한국 규수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방학이면 한국을 방문해서 맞선을 봤는데 한 백 번쯤 본 것 같다.

대단히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와인 시음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원격측정법이다.
몇 개의 기준을 만들어서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불가피한 방식이었지만 두 달 만에 상대를 결정했다. 그 방식이 옳은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살아가면서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개성은 무뎌지고, 차별성은 없어지고, 다양성은 사라지고 있다.

화려한 과일향, 강력하고 진한 풍미, 짙은 색깔에 밀려 다양성, 섬세함, 우아하게 진화하는 숙성 잠재력의 와인들은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화려한 베르사체에 우아한 아르마니는 설자리가 없다. 제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명품은 아르마니이다.

문화는 그 시대의 가치를 반영한다.

수백 년 동안, 음악과 와인이 인류에게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은 좋다, 나쁘다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가치와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와인에는 맛과 향의 탁월함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한계가 무한할 것 같은 감동과 느낌이다.

명품이라면 시대를 관통하는 특별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두가 동의하는 보편성은 모든 분야에서 존재한다.

우리 와인 애호가들이 취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좋은 것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음악과 와인을 즐기며 행복감을 누리는 개인과 시대의 취향을 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 권기훈 교수

[칼럼니스트 소개] 권기훈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의대를 다녔고, 와인의 매력에 빠져 오스트리아 국가공인 Dip.Sommelier자격을 취득하였다. 이후 영국 WSET, 프랑스 보르도 CAFA등 에서 공부하고 귀국. 마산대학교 교수, 국가인재원객원교수, 국제음료학회이사를 지냈으며, 청와대, 국립외교원, 기업, 방송 등에서 와인강좌를 진행하였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 권기훈 a90049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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