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몇 초도 채 되지 않아 알 수 있다. 교통 통신의 발달은 사건과 메시지의 전달, 인구와 물류의 이동 등 유형적인 것뿐 아니라 문화, 인식, 의식 등 무형적인 것도 함께 이동했다.

2006년 처음 유럽 여행을 했을 때 기억이 남는 게 몇 개 있다. 물이 비싸다는 것이다. 1995년 처음 국내에선 생수 판매가 허용되어 국내의 생수 시장 역사가 짧았지만, 나는 어릴 적 부모님이 생수 유통도 하셨다. 그래서 생수를 사 마시는 것에 대해서 크게 거부감은 없었지만, 유럽에 첫 행선지였던 런던에선 가격이 1파운드가 넘는 물 한 병 사 마시는 건 망설여졌다. 그렇게 나는 런던의 물가를 느꼈다.

사실 여행 중에 물보다도 싼 음료도 없다. 더운 여름 갈증 해소에 물 만한 게 없는데도, 물을 마시지 못해 안달 났던 적이 있다. 괜히 같이 여행 갔던 친구들이 물을 사면 한 모금씩 빌려 마시곤 했다.

당시 대형마트, 편의점, 슈퍼마켓 등을 돌아다니며 가격 비교를 했었는데, 같은 브랜드 기준 제과점(베이커리)가 가장 저렴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제과점 한 번 가면 세네 병씩 구매해놓고 비축해놓았었다.

또 기억이 나는 일화는 파리에서 몽마르뜨 언덕을 간 적이 있었다. 열심히 등산(?)을 하고 나서 언덕의 정상에서 파리의 경치를 즐기기 위해 물 한 병을 샀다. 평소처럼 뚜껑을 열고 들이켰다. 나는 바로 뱉으면서 쏟았다. 당시엔 칙- 하는 기포 빠지는 소리도 못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물도 별로 시원하지가 않았다.

생전 탄산수를 마셔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 탄산수를 그렇게 겪었다. 같이 갔던 일행들도 한 모금씩 했지만, 표정 밝은 이 하나 없었고, 500mL 한 병을 13명이서 나눠마시고서도 남았다. 그때의 기억으로 여행 내내 물을 찾을 땐, 탄산이 없는 물인지 확인하는 습관이 배었다.

이렇듯 같은 시간 속에 살면서도 다른 공간에선 다른 문화 속에 다른 경험을 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기 전에는 지역적 차이로 언어, 문화, 음식, 의식 등에 많은 차이를 갖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오랜 세월 발전해갔다. 오늘은 서양과 동양의 다른 인식 속에 물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리푸씽의 ‘물은 약인가, 독인가?’ 라는 책에선 동양 전통 철학과 서양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된 물 인식의 차이를 설명한다.
 

▲ 동양, 서양의 물 인식 비교 <자료=리푸씽 / 물은 약인가, 독인가 / 눈과 마음>

옛 중국인들은 “가까이 있는 산에는 가까이 있는 물이 있다. 산이 많으면 물도 많고, 산이 신비로우면 물도 신비롭다. 산이 깊으면 물도 깊으니 이 모두가 최상품이다.” 반면 서양인은 물의 경도, COD(화학적 산소 요구량), TOC(유기물 속 탄소량) 등 구체적인 수질 화학 지표에 근거해 물을 평가한다.

‘광천수(鑛泉水, Mineral Water)’에 대해서도 동양과 서양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고 한다. 서양의 관점으론 ‘광(磺)’은 측량할 수 있는 미네랄 영양을 뜻하며 ‘천(泉)’에 대해선 소홀하며, 동양은 ‘천’의 생명력 가득 한 물의 생리 기능에 주목한다.

서양에서는 물의 생명력을 측정할 수 있는 정량화된 방법이 없고, 동양에서는 물의 혼(魂)에 집중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으며, 각자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아인슈타인은 “동양 철학의 방향 제시가 없다면 서양의 과학 기술은 눈먼 봉사와 같고, 서양 과학 기술의 도움이 없는 동양 철학은 절름발이와 같다”라고 말했다.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무엇보다 인식의 차이를 존중하고 서로 배울 부분을 배우고 상호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
 

▲ 김하늘 워터소믈리에

[칼럼니스트 소개] 김하늘은? 2014년 제 4회 워터소믈리에 경기대회 우승자로 국가대표 워터소믈리에다. 2015년 5회 대회 땐 준우승을 차지하며 연속 입상했다. 다수의 매체와 인터뷰 및 칼럼연재로 ‘마시는 물의 중요성’과 ‘물 알고 마시기’에 관해 노력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김하늘 skyline@sommeliertimes.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