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띠엘 레께나(Utiel-Requena)는 스페인 동부의 지중해와 맞닿은 항구도시 발렌시아(Valencia)에서 서쪽으로 약 100km 정도 내륙에 위치한 와인 산지이다. 중심이 되는 두 마을의 이름, 우띠엘(Utiel)과 레께나(Requena)를 따라 명명하기는 하였으나 실제 와인 산지는 두 마을 주변의 해발 평균 700m 높이에 면적 1800km2에 이르는 고원에 분포되어 있다. 위치상으로는 지중해에 가깝지만 지중해로부터의 영향이 산맥에 가로 막혀 일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를 띄며 겨울이 매우 길고 춥다. 또 봄과 가을에는 서리가 내리고 여름과 가을이 짧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불리한 기후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2,500년의 와인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최근 주요 스페인 와인 산지로 다시 조명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2016 수확시기 <사진 = Consejo de Regulador D.O. Utiel-Requena>

이 곳에서 자라는 보발(Bobal)은 이 지역 고유의 토착 품종으로 포도가 알차게 영근 송이의 모습이 황소의 머리와 닮았다 하여 황소를 뜻하는 라틴어 ’bovale’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토착 품종답게 우띠엘 레께나 지역 전체 약 40,000ha 에 이르는 포도밭 중에서 80% 이상을 차지하는 보발은 지역 전체 포도밭의 평균 수령이 35년 이상 되었을 만큼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저가의 대용량 와인을 만드는 품종으로 평가절하되어 있던 보발의 특성을 이해하고 꾸준히 양조 기술을 개선한 지역 와인 생산자들의 노력 없이는 상상하기 힘든 결실이다.

▲ 우띠엘 레께나의 토착 품종 보발(Bobal) <사진 = Consejo de Regulador D.O. Utiel-Requena>

보발은 생명력이 강해서 일교차도 크고 겨울이 혹독한 우띠엘 레께나의 기후에 최적화된 품종이면서 산도가 높고, 타닌 및 폴리페놀, 안토시아닌 등이 풍부한 것이 자랑이다. 특히 우띠엘 레께나에서는 전통적으로 로제 와인을 많이 만들었는데, 보발로 만든 로제와인은 선명한 붉은 색감과 딸기, 산딸기와 같은 과실향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로제 와인용 모스또(Mosto)를 착즙하고 남은 것을 레드 와인을 만드는데 첨가하여 타닌은 물론 와인의 구조감과 무게감을 더욱 강화하는 도블레  빠스따(Doble Pasta)라는 양조 기법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이 방식을 고수하는 와이너리를 찾아볼 수 없지만, 이 지역 와인 생산자들은 만약 만들어도 너무 텁텁해서 삼키지도 못할 것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안 그래도 타닌과 산도가 다른 품종에 비하여 높은 보발을 왜 도블레  빠스따로 양조하던 전통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구할 수 있다면 항산화 성분이 가득한 진귀한 약이 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보발 레드 와인의 경우, 구조가 탄탄하고 묵직한 느낌에 더하여 감초 및 알싸한 향신료 향이 나는 특징이 있는데 한 모금의 와인이 우띠엘 레께나의 코끝 찡한 찬 바람과 단단한 고원의 기운을 오롯이 전하는 듯 자연이 만드는 조화로움이 신비롭다.

▲ 얼마 전 마드리드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와인 시음 행사 <사진 = 신재연>

이 지역의 대표 와이너리를 꼽자면 무르비에드로(Murviedro)를 빼놓을 수 없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유럽 대륙 전역을 아우르는 와이너리 기업인 쉥크(Schenk Group)그룹 소속으로 우띠엘 레께나 뿐만 아니라 발렌시아, 알리깐떼(Alicante) 산지의 와인도 생산하며 고급 숙성 와인부터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스파클링 와인까지 연간 3백만 리터 이상을 생산하는 와이너리의 차별화된 관리 능력과 다양한 수준의 와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 쎄빠스 비에하스(Cepas Viejas) <사진 = Bodegas Murviedro)

무르비에드로의 대표 보발 와인은 쎄빠스 비에하스(Cepas Viejas)로 ‘오래된 그루 또는 오래된 포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소 40년 이상 된 포도 나무에서 선별된 포도를 바탕으로 말로 락틱 (Malolactic)발효를 거쳐 아메리칸 오크와 프렌치 오크에서 적정비율 숙성시켜 완성하는데, 아메리칸 오크를 우위로 하여 농밀한 붉은 과실향 사이로 은은하게 올라오는 바닐라와 토피 향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입에 머금으면 와인 속의 짙은 색소 입자들 덕분에 무게가 느껴지고 타닌은 강하지만 부드럽게 익어서 벨벳 같은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알싸한 향은 목 넘김을 타고 올라오고 입에 감기는 감칠맛 덕분인지 다음 모금이 자연스럽다. 잘 구워진 양갈비와 함께라면 무한정 마시고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우띠엘 레께나 지방은 보발이 대표 주자이기는 하지만 스페인 내의 다섯 곳에 흩어져 있는 주요 까바 (Cava)산지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오늘은 보발을 마시지만, 다음 편에는 까바를 알아보자.
 

▲ 신재연 소믈리에

[칼럼니스트 소개] 대학 졸업 후 8년여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IE Business School에서 MBA 과정을 밟았다. 이후 Escuela Española de Cata 에서 Sommelier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스페인의 와인과 먹거리를 공부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일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신재연소믈리에  jane.jy.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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