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하고 약수터에 들러 물 한 모금을 마시면 자연스럽게 입에서 한 멘트가 튀어나온다.

“아! 물맛 좋다. 물맛이 꿀맛이야.”

이런 대사가 누구에게만 해당하는 특별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요새는 약수터가 많이 폐쇄되어 등산가서도 이런 멘트를 들을 일이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준비해간 생수 500ml 한 병에 약간 아재(아저씨) 같아도 물맛꿀맛 멘트가 안 나올 수가 없다. 나도 역시나 운동을 마치고 마시는 물 한 모금이, 다른 탄산음료나 주스나 커피가 아닌 오직 물 한 모금이 내게 주는 심리적이고 미각적인 경험은 꽤나 달콤했다.

누군가 내게 “물이 맛이 있어요?”라고 물을 때면, 나는 이런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곤 한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하는 물맛과 질문에서의 물맛은 차이가 있다.

앞에서 말한 물맛의 경우는 등산 중 육체적 피로와 피곤과 역경을 견뎌내고, 그 물 한 모금이 갈증을 씻겨주는 어떤 성취와 관련된 달콤함일 것이다. 등산이 아니더라도 이 물 한모금이 달콤하다고 표현할만한 상황들이 꽤나 존재한다. 하지만 질문에서의 물맛이라고 하면 단지, 쓴지, 짠지, 신지에 관련된 혀의 미각적인 측면에 관련된 것이다.
 

▲ '물맛이 꿀맛이다!' 갈증이 날때 마시는 물맛은 정말 꿀맛이 난다. <사진=김하늘 워터소믈리에>

내가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아니 오랜 조상 때부터 이 '물맛'이란 용어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등산에서의 물맛이 각자에게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물맛'은 예전부터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전부터 물을 ‘무색무취’라 하고 무미라는 말을 쓰지 않았던 것은 '물맛'이 있다는 것이다.

가끔 외국인과 물에 대해 이야기하면, 우리나라 물이 싱겁다는 말을 듣는다. 이게 무슨 소린가? 물이 싱겁다니. 심지어 해석하면 물이 맹물 맛이라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외국에서 물을 사 마셔본 기억이 있는 사람은 약간은 동의할 것이다. 외국에서, 특히 유럽에서 마시는 물이 얼마나 짜고 쓸 수도 있는지.

워터 테이스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미각이다. 물론 시각과 후각도 (김하늘의 소물이에 24화, 25화 참조) 물을 감정하고 평가하는 데 중요한 요소지만, 미각만큼은 아니다.
 

▲ 시음을 할때 눈을 뜬 것보단 감았을 때 더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사진=김하늘 워터소믈리에>

물을 미각적으로 감정할 때, 보통 청량감, 신맛, 풍미, 구조감, 가벼움, 부드러움, 균형감, 지속성 등을 본다.

청량감은 흔히 상쾌한 맛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청량감이 있는 물들은 미지근한 물에서도 어떤 상쾌한 느낌이 난다. 혀에서 느끼기 보다는 마시고 나서의 입 안에서의 느낌을 봐야 한다. 소량을 마셔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끝맛이 깔끔하다. 청량감이 없는 물들은 마셔도 계속 갈증이 난다.

구조감은 물의 단단함을 말하는데, 경도와 관련이 있다. 물을 입 안에서 굴렸을 때, 물이 얼마나 퍼지느냐를 느낀다. 구조감이 낮은 물들은 입 안에서 굴리면 이곳저곳으로 퍼지는 경향이 있는 반면, 구조감이 단단한 물들은 입 안에서 굴리면 조금 더 부피가 작은 느낌이고 덜 퍼지고, 혀 안에서 안 퍼지게 컨트롤이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구조감과 무게와 헷갈려 한다. 무게는 총용존고형물(TDS; Total Dissolved Solids)에 관련이 있다. 무게는 혀에서 물을 들고 지탱했을 때 얼마만큼의 힘이 들어가는지에 관한 것이다, 가벼운 물들은 내가 혀로 물을 들었을 때 별 힘이 안 들지만, 무거운 물들은 내가 혀로 물을 받치기만 해도 혀에 힘이 들어간다. 짧은 시간을 들고 있어도 곧 혀가 피곤해지기도 한다.

부드러움은 구강촉감이랑 관련이 있다. 탄산수의 경우 기포가 얼마나 요란스럽고 야단스러운지 확인하고, 탄산이 꺼지고 난 물이나 스틸 워터의 경우엔, 물을 굴렸을 경우 물에 닿는 피부접촉면의 통증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본다. 통증이 약간 있으면 거친 것이고, 통증이 없고 야들야들하면 부드러운 것이다.

신맛은 보통 산성의 물에서 나며, 혀에서 신맛을 느낀다. 국내 물중에선 초정탄산수를 마시면 물에서 나는 신맛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풍미는 짠맛을 나타내며, 혀에서 느낀다. 짠맛은 약간 쓴맛을 동반하기도 하는데, 나트륨에 의한 것이다. 해양심층수나 유럽의 알프스산맥 쪽 탄산수가 약간 짠맛을 낸다.

쓴맛은 보통 황산염이나 마그네슘에 의한 것이며, 다른 미네랄의 함량도 전체적으로 많아지면 쓴맛을 낸다. 그래서 보통 쓴맛을 가진 물들은 대체로 무겁거나 거칠다.

또 알칼리성이 강할수록 쓴맛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알칼리성이 약하면 쓴맛보다는 약간 단맛이 나기도 한다. 단맛은 약간의 알칼리성과 알칼리성 이온과 관련이 있는데, 칼슘과 칼륨이 많이 들어있을수록 약간의 단맛을 준다.

균형감은 위의 특징이 얼마나 조화로운지를 말하는데, 예를 들어 짜고 신데 가볍거나, 신데 짜지 않고 무겁거나 하면 밸런스가 낮은 것이다. 밸런스가 높으려면 적당히 신맛도 있고, 짠맛도 있고, 무게감도 있고, 구조감도 있어야 하며, 아예 신맛도 없고 짜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가볍고, 부드러우면 이 또한 밸런스가 있다고 한다.

지속감은 물을 넘겼을 때, 생수의 특징이 입안에 얼마나 남는지 보는 것이다. 오랫동안 좋은 물맛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생수이다.

이렇게 시각, 후각, 미각적인 부분을 감정하여 종합하면, 물의 속성을 파악할 수 있고, 그 속성에 해당하는 물을 찾아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테이스팅 연습을 하다 보면 훗날에는 익숙한 물맛이 생기기도 하고, 각 생수 고유의 특징도 알게 된다. 여러분도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물맛을 아는 워터소믈리에가 될 수 있다.
 

▲ 김하늘 워터소믈리에

김하늘은? 2014년 제 4회 워터소믈리에 경기대회 우승자로 국가대표 워터소믈리에다. 2015년 5회 대회 땐 준우승을 차지하며 연속 입상했다. 다수의 매체와 인터뷰 및 칼럼연재로 ‘마시는 물의 중요성’과 ‘물 알고 마시기’에 관해 노력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김하늘 skylin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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