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환 밥소믈리에

2015년 4월 일본 아오모리현 미사와시의 한 젊은 양곡 업자가 [일본 쌀의 새로운 형태]와 [즐겁게 쌀을 구매하는 방법]을 생각한 결과, 전국에서 엄선된 쌀을 무세미로 가공하여 딱 2인분인 2홉(300g)씩 페트병에 담아 판매하기 시작했다.

‘와인 글래스 바’에서 힌트를 얻어 ‘페보라 바(PET BOTTLE RICE BAR)’라는 이름의 진열대를 설치했다.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는 양이지만, 더욱 더 신선한 쌀을 공급하기 위해 페트병 안에는 선도 유지제를 넣었다.

이 회사의 대표는 어릴 적 식사 시간이 되어 밥이 나오면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한다. 그 기분을 잊지 않기 위해 마치 31가지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처럼 35종이나 되는 다양한 쌀 상품을 준비했다. 고객에게 쌀을 고르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고, 케이크 가게의 진열장과 같은 다채로운 색상의 디자인으로 어린이들까지 흥미로울 수 있는 매장을 만들었다.

이 제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일 년에 무려 5만 개나 팔려나갔으며, 2016년 굿 디자인 어워드 상을 받았다.

▲ Pebora 일본 굿 디자인 어워드 <사진=2016 Good Design Award>

작은 회사이지만 이런 걸 기획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쌀을 판매한다. 그런 점이 너무나 부럽다.

우리나라의 많은 유통업자도 이 페트병 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난 2월 초 문정동의 한 프리미엄 슈퍼에서 보틀 라이스 제품이 나왔다고 해서 한걸음에 달려갔다.

일본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좋은데 처음 본 순간 이건 너무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PET BOTTLE RICE 상품의 문제점을 파악해 더욱 더 개선할 수 있는 데, 개선과 발전은커녕 퇴보된 것 같다. 흔하게 카페에서 볼 수 있는 과채 주스 병에 그냥 담았다. 곤돌라 방식도 일본과 똑같다. 다행히 선도유지제는 넣긴 했지만, 2월 초 제품이 나오자마자 매장에 갔는데 1월 초 도정한 제품들도 있었다. 같은 곤돌라지만 너무 좁고 어수선해 보였다.

▲ 슈퍼마켓 페트병 쌀 <사진=박성환>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한다. 모방했으면 더 생각해서 새로운 걸 만들어 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새로운 페트병은 금형을 직접 만들어야 하기에 MOQ의 압박이 커서 그냥 있는 기성 제품을 사용했을 것이고, 부족한 출시 일정을 맞춰야 하는 바이어로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고로 MOQ (Minimum Order Quantity)는 최소 주문 수량을 말한다.

필자가 다른 칼럼에서 김연아 선수의 피겨 드레스 디자이너로도 유명한 이상봉 선생이 디자인한 쌀 포장지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최고의 쌀에 최고의 옷을 입히겠다는 농업회사의 강한 의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상품이다.

예전부터 쌀을 사서 마시고 난 빈 생수 병, 우유 병, 주스 병에 쌀을 담아 보관하는 소비자들이 있다. 그렇게 하면 냉장고 보관이나 꺼내 쓰기가 편리하다. 이건 맞지만 필자는 다 마신 플라스틱 생수 병에 쌀 보관하는 것을 반대한다. 왜냐면 이런 종류의 페트병은 다 일회용이다. 개봉하는 순간부터 병은 오염되기 시작한다. 이건 포장 연구원들이 다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내용이다. 게다가 전부 세척이 불가능한 구조다. 식품이 아닌 다른 것을 보관한다면 그건 상관없지만, 쌀을 담는다면 세척이 가능한 전용 용기에 담거나 차라리 두꺼운 지퍼백에 담는 것이 좋다.

우연히 작은 농업회사에서 출시한 BOTTLE RICE 제품을 보았다.

전문 용기회사에서 만든 기성 곡물용 BOTTLE에 쌀을 담았다. 포장 용기 값이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 한국의 페트병 쌀 제품 <사진=박성환>

작은 회사여서 직접 용기를 제작할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냥 남들처럼 일회용 페트병에 담아 판매하면 훨씬 이윤을 많이 가져갈 수 있었을 텐데 과감히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좋은 용기에 담았다. 그만큼 그 안에 담은 내용물인 쌀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담긴 쌀은 이 정도의 포장 용기에 담겨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는 그만큼 쌀의 품질이 우수하다는 자신감이다.

전체적으로 용기 디자인에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이건 농업회사가 아닌 용기회사의 디자인력 대한 문제다. 세척이 손쉬운 구조라 소비자는 계속 이 용기를 사용할 것이다. 소비자가 다른 쌀을 사서 넣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고 계속 이 용기에서 꺼내 밥을 지을 때마다 전에 먹었던 쌀 포장 라벨이 붙어있으니 전에 먹은 쌀이 생각날 것이고, 결국은 다시 그 쌀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페트병에 쌀이나 곡물을 넣어 보관하면 벌레가 생기지 않고 보관이 편리해서 한국과 일본의 가정 주부들이 전부터 가정에서 사용하던 방법이다. 쌀을 포장지가 아닌 페트병에 담으면 환경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나 이것을 재활용으로 해결하면 된다. 아무리 저렴한 일회용 페트병이라고 해도 포장 봉투에 비하면 가격이 3~4배 이상 비쌀 수밖에 없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쌀을 페트병에 넣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고객에게 새로운 재미와 두근거림을 주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소믈리에타임즈 박성환밥소믈리에 honeyrice@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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